'아침에 눈뜨면 시를 쓴다' 사계절 담아낸 사랑시 6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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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뜨면 시를 쓴다' 사계절 담아낸 사랑시 64편
길에서 만난 눈송이처럼
박노식 | 문학들 | 1만원
  • 입력 : 2023. 12.07(목) 14:35
  •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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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식 시인. 문학들 제공
박노식 시인이 네 번째 시집을 펴냈다. 사랑에 대한 시 64편을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로 나누어 담았다. 곽재구 시인은 추천의 말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그는 아침에 눈 뜨면 시를 쓴다, 꽃이 피면 시를 쓰고 바람이 불면 시를 쓴다. 초승달이 산마을을 찾아올 때 시를 쓴다. 장맛비에 거미줄을 비운 거미를 생각하며 시를 쓰고 며칠간 거미가 굶을 것을 생각하며 시를 쓴다.

그의 시에 세상을 향한 선언이나 양심을 위한 인간의 고백 같은 고상한 몸짓은 없다. 오직 시와 자신만의 대면이 있을 뿐이다. 길에서 만난 눈송이에게, 새털구름에게, 물 위에 뜬 산그늘에게 인간의 시를 들려주는 그의 모습은 따뜻하고 평화롭다.

하지만 사랑은 멀고, 시 또한 멀리 있으니 시인은 불화할 수밖에. 시인은 그 연원을 유년의 ‘그늘’에서 찾는다. “내 시의 처음은 그늘에서 왔다/이른 자의식은 끔찍한 독백을 낳는다” 본래 독백 혹은 내밀한 자기 고백은 자조적일 수밖에 없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일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달빛이 부서지는/대숲 속에서 웅크렸으므로 환희가 없고” “말로 살지 못해서/나에겐 시가 없다”(꿈속의 옹달샘처럼) 그런 그가 중년이 된 어느 날 고물상에서 주워 온 둥근 시계를 벽에 걸어두고, 그것의 실존만큼이나 늦어버린 자신의 시 쓰기를 걱정하고 다짐한다.

그러니까 그의 시 쓰기는 오래전 잃어버린 ‘환희’와 ‘말’을 되찾는 일이다. 독백에 섬세한 체험이 들어설 때, 어떤 본연의 깨침이 들어설 때 사랑의 감옥, 시의 감옥에서 사계절을 끙끙 앓는 시인의 시에 돌연 생기가 돈다.

“시는 오지 않고/기다림마저 떠나버릴 때/어느 고적한 곳으로 나를 데려가는/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렸지/눈을 뜨니까 그가 몰래 와서/내 곁에 누워 있었던 거야”(시가 찾아오는 순간)

“작은 꽃씨 하나도/견딜 수 없을 땐 터진다/통곡은 이처럼 자기를 깨부순다/빛나는 연애는 여기에 있다”(빛나는 연애)

시도 아닌 것을 붙들고 애걸복걸할 때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 시가 기다림마저 떠나버릴 때에야 새들의 노랫소리처럼 곁에 와 있다는 깨달음, 작은 꽃씨 하나도 견딜 수 없을 때 터지듯이 자기를 깨부술 때에야 빛나는 연애가 있다는 깨달음, 이것이 그의 시가 사랑이 세상과 화해하는 비밀이다.

고재종 시인의 추천글이 와닿는다. 박노식에겐 시가 사랑이고 사랑이 곧 시다. 박노식의 한 편 한 편의 시는 사랑의 대상에 대한 울렁거리고, 서럽고, 맹렬하고, 지독히 아픈 사랑의 고백이다. 그 한 편 한 편 사랑의 고백은 다시 시일 수밖에 없다. 바로 그 대상을 향한 마음에서 모든 시가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그 사랑이 인물이거나 아니거나 시는 이미 상상력의 가공을 거치기에 다다르거나 가닿을 수 없는 사랑의 환상이기도 하리라. 나이 육십 세를 넘어서까지 사랑의 환상을 지속시킬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하지만 박노식의 사랑의 우울과 서러움은 이게 또한 지옥이 되기도 하는 걸 어떡하랴.

한편 박 시인은 광주공고와 조선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전남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를 수료했다. 2015년 ‘유심’에 ‘화순장을 다녀와서’ 외 4편으로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고개 숙인 모든 것’ ‘시인은 외톨이처럼’ ‘마음 밖의 풍경’을 펴냈으며 지금은 화순군 한천면 오지에서 시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2018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수혜했다.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