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만 3년째, 검찰 구형은 서면으로 ‘이상한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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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검찰
1심만 3년째, 검찰 구형은 서면으로 ‘이상한 재판’
광주지법, 사기·변호사법 위반사건
결심공판서 검사 의견 제시 안해
징역 4년·추징금 14억 서면 의견
“공개재판 취지 막고 알권리 제한”
  • 입력 : 2023. 12.20(수) 18:25
  • 송민섭 기자 minsub.song@jnilbo.com
광주지방법원.
광주지방법원에서 사기·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2년 11개월째 진행중인 사건의 1심 결심공판에서 검찰이 구두 의견 대신 서면으로 형량을 제출해 법조계 안팎에서 매우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결심공판에서는 검사의 의견진술과 함께 구형이 이뤄지는 게 통상적이어서 서면으로 구형의견을 내는 것은 극히 드문 사례로 알려졌다. <본보 6월28일자 4면>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광주지법 형사10단독 나상아 판사 심리로 지난 8일 A씨에 대한 사기·변호사법 위반 혐의 결심공판이 열렸다. 결심공판은 검사가 판사에게 얼마의 형을 선고해달라며 구형을 내리는 것으로 재판의 마무리 수순이다. A씨는 지난 2020년 12월 사기·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검사의 공소장에 따르면 A씨는 남구 주월동에서 추진되던 재개발 사업의 승인을 위해 공무원과 업무대행사의 임직원들에게 로비를 한다는 명목으로 B씨 등 피해자들로부터 수십여차례 금품을 수수한 혐의다. 세부 금액은 2015년부터 2018년까지 13억 3845만원이다. 현재 A씨는 광주의 한 민간공원특례사업 시행사 대표를 맡고 있다.

A씨에 대한 결심공판에서 검사는 구두 대신 서면으로 구체적인 구형의견을 제시하겠다고 밝히며 구형량과 구형의견을 생략했다. 검사는 이후 지난 11일 검찰의견서(구형의견)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A씨 결심공판을 맡았던 광주지검 검사는 “구형량이 변경될 여지가 있어 서면 구형을 신청했으나, 변경되지 않아 그대로 구형했다”고 설명했다.

검사는 의견서를 통해 A씨에 대해 징역 4년에 범죄사실금액 추징금 14억 8000만원을 구형했고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형사재판에서 검찰이 피고인에 대한 구형을 반드시 구두로 해야 할 법리적 근거는 없다. 서면 구형을 하는 경우에도 형량의 차이는 없다. 다만 당사자들 외에 형량을 알 수 없어 알권리 등이 제한된다.

특히 사회적 주목도가 높지 않은 사건에서 A씨 사례처럼 구형을 공개된 법정에서의 구술이 아니라 서면으로 대체하는 경우는 이례적이다. 아주 복잡한 사건이거나 다른 피고인들과의 형평을 생각하거나, 형량이 알려지면 신상에 영향을 받는 정치·기업인, 검사가 구형 준비가 덜 된 상황 등 특별한 이유가 있을 때에 한다.

법조계에서도 흔치 않은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지역의 한 변호사는 “서면 구형이 형사소송법 등에 어긋나지는 않는다. 또 서면 구형이라고해서 재판의 결과가 달라지지 않는다”며 “그러나 공개재판의 실질적 구현이라는 측면에서 소송 당사자들만 구형량을 알 수 있는 서면 구형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재판이 비밀리에 열린다면 공정한 판결이 안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가 검찰의 서면 구형에 제동을 건 사례도 있다.

지난 2014년 11월 일명 ‘채동욱 내연녀’사건이다. 당시 검찰이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내연녀로 지목된 임모씨의 변호사법위반 등 사건에 대한 결심공판에서 구형량을 서면으로 제출하겠다고 요청했다가 재판부 반려로 무산됐다. 당시 재판부는 “구형은 법정에서 구두로 하는 것이지 별도 의견서로 제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편 지난 2021년 2월 처음 열린 이 재판은 1심만 3년째 이어지며 법조계 안팎에서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0월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소병철 의원(순천·광양·곡성·구례군(갑))은 해당 재판에 대해 “이렇게 오래갈 일이 아닌데 어떻게 된건가”라며 “국민들이 이해할만한 일인가”라고 지적했다.

선고기일이 내년 2월 7일로 결정되면서 A씨에 대한 1심 재판은 3번의 재판부 변경, 4번의 기일변경 등을 거쳐 총 3년 1개월 동안 진행되는 진기록을 남기게 됐다.
송민섭 기자 minsub.so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