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서석대>作心三日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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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전남일보]서석대>作心三日일지라도
최도철 미디어국장
  • 입력 : 2024. 01.07(일) 18:10
최도철 국장
“가만히 귀 기울이면 첫눈 내리는 소리가 / 금방이라도 들려 올 것 같은 / 하얀 새 달력 위에, 그리고 내 마음 위에 / 바다 내음 풍겨오는 푸른 잉크를 찍어 희망이라고 씁니다./” -이해인 ‘새해 첫날의 소망’에서

새해가 되면 덕담을 건네는 문화는 세월이 지나도 변함이 없다. 다만 그 형태가 볼썽사납게 일그러졌을 뿐.

고운 한지에 먹으로 쓴 선조들의 ‘낭만 연하장’은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고, 화려한 문양에 형형색색으로 인쇄된 문방구 연하장도 그 때, 그 시절 이야기로 남겨진 지 오래됐다. 이젠 핸드폰 몇 번만 터치하면 멋진 사진과 인사말이 담긴 연하장을 순식간에 많은 사람들에게 보낼 수 있다.

해가 바뀌면서 요 며칠 사이 수십여 차례 카톡 알람이 울렸다. 잊지 않고 기억해 주신 분들이 고맙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세상 가볍고 경망스럽기까지 한 ‘복붙 카톡연하장’ 문화가 영 마뜩치 않다.

그래도 ‘눈 밝고 맘 따순’ 분들을 떠올리며 연하장을 읽노라니 빠지지 않는 문구가 있다. 축복과 건강 그리고 희망이다.

그렇다. 사람은 누구나 해가 바뀌면 희망이라는 보따리를 꾸린다. 그 보따리는 저마다 다르지만 아름찬 결실을 위해 올해는 뭔가를 시작해 보겠노라고 ‘솔찬한’ 호기를 부리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가 ‘머리에서 가슴까지’라고 하지 않던가. 작심한대로 실천한다는 게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사람의 마음은 간사하기 짝이 없어, 바위같이 굳은 결심을 했더라도 끝까지 지켜내기란 쉽지 않다. 이런 핑계, 저런 이유로 작심삼일에 결국 용두사미로 흐르기 십상.

살아온 날을 돌이켜보니 필자도 작심삼주(作心三週)만 수십 년이다. 거개가 의지박약으로 어느 순간 그 결심이 눈 녹듯 사그라들었지만….

타고난 저질 체력을 극복한답시고 헬스클럽에 쌩돈도 갖다 바쳤고, 되지도 않을 폼을 잡고 ‘돈데 보이(donde voy)’나 ‘봄날은 간다’를 멋들어지게 부를 요량으로 비싼 색소폰부터 덜컥 사기도 했다. 하나 후회뿐, 제풀에 겨워 곧추세운 의지는 흐지부지되고 흐르는 세월에 나이테만 한 줄 더 그어갔을 뿐이다.

한 해 가운데 멘탈이 가장 또렷하고 명징한 정초다. 작심삼일도 열 번 하면 한 달이라는데, 다시 의식의 날을 벼르고 뭐라도 시작하는 것이 숫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더 나이들기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