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책>소설로 읽는 변방인 김대중의 꿈과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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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책>소설로 읽는 변방인 김대중의 꿈과 정신
‘거인의 꿈’
최영태 | 역사바로잡기연구소 | 2만2000원
  • 입력 : 2024. 01.18(목) 15:00
  •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
지난 2000년 6월 13일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김대중 대통령이 마중 나온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둘의 만남은 한국 현대사에서 남과 북이 공존을 위한 첫 걸음을 내디뎠다는 의미에서 상징적 사건이다.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 제공
최영태 작가.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 2024년 1월 6일은 국민과 역사를 믿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탄생한 지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날을 기념해 역사학자이면서 전남대 명예교수로 활동하는 최영태 작가가 해방 이후 격동의 시기를 살아간 김대중의 삶을 그린 소설 ‘거인의 꿈’을 펴냈다.

저자는 역사학자로서 ‘만약 이랬더라면…’이라는 가정법으로 김대중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남북연합이 창설되고 ‘절반의 통일국가’가 이뤄진 상황에서 김대중이 북한 땅을 찾아 한 달 살기에 들어간다는 상상은 안타깝게도 오늘날 김대중 정부 이전으로 돌아간 남북 관계를 생각하면 그야말로 파격이다. 소설의 부제는 ‘하의도·서울·평양’이다. 하의도는 변방인(outsider) 김대중의 출발점을, 서울은 한국 정치의 중심을, 평양은 평화 통일과 미래 비전을 상징한다. 특히 소설에서 주목할 점은 4부다. 저자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김대중의 ‘남북연합’을 흥미진진한 소설로 재구성했다. 북한과 미국·일본 간 정상회담이 개최되는 것을 시작으로 개마고원 트레킹과 북한 땅 한 달 살기에 이르기까지 남한과 북한이 절반의 통일을 이루어 가는 장면은 마치 ‘남북연합’에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들게 한다. 어쩌면 개마고원 트레킹과 북한 땅 한 달 살기가 저자가 꿈꿨던 한반도의 미래는 아니었을까.

1945년 해방 이후 한반도 신탁통치를 둘러싼 갈등을 놓고 김대중은 한반도는 반드시 하나의 국가로 유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의 생각과 달리 해방정국은 미 군정의 지원을 받은 이승만과 소련의 지원을 받은 김일성 두 체제로 분리됐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각각 수립된다. 이후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김대중은 형무소에 끌려가 죽을 고비를 겪는 등 전쟁 중에 생사를 넘나든다. 그가 평화에 일생을 바치고 한반도에서 다시는 전쟁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한 데에는 해방정국의 갈등과 동족 간에 벌어진 전쟁의 참혹함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유신체제에 맞서 싸우며 망명을 선택한 뒤에도 김대중의 길은 험난했다. 가족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에 대한 고문은 특히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감시는 끊이지 않았고 납치까지 당해야 했다. 민주주의에 대한 굳은 신념을 지킨 그에게 내려진 것은 다름 아닌 사형선고였다. ‘변방인’으로 태어나 더는 앞으로 나아가기 힘든 현실, 하지만 김대중은 그런 상황에서도 민주주의와 평화라는 한길만 걸어간다. “우리에게, 대한민국에게 김대중은 진정한 거인이었다.”는 게 최 작가의 설명이다.

최 작가는 “남북 모두 대결 국면에 한계를 느끼고, 다시 화해와 공존공영의 길을 모색할 것”이라며 “바로 그때 김대중이 제시한 남북 화해와 협력 그리고 통일의 비전을 상기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김대중이 꿈꿨던 ‘남북연합’은 이제 소설 속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일까. 김대중 정신을 다시 되새겨야 할 지금, 우리가 풀어야 할 모든 문제는 거인이 걸어간 길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거인의 꿈’은 단순히 김대중이 설계한 개념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따라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것이다.

전남대 사학과를 졸업한 최영태 작가는 전남대에서 30여 년 교수로 재직하면서 5·18 연구소장과 한국독일사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1989년부터 1990년까지 독일에 머물며 베를린 장벽 붕괴와 독일통일 과정도 지켜봤다. 주요 저서로 ‘빌리 브란트와 김대중’, ‘독일 통일의 3단계 전개과정’, ‘베른슈타인의 민주적 사회주의론’ 등이 있다.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