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아침을 열며·정연권>구례 읍내 활짝 핀 ‘사람 할미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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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아침을 열며·정연권>구례 읍내 활짝 핀 ‘사람 할미꽃’
정연권 구례군도시재생지원센터장
  • 입력 : 2024. 01.24(수) 12:15
정연권 센터장
소한(小寒)이 지나더니 화신풍(花信風)이 불어온다. 전년보다 일찍복수초가 피었다는 소식도 들린다. 따뜻한 날씨가 지속되어 겨울나기가 무난하다. 하지만 겨울은 추워야 하는데 기후변화를 넘어 기후 실종 같아서 걱정이다. 대한(大寒)이 지나면서 겨울이 제 자리를 찾는 것 같다. 추워서 몸은 힘들지만 겨울다워서 마음이 편안하다.

필자가 근무하는 구례군도시재생지원센터로 출근하는 길은 구례읍 상설시장을 지나야 한다. 과일, 떡, 신발가게 등 상인들의 분주한 모습을 보면서 걸어간다. 어귀에는 할머니들의 소박한 ‘지붕 없는 가게’가 보인다. 많게는 10명 내외이고 매일 3~5명이 나온다. “안녕하셔요” 인사를 건네면 “출근 하신가요”라고 대답하는 모습에 잔잔한 미소가 번진다. 주름 꽃이 활짝 피었다. 소리 없는 웃음꽃을 피운다. 꽃 중 제일 예쁜 꽃은 사람 꽃이요 그중 사람 할미꽃이 제일 곱고 아름답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할머니들이 파는 품목은 제철 농산물이다. 손수 농사지은 게 대부분이다. 농사지은 사람들이 위탁해 판매한 것도 있다. 좌판을 보면 계절의 변화를 알 수 있다. 봄에는 향긋한 취나물, 두릅, 엄나무순, 고사리 등 산나물 잔치다. 여름에는 열무, 상추, 호박잎 등이요. 가을에는 무, 배추, 쪽파, 젠피, 밤 등이다. 겨울에는 대파, 시금치, 봄동 등으로 바뀐다. 그래서 퇴근길에 자주 들른다. 먹고 싶은 걸로 사서 저녁에 요리하면 잘 먹기 때문에 아내도 반긴다.

할머니들 가게는 구례읍 병원 사거리에 있어 사람들 왕래가 잦다. 사거리 중심으로 안과, 내과, 정신의학과 등 의원이 6개, 한의원 3개, 치과 3개, 약국 5개가 운집돼 있다. 버스 정류장도 있어 광의면 등 북삼면과 구례구역, 문척, 간전 등 구례군 남쪽 사람들이 타고 내린다. 순천시 황전면 일원과 곡성군 압록 등에도 오가는 버스가 정차하는 교통 요충지다. 승객들은 병원을 오가는 어르신들이 대부분이다. “에구 고장 난 기계 고치로 오셨소잉” “긍깨 침맞고 물리치료 받을 때 뿐이여” “일을 놓아야 헌디 땅을 놀리면 죄 받을까 싶어 농사를 지은깨 그런거여” 모두들 만나면 이야기꽃을 피운다. 하고 싶은 말들이 많은지 얘기가 끝나질 않는다. “그라도 내가 농사를 지어야 쌀을 보내고 메주 쒀 김장해서 줘야 객지 자식들이 고생 덜하고 살림이 나아지는 재미여” “손주가 할매 된장이 겁나게 맛있다고 허니 얼매나 좋아잉” “우리 손주는 할미 김치 아니면 안 먹겠다고 한당깨” 자식이 잘살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손주 자랑까지 버스 정류장이고 병원 대기실에서 정과 사랑꽃 이야기가 활짝 피었다.

할머니들의 가게는 낡은 의자를 놓고 종이박스를 접어 냉기를 막는 등 열악하다. 그래도 온화한 미소와 따뜻한 정이 넘쳐 초라하지 않다. 춥지도 않다. 버스 정류장 지붕이 비가 오면 앉을 수 없다고 했다. 어떻게 할지 모르는 눈치다. 군청 교통행정팀에 연락해 지붕을 고치고 의자 위치를 안쪽으로 고정해줬더니 너무나 좋아한다. 비가 오면 빗물이 빠지지 않는다고 읍사무소에 부탁해 우수구를 뚫었다. 이제는 물이 고이지 않는다고 무척 좋아한다. 할머니들은 민원이 뭔지 모른다. 어디에다 말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저 참고 견디는 것뿐이다. 조그만 도움이지만 큰 기쁨이 되어 보람이다. 신속히 처리해 준 관련 공무원들이 고맙다. 감사하다.

한 할머니께서 무 한 개를 건넨다. “가을에 뽑아 잘 보관했더니 겁나게 달고 시원혀. 무채하고 무국 끓여 잡솨봐잉” “아닙니다 얼마요” “아따 팔라고 그런거 아니여. 고마워서 그랴~ 자주 팔아주고 일 생기면 해결해줘 고마워서 그런당깨” 참으로 고마운 마음이다. 정과 사랑이 넘친다. 이게 시골 인심이다. 아니 구례 사람들의 인심이요 정과 사랑의 표현 방식이다. 큰 선물을 받아 맛있게 먹었다. 아니다. 정과 사랑을 먹은 거다.

“여기 나와 있으면 너무나 좋당께. 집에 있으면 갑갑혀. 그라고 영감이 농사짓고 내가 팔고 출퇴근도 시켜주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

“오가는 사람 구경도 하고 돈도 벌고 얼마나 좋소” 긍정적인 얘기를 들으니 좋다. “오늘 얼마나 벌었소” “많이 못 벌어 째깨 손주들 용돈 줄 정도여” 돈을 주고 거스름돈을 받을 때 보니 돈뭉치가 나온다. 많이들 파는 거 같아 흐뭇하다. 물건을 사 가는 사람들을 보니 동년배 할머니들과 주부들이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사가고, 병원에 다녀가면서 사 간다. 추위에도 할머니들의 가게는 늘 열려 있다. 즐겁고 재미있게 물건을 판다. 아니다. 마음을 팔고 사랑을 준다. ‘꽃 중에 제일은 사람 꽃이요 이 중 최고는 사람 할미꽃이다’라는 말에 다시 한번 실감한다. 사람 할미꽃이 활짝 펴 겨울이 따뜻하고 훈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