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이타적유전자·손필영>자연과 관계 맺기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테마칼럼
[전남일보]이타적유전자·손필영>자연과 관계 맺기
손필영 시인·국민대 교수
  • 입력 : 2024. 01.24(수) 14:24
지난해 4월 제14회 광주비엔날레 ‘파빌리온 프로젝트’에 참여한 주한 이탈리아 문화원이 광주 동곡미술관에서 ‘물’을 소재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표현한 작품과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뉴시스
손필영 시인
새해가 뜨고 1월도 하순으로 접어 들고 있다. 전세계가 지진과 한파와 전쟁으로 춥고 불안한 1월을 보내고 있다. 올해는 또 어떤 힘든 일들이 닥칠 지 많은 사람들이 어둡고 무거운 마음으로 지내는 것 같다. 봄이 오면 따사로운 햇살이 변화를 몰고 올지도 모르지만 위기를 느끼는 것은 일상적인 현실이 되었다. 지금처럼 가슴에 화인을 맞은 것같이 힘든 시기가 있었을까? 환경의 위기 앞에서 많은 사람들은 인간 중심의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인간중심의 생각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진화론자들은 지구 위에 있는 무수한 생명체 중 한 종에 지나지 않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말하고 창조론자들은 신을 닮은 영혼을 지닌 존재로 인간을 말하지만 두 견해 모두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인 자연과 관계를 맺고 더불어 같이 살아가야하는 존재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었다.

전자의 가치로 본다면 인간은 지구 위의 한 종에 지나지 않으므로 동물의 세계에서처럼 살아남기 위해 공격하고 이기적으로 지낸다는 것은 문제가 없다. 후자의 경우 성경에 근거하면 인간이 땅(지구)의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였으므로 인간은 자연을 관리해야만 한다.

요즘에 화두가 되고 있는 인간중심의 생각을 벗어난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사고에서 벗어나 자연과 더불어 지내는 것을 뜻한다. 그러려면 인간과 자연이 서로 관계를 맺어야 가능할 것이다. 가족관계, 친구관계 등 우리는 관계 속에서 서로에게 정을 쏟고 관심을 기울이며 의지하고 지낸다. 우리가 자연과 관계를 맺는다면 가족이나 친구처럼 자연을 배려하고 보호할 것이다.

신대철 시인은 <수각화 4>(『개마고원에서 온 친구에게』 수록)라는 시에서 칠갑산에서 지붕 뚫린 움막에서 어렵게 살았던 시절 밤새 골짜기가 터져나가도록 비가 쏟아지던 날을 보여준다. 거기에 등장하는 뱀과 지네는 비록 말은 못하지만 염치를 알고 있는 듯하다.

“소나기, 소나기, 눅눅한 마음 다질 새 없이 밤새 골짝은 터져나간다. 흙더미 넘치는 장독대, 뒤집히는 지붕, 방바닥에 괸 물 쓸어내다 새우잠 들면 물구멍으로 들어와 똬리를 틀고 있는 뱀, 옆구리를 스치는 듯, 윗목에 흐르는 물살보다 빠르게 기둥을 타고 천장으로 올라가는 지네...”

비 때문에 남의 집에 들어왔지만 비가 그치면 나갈 것을 보여주는 듯 뱀은 저만치 똬리를 틀고 있고 지네는 쏜살같이 옆구리를 스쳐 천장으로 올라가 비를 피한다. 여기서 보여지는 이 생물들은 우리가 알고 있듯이 공격적이지 않다. 자기의 영역이 아닌 곳에서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신세 지고 있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아는 것 같다. 자연과 관계를 맺어 자연과 나누는 우정은 흔히 쓰는 자연과의 교감이라는 말과는 다른 차원의 감동을 준다.

“어느 이른 아침 소년을 따라 물 길으러 갔다. 구릉 분지에 깊은 샘이 있었다. 소년이 깡통으로 물을 푸는 사이 짐승들이 흰 구름 밑에 와 있었다. 소년은 물을 퍼 올리는 대로 돌바닥에 쏟아 붓고 쏟아 부었다. 햇빛을 쏟아 부은 것처럼 물거울이 눈부셨다. 열풍 속에 빈 물통으로 돌아왔다./

오후에 다시 물 길으러 갔다. 짐승들이 좀더 가까이 와 있었다. 소년은 또 물을 퍼 올리는 대로 쏟아 붓고 쏟아 부었다. 돌바닥이 흥건해지면서 흙바람도 잠잠해졌다. 샘 밑바닥에 맑은 물이 비치고 소년의 얼굴이 반짝였다. 소년은 속삭이듯 중얼거리며 물통을 찰랑찰랑 채웠다./ 제 또래와 한번도 어울려본 적이 없는 소년은 겔에 돌아오자 팔짱을 끼고 둔덕에 앉았다. 그 옆에 나란히 앉으면서 아까 누구한테 무슨 말을 했느냐고 물어보았다. 소년이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짐승들한테요,물이 움트면 또 온다고요.’ ” - <황야에서2> 전문 (『바이칼 키스』 수록)

또 다른 신대철 시인의 시 <황야에서2>를 보자. 몽골에서 시인이 만난 소년은 더운 여름날 이른 아침에 들짐승들에게 물을 퍼 주기 위해 샘으로 간다. 소년은 돌바닥에 물거울이 생길 정도로 물을 한참이나 퍼서 쏟고는 샘에 물이 바닥 났으므로 빈깡통으로 돌아온다. 오후에 다시 샘으로 간 소년은 물이 차오른 샘의 물을 퍼서 돌바닥을 흥건히 적시고 자신의 물통에도 물을 채워 돌아온다. 그리고 소년은 짐승들한데 물이 차오르면 다시 오겠노라고 말을 건낸다. 사막에 사는 이 소년은 들짐승들도 더위에 목마르고 갈증나는 것을 잘 안다. 짐승들과 소년은 오래전부터 관계를 맺어온 사이였을 것이다. 인간중심 세계에서 벗어나 자연(환경)과 관계를 맺는 일이 지구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