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김정숙 교수의 필름 에세이>갑작스런 남편의 죽음이 가져온 ‘욕망의 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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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김정숙 교수의 필름 에세이>갑작스런 남편의 죽음이 가져온 ‘욕망의 해부’
쥐스틴 트리에 감독 ‘추락의 해부(Anatomy of a Fall)’
  • 입력 : 2024. 02.04(일) 16:39
쥐스틴 트리에 감독 ‘추락의 해부.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쥐스틴 트리에 감독 ‘추락의 해부 포스터.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필자가 2년간 심리학을 공부하고 나서 나름 수확한 것은 심리학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학문이라는 것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많은 종교학자들이 ‘이해하기 위해 믿는다’라 설파하는 점이다. ‘믿는다’라는 의미가 ‘신앙’과 ‘신뢰’의 차이가 있겠지만 그 중간쯤에 있는 ‘믿음’을 놓고 보았을 때, 부모와 자식관계 부부관계에서 ‘믿음’과 ‘이해’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믿음’과 ‘이해’를 키워드로 삼는 영화 ‘추락의 해부’는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지만, 생각할 여지 만큼은 충분하게 제공하는 영화다.

프랑스인 남편 사뮈엘(배우 사뮈엘 타이스)과 독일인 아내 산드라(배우 산드라 휠러)는 공통언어인 영어를 사용하며 프랑스의 알프스 외딴 산장에서 시각장애 아들 다니엘(배우 밀로 마차도 그라너)과 아이의 안내견 스눕과 함께 살고 있다. 유명 작가인 산드라를 인터뷰하기 위해 찾아온 여학생과의 미팅을 아랑곳하지 않는 듯 남편 사뮈엘은 다락방에서 쿵쾅거리며 작업중이다. 사뮈엘이 음악을 크게 틀자, 인터뷰 녹음에 방해가 된 여학생은 돌아가고 다니엘은 스눕과 함께 산책을 나선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마당에는 사뮈엘이 흰 눈밭에 피를 흘린 채 죽어 있다.

여기까지의 정황으로 남편이자 아빠를 잃은 가족의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아내 산드라가 용의자로 기소된다. 세간에서는 이 사건이 사뮈엘 스스로 뛰어내린 것인지, 산드라의 살인인지의 문제로 치닫는다. 재판 과정에서 검사는 핏자국의 방향과 머리에 타격을 준 창고지붕 모서리에서 DNA가 발견되지 않은 점을 관건으로 삼고, 변호사 뱅상(배우 스완 아를로드)은 증거 없음으로 대응한다. 해를 거듭하는 지난한 재판은 점차 부부의 역사를 파헤치기에 이른다. 성적 지향, 부부싸움에 대해 프랑스 전체가 주목하는 가운데 한 가족의 삶을 난도질하며 손쉽게 진실을 예단하는 재판에서 심리적으로 몰리는 상황이 연출된다. 이로써 감독은 현대 사회가 인간 내면의 복잡성, 비합리성, 불완전성을 어디까지 해부해 내는지를 낱낱이 보여준다. 더불어, 누구보다 가까운 가족의 내면에 서로 다른 욕망이 자리하면 뒤틀린 관계의 파국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거론한다.

지극히 사적인 가정사 및 부부의 관계가 발가벗겨지고 11살짜리 아들은 몰라도 되는 이 모든 내용을 법정에서 듣게 된다. 판사는 보호조치상 사전에 다니엘에게 부분적으로만 참여하도록 종용해 보지만, 똑똑한 이 아이는 어차피 인터넷이나 SNS를 통해 알게 되므로 조금이라도 왜곡된 사실을 전해 듣지 않게끔 직접 참석하겠노라 한다. 이로써 처음 접한 부모의 불편한 진실에 아이의 대혼란이 시작되고, 판사와 배심원을 위시한 어른들과 관객들은 이를 안타깝게 들여다보는 수밖에 없다.

검사의 질문 중 아이가 장애인이 된 데 대한 죄책감 및 남편에게 전가하는 책임감 여부를 묻는 신이 있다. 산드라는 아이를 더 이상 장애인으로 여기고 있지 않다며, 피아노를 치고 산책도 하며 SNS도 하는 행복한 아이로 여기고 있음을 강조한다. (필자는 순간 놀랐다. 장애인을 바라볼 때 장애인이라는 색안경이 문제임을 깨닫게 해주는 대목이어서 개인적으로는 감동이자 반성의 신이었다.)

시각이 차단된 청각 속에서 믿음을 향해 진실을 더듬던 다니엘은 법정에서의 답변 끝에 “재판과정을 죽 지켜보면서 ‘어떻게’에 집중하는 것을 보았는데, ‘어떻게’가 아니라면 ‘왜’에서 답을 찾아야죠”라며 화두를 던진다. 판사를 위시한 배심원들에게 그리고 관객에게 이 아이는 꽤 어른스러운 말을 할 줄 아네 싶어 모두를 놀라게 한다. 이는 다음에 전개할 중요한 언급에 대한 개연성을 부여한다.

영화의 중간 중간에 얹힌 피아노 선율 그리고 소리가 차단된 입모양들은 시각이 차단된 청각, 청각이 차단된 시각이 진실과의 얼마 만한 거리가 있는지, 현실과 허구, 불편한 진실과 선의의 거짓의 거리가 무의미한 것은 아닌지 등등 조곤조곤 생각할 거리를 감독은 관객에게 토스한다.

여성 감독답게 섬세한 감정선 따라 연출한 영화 ‘추락의 해부’는 스릴러 또는 법정 드라마 장르에 속함에도 스토리에 집중하도록 하는 구성의 힘이 있어서였는지, 2023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올 3월에 있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등 5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돼 굵직한 상을 기대하게 한다. 1월 31일 개봉. 백제예술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