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이선의 큐레이터 노트 50> 창작의 영감, 예술가의 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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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큐레이터 노트
[전남일보]이선의 큐레이터 노트 50> 창작의 영감, 예술가의 뮤즈
●이선 이강하미술관 학예실장
예술과 창작의 촉매제
발화점 역할 하는 영감
그리스 신화 여신 유래
김환기의 뮤즈는 아내
게르니카 사진에 담은
피카소 여자 도라 마르
  • 입력 : 2024. 02.12(월) 15:48
김환기 1957년 작 두 얼굴.
한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가의 작품 속 창작 과정 속 영감의 원천에 대해서 많은 대중들은 신비스러운 궁금증을 가지고 있다. 매번 독자적 세계관의 예술을 발견하고 보여주어야 하는 많은 예술가들에게 늘 새로운 영감과 아이디어는 과연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그 창작의 원천은 예술가의 일상과 경험 그 어디에서 인가로 부터 시작되었는지 알아보고, 국내외 다양한 예술가들의 작품 속에서 발견되는 영감은 어떻게 표현 되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예술가에게 창작의 영감을 주는 요소들은 더욱 다양하다. 정형화 되지 않은 자연의 풍경들, 새로운 심신적인 경험, 일상적 솔직한 감정들이고, 또한 자신의 결핍을 채워주고 지지해주는 사랑하는 여인(이성)이나 가족, 친근한 동료의 존재일 가능성도 있다. 그러한 예술과 창작의 촉매제나 발화점 역할을 하는 영감을 많은 이들은 ‘뮤즈’라고 부른다.

‘뮤즈(Muse)’라는 말은 그리스 신화(고대 그리스인이 만들어낸 신화와 전설)에서 유래 되었다고 전해진다. 제우스의 딸, 춤과 노래, 음악, 연극, 문학에 특별한 능력이 있어 시인과 예술가들에게 영감과 재능을 주는 여러 명의 여신들을 뮤즈라 일컫기도 했다. 고대인들은 뮤즈를 ‘무사(Musa)’라고도 불렀는데 ‘생각에 잠기다, 상상하다’는 뜻의 고대 그리스어에서 비롯되었다. 뮤즈 여신들에 의해 영감을 받아 제작된 행위들은 ‘무지케(Mousike)’라고 하며, 이는 오늘날 뮤직(Music)의 어원이 되기도 했다. 박물관을 의미하는 뮤지엄(Museum) 또한 뮤즈의 신전을 뜻하는 단어로부터 유래가 되었다.

고대 철학자와 예술가들이 여신들의 신전을 줄기차게 방문했던 것처럼, 오늘날 많은 창조적 예술가는 그의 작품 속에 영혼을 불어넣어 주는 뮤즈의 존재를 평생 동안 한번이라도 만나길 간절히 바라고 있을 것이다.

여신들과 관련한 ‘샘 신화’엔 예술적 영감을 원했던 고대인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고대인들은 뮤즈 여신들이 사는 곳의 샘물을 마신 사람은 여신들로 부터 뛰어난 재능을 물려받을 수 있다고 믿으며 여신들의 샘물이 있다고 알려진 곳엔 늘 예술가들과 학자들이 문전 성시(門前成市)를 이루었다. 이런 신화의 유래 덕에 오늘날 뮤즈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존재를 의미하는 뜻으로 쓰이는 것이며, 고대인에게 예술적 재능을 줬다고 전해지는 뮤즈 여신처럼, 지금까지도 많은 예술가에게 창작의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존재를 뮤즈(Muse)라 부르는 것이라 생각된다.

수화 김환기의 뮤즈. 그에게는 아내 김향안(1916~2004)이 있었다. 그녀는 대한민국 수필가로 활동했고, 김환기에게 예술에 대한 신념과 도전 의지를 견고하게 지켜주는 수호신 같은 존재였다. 그녀는 당시의 전통 가구와 항아리에 애정을 가진 그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함께 즐기며 예술적 신조를 존중하였다. 그녀는 김환기가 파리로 유학을 가 좋은 새로운 환경에서 작품 활동에 집중 할 수 있도록 절대적 지원자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그녀는 그의 예술적 동지이자 삶의 반려자로 그가 세상을 떠나고 난 뒤 김환기재단과 환기미술관을 건립하여 그의 예술세계를 연구하고 알리는 후원자 역할을 자처하기도 했다. ‘두 얼굴’ 제목의 포스터는 작품은 김환기가 1957년 벨기에 브뤼셀의 한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개최할 때 제작한 것으로 작가의 자화상과 아내의 모습을 함께 모티브로 제작한 작품이다. 자연을 주로 그리는 김환기의 작품 중 보기 드문 인물화이자, 파리에서 작업 하던 시절의 화풍이 그대로 반영 된 애틋한 아내에 대한 애정이 담긴 작품이다.

에곤 쉴레(Egon Schiele) 1915년 작 죽음과 연인.
주로 인간의 사실적인 나체를 많이 그렸던 화가. 에곤 쉴레(Egon Schiele, 1890~1918, 오스트리아)는 화가로서의 삶은 10년 정도로 짧았지만, 생애 330여점의 유화 및 2500여점의 뎃생(스케치)을 남기며 오스트리아 대표 표현주의 작가로 남아있다. 쉴레는 21세에 만난 17세 소녀 발레리 노이질(Valerie Neuzil)과 4년 동안 동거했지만, 결국 결혼의 선택은 이웃에 살던 중산층 집안의 에디트(Edith)와 했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에서 에곤 쉴레가 결혼 이후에도 발레리와의 사랑을 이어가고 싶어 했고, 이기적인 그의 태도를 알게 된 발레리는 그를 영영 떠나고 말았다. 당시 작가는 발레리와의 이별 후 괴로움에 빠진 자신의 감정을 ‘죽음과 연인’이라는 작품 속에 남겼다. 예술가에게 ‘뮤즈’의 존재는 설레이고, 풍요로운 사랑만을 남기지 않았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낄 수 있다.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952년 작 Morning Sun.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882-1967)는 묘한 분위기의 극적인 긴장과 나른한 일상의 사실적인 은유적 표현을 동시에 보여주는 화가이다. 호퍼가 활동하던 당시 미국의 사회적 분위기는 일본의 진주만 공습 이후에 다소 외롭고 적막이 느껴지는 고독한 대도시의 모습이었다. 호퍼는 이러한 도시 속에 마주하는 낯선 인물과 사회적 분위기에 영감을 받은 작품을 선보이고, 작품의 표현에 있어서는 앞선 인상주의 미술사 거장들의 전통적인 표현법을 일부 따랐기에 오묘한 작업 세계를 독창적으로 갖추게 되었다.

특히 호퍼의 작품 중에서도 빛의 화가라고 불리는 네덜란드의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 작품으로부터 다양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작품 속 배경과 등장인물 사이에 극적인 빛의 명암을 넣어, 심리적 거리감을 표현하는 것이 그 특징으로 닮아 있다. 그의 뮤즈는 예술학교의 동기로 만난 1924년 결혼하여 부부가 된 조세핀 호퍼(Josephine Verstille Hopper, 1883-1968)로 당시 촉망받는 신예 여류 화가이자 호퍼의 작품 속 여 주인공으로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 있다. 2022년 에드워드 호퍼를 소재로 만든 영화 의 필 그래브스키(Phil Grabsky) 감독은 “조세핀 없이는 호퍼도 없다”고 말하며 그의 삶 속에서 아내 조세핀에 대한 경이로운 존경심을 표했다. 호퍼의 작품에 등장하는 익명의 여인 중 대부분은 아내 조세핀이며, 조세핀은 그가 예술가로 성장하도록 평생을 조력하고 지원한 서포터이자 영혼의 동반자였다. 그의 작업에 대한 영감과 재료에 대한 연구를 도우면서, 대외적으로는 매니저 역할을 하며 갤러리 관계자들과 소통하고 그가 온전하게 작품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내외조 역할을 도맡았다. 조세핀을 대상으로 한 작품 중 가장 대표적인 ‘아침 태양 (Morning Sun, 1952)’ 에서 주인공(조세핀)은 고독하고, 평화로워 보인다. 호퍼에게 아내 조세핀은 어떠한 존재였는지, 조세핀은 어떠한 뮤즈로서 역할을 했는지 상상력을 자아내는 작품은 대중들에게 그와 그의 뮤즈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을 더욱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파브로 피카소와 도라 마르의 사진.
마지막으로 20세기 입체파 미술의 거장 파브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와 그의 뮤즈, 도라 마르(Dora Maar)를 소개한다. 피카소의 많은 여자들(?) 중에서 네 번째 여인으로 알려진 예술가이자 사진작가, 도라 마르가 있었다. 특히 지금까지도 많은 대중들에게 그의 여인, 도라 마르가 소개 되어진 까닭은 피카소가 파리 작업실에서 그린 그의 생애 걸작으로 유명한 <게르니카>의 전 제작과정을 그녀가 사진으로 담아내어 기록 했다는 점이다. 이 사진을 통해 훗날 학자들은 피카소 작품을 연구하는 드로잉 과정부터 완성작 까지를 모두 분석할 수 있게 되었다. 거기에 마르가 스페인 사람으로 자신의 지적이면서 열정적인 감정 표현을 스페인어로 구사했다는 매력적인 지점과 <게르니카>가 스페인 내전에 대한 그림이라는 점은 피카소에게 많은 교감과 영감을 제공하였을 뿐만 아니라,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추측된다. 또한 훗날 새로운 여성이 나타나 마르와의 애정 전선에 문제가 생겼을 때에도 <우는 여자>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피카소의 진정한 사랑을 갈구하며 서럽게 우는 지난 사랑의 ‘뮤즈’ 마르의 애처로운 슬픈 모습을 그림으로 남긴 것이라는 점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예술가의 삶과 작품 세계에서 영감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하지만 어디 반짝이는 아이디어나 찰나의 영감만으로 시대와 관객의 감동을 주는 위대한 작품을 남길 수 있는가?

‘뮤즈’는 예술가에게 사랑, 슬픔, 괴로움, 평온… 수많은 감정과 그리움의 대상으로 남아 오랫동안 작품으로 기록되고, 이야기로 전해진다는 점이 깊이 와 닿는다. 시대가 바뀌고 예술가의 창작활동이 지속 되는 한 창작의 원천이 되는 많은 뮤즈적 요소들은 자유로운 예술가들의 감각을 사로잡아 작품으로 남게 될 것이며, 우리는 그들의 작품을 통해 예술적 감각을 상상하고 공감하면서 또 다른 영감을 선사받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