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아침을 열며·이건철>조선시대 개편된 행정구역은 언제 바뀔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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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아침을 열며·이건철>조선시대 개편된 행정구역은 언제 바뀔까
이건철 전 전남관광재단 대표이사
  • 입력 : 2024. 02.14(수) 13:00
이건철 전 대표이사
우리나라 행정구역은 조선 말 1896년 13도제로 개편 된 이래 130년 가까이 특별·광역시 도입, 일부 도·농 통합 및 시·읍 승격, 그리고 2006년 제주도를 시작으로 강원도와 전북도에 이른 ‘특별자치도’와 세종 ‘특별자치시’ 등의 미세한 조정 등을 제외하면 골격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 130여년동안 다양하고 빠르게 변화된 제반 여건에 대응하지 못한 측면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일본, 독일, 프랑스 등 주요 선진국들은 1970년대부터 규모의 경제를 통한 지역경쟁력의 강화와 지역행정의 효율성 향상을 목표로 수시로 행정구역을 개편하고, 동시에 대규모 광역경제권 구상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특히 이웃 일본은 47개 도도부현을 8개 광역지방계획권(도·주)으로, 독일은 대도시권역 중심의 행정구역 개편(16개 주 → 9개 주)과 함께 광역계획을 수립한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간헐적으로 행정구역 개편 움직임이 있었으나, 눈에 띌만한 개편 조치는 없었다. 1980년대부터 행정학회를 중심으로 경제권과 행정구역을 일치시켜 국가·지방경쟁력을 상승시키자는 주장이 제기되기 시작하여 DJ정부 때 처음으로 지금의 광역도를 폐지하고 전국을 45∼60개의 중규모 광역도(都)로 개편하는 방안을 마련했으나, 정치권의 반대로 빛을 보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뒤를 이어 노무현정부 후반기에 당시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공동으로 행정구역 개편에 합의하고, 국정 100대 과제로 설정했음에도 역시 후속조치 미흡으로 소멸된 바 있다. 그리고 MB정부에서는 전국을 인구 500만명 단위로 5대 광역권으로 나눈 ‘5+2광역경제권’을 도입한 바 있으나, 광역화의 긍정적 취지는 이해하면서도 실효성은 거두지 못했다.

2000년대 접어들어서는 지방 주도의 행정구역 개편과 광역화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먼저 대구시와 경북도가 양 시·도 통합을 추진한 후, 특별자치도로 진입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해 전국적 관심사로 대두되기도 했다. 뒤이어 부산시, 울산시, 경남도의 ‘부·울·경 메가시티론’, 대전시와 세종시 통합, 광주시와 전남도 통합 등 행정구역 통합이나 메가시티 계획이 제기되었으나, 행정구역 통합 시 청사 위치나 메가시티에서의 주도권 문제로 현재는 시들해진 느낌이다.

이처럼 행정구역 개편이나 메가시티가 실현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행정구역 개편은 국가의 중대사인 만큼 지방이 아닌 중앙정부가 주도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점과 행정구역 개편을 추인해야 할 국회를 중심으로 한 정치권이 행정구역 개편을 선거구 조정으로 오해해 소극적이었다는 점을 들고 싶다. 부디 정치권이 행정구역 개편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해 주기를 바라면서 강조하고 싶은 점은, 선거구와 행정구역은 상이하다는 점이다. 선거구는 단순히 인구를 기준으로 획정되지만, 행정구역은 인구단위보다는 경제권과 생활권이 중복되어 동일 개발권역으로 지정된 지역의 거점도시를 중심으로 개편된다는 점이 지역개발과 행정구역 개편의 기본이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바뀌지 않은 행정구역을 토대로 개발행정을 추진한 결과 적지않은 폐해가 발생했다. 예컨대, 고속철시대 넓지도 않은 국토에 시·도별로 공항이 건설되고, 시·군마다 공설운동장, 문예회관, 복지시설이 건립되어 재원이 낭비되고, 건립 후에는 수요가 부족해 운영재원 마련이 현안 과제가 되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시·도 가운데 공항이 없는 곳은 대전시와 충남도 밖에 없다는 사실이 단적인 예이다. 경제권, 생활권과 행정구역을 일치시키는 것은 기본이다.

그리고 전술한 행정구역 단위의 개발행정에 대한 폐해 때문에 행정구역을 광역적으로 개편한다면, 2가지에 유의해야 한다. 하나는 실제 개발권역과 일치하고, 동시에 행정구역이 지역주민들이 공통적인 가치와 이해관계 속에서 상호 응집성과 유대성이 잘 발휘되어 애향심이 충분히 발로될 수 있는 방향으로 광역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본, 독일, 프랑스 등 주요 선진국들이 행정구역 광역화·개편 시 이러한 원칙을 반드시 지키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또 다른 한 가지는 행정구역 개편 시 주요 기준으로 인구수를 내세울텐데, 인구감소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농어촌지역, 이른바 ‘인구소멸위험지역’을 감안한 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

요컨대, 얼마남지 않은 22대 총선에서 여·야 모두 약속이나 한 듯이 행정구역 개편은 물론, 제4차산업혁명시대에 대비한 준비는 전무하고, 공항이나 대규모 기반시설 확충에 전념하는 구태의연한 행태를 되풀이하고 있다. 행정구역 개편과 관련해서는 기껏 집권 여당이 김포시 등 서울 인접 기초지자체의 서울 편입을 제기해 오히려 지방으로부터 이른바 ‘서울 중심의 일극 체제’로 회귀시키려는 시대 역행적 발상으로 또 다른 분열과 소모적 갈등을 양산하고 있다고 비판받고 있다.

부디 여·야가 이처럼 중차대한 국가적 대사인 행정구역 개편을 우리나라 정치사 최초로 통합 총선공약으로 채택해 공동으로 실현함으로써 진정한 통합과 상생의 실례를 남겨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