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기고>새로운 봄, 더 큰 정(情)과 행복을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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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기고>새로운 봄, 더 큰 정(情)과 행복을 나누고 싶다
주현진 수필가·광주문인협회 이사
  • 입력 : 2024. 02.14(수) 13:09
주현진 수필가
경비실에 택배가 와 있다고 연락이 왔다. 울산에서 사는 딸애가 설날을 앞두고 사과와 배를 보내왔다. 경비실 앞을 자주 지나지만 경비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별로 없었다. 경비 아저씨가 적적했던지 매일 앞을 지나면 얼굴은 자주보지만 이렇게 만나니 반갑다며 명절이 다가오니 옛날의 추억이 생각난다고 했다. 나이가 비슷하니 이야기도 쉽게 나왔다. 과거를 회상하면서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개떡이 먹고 싶다고 했다.” 동생 먹으라고 남겨 놓은 떡을 몰래 배고파서 먹다가 얻어 맞았던 기억을 되살리며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비슷한 애기를 들어본 기억이 난다.

시간이 많이 흘러 알게 된 건데 그때는 물질적인 것은 부족했어도 정(情)이 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 정이 있었던 곳을 회상하신 것이다. 가난하고 굶주리던 시절에도 정이 있어 살 수 있었던 것이고, 이제 시대가 좋아져서 굶을 걱정은 안 해도 되는데도 인간의 정서적인 삶은 오히려 팍팍해지는 것 같다. 못살던 시절에는 영양실조나 위생불량 때문에 불행하다고 생각하며 배부르고 등 따뜻하면 행복할 것 같더니 막상 그렇게 되니까 만족스럽지 못 한 것 같다.

어느 순간 우리나라는 선진국의 물질적 풍요와 정서적 빈곤을 경험하게 되었다. 어느 유럽의 지성인이 한국인들이 얘기하는 정이라는 단어를 한국에서 살다보니 이해하게 되었는데 막상 자기네 나라말로 번역하기 어렵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유럽 사람들은 옛날부터 정이 없었을까. 우리나라 대중가요에 예전에는 정에 대한 노래가 많았다. 그런데 요즘은 트로트 곡을 제외하곤 별로 정을 노래하지 않는 듯 한다. 보릿고개 시절, 어머니가 맷돌에 우리 밀을 갈아 개떡을 만들고 찐빵 만들어 주면 그 맛은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꿀맛이었다. 그뿐인가. 설익은 보리를 맷돌에 갈아 들에서 피는 풋나물을 섞어 보리죽을 써 주어도 그 맛은 지금의 어느 음식보다도 정이 있고 맛이 있었음을 지금에야 느낀다.

우리 선조들은 평생 세 번 고개를 넣어야 했다고 한다. 일년은 보릿고개를 넘고 십년은 아홉수 고개를 넘었단다. 마흔 아홉, 쉰아홉, 예순아홉…. 마지막 고개는 아리랑 고개란다. 일제 강점기 압박과 설움에서 한을 품고 아리랑고개를 부르면서 한을 달랬던 조상들의 지혜에 고개가 숙여진다. 지혜를 담아 정과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내는 솜씨도 국제적인 특허감이다. 생명을 소중하게 여겼던 우리 선조들이 콩을 심을 때 세 알씩 심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이야기다. 한 알은 땅 속 벌레를 위해, 또 한 알은 공중의 새를 위해, 또 다른 한 알은 땀 흘린 농부를 위해서란다. 뜨거운 물도 함부로 쏟지 않았다. 수채 구멍에 뜨거운 물을 바로 흘리면 미물이라도 상함을 당할까봐 식혀서 버렸다니 그 마음 씀이 얼마나 지혜롭고 애틋한가. 스산한 초겨울은 추수가 끝난 들판처럼 황량하기 그지없지만 가을이 남기고 간 정겨운 풍경도 간혹 눈에 들어온다. 가을보다 더 맑고 푸른 초겨울 하늘, 그 쪽빛 하늘과 함께 야트막한 돌담사이 감나무 끝에 함초롬히 달려있는 까치밥도 선조들의 정이 담긴 지혜다.

까치밥은 까치, 까마귀 등 겨우내 주린 날 짐승을 위한 먹이다. 가지 끝에 매달린 홍시에 하찮은 미물까지 배려했다. 선조들의 자애로움이 묻어 있다. 일부 지방에서는 까치밥을 ‘까막밥’이라고도 한다. 지극한 효성으로 늙은 부모 새를 죽을 때까지 봉양하는 까마귀를 위해 남긴 밥이라는 것이다. 까치밥이든 까막밥이든 그것은 한 겨울 폭설이 내리면 먹을 것 구하기가 쉽지 않을 날짐승을 위한 나눔의 정이었다. 짐승들을 위해 가을걷이가 끝난 들녘에 이삭을 다 줍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것도 정을 무엇보다 우선했던 우리 선조님들의 지혜가 서려 있다.

현대인은 언제부턴가, 원인과 과정을 결과보다 중요시하지 않은 것 같다. 나다니엘 호손은 “행복은 나비와 같아라. 잡으려고 하면 항상 저 멀리 달아나지만 가만히 앉아 있으면 스스로 그대의 어깨에 내려앉으니.”라고 했다. “당신의 행복은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 속에서 발견된다.”고 뒤랑팔로는 말했다. 나 자신에게 집착하기 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배려와 마음 씀씀이다. 설이 지나고 오는 19일이면 우수가 찾아온다. 얼었던 대동강 물이 풀린다는 이날은 새로운 봄의 시작이다. 이 봄, 모든 이들이 선조들의 정과 사랑을 담아 만들어 낸 행복이 폭포처럼 충만하기를 기도한다. 다시 찾는 새로운 봄, 필자도 이웃과 친구, 가족과 함께 더 큰 정을 나누고 더 많은 행복을 공유하는 삶을 살아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