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문화향기·이영미> 도시가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테마칼럼
[전남일보]문화향기·이영미> 도시가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
이영미 (주) 집합도시 대표이사
  • 입력 : 2024. 02.20(화) 13:45
이영미 대표이사
■ 역사와 자본의 딜레마 속에서 역사이기를 선택한 사마리텐(La Samaritaine)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셧다운이 진행 중이던 시기, 2021년 6월 파리 센느 강변, 퐁네프 다리 앞에 위치한 사마리텐 백화점은 프랑스 마크롱 정부와 시민의 큰 관심 속에서 화려하게 귀환하였다.

사마리텐은 1870년에 오픈한 백화점으로 1885년, 아르누보 양식의 대가였던 프란츠 주르댕(Frantz Jourdain, 1847-1035)이 설계하였고 1920년에는 미적가치와 실용성을 추구하는 아르데코 양식의 대가 앙리 소바쥬(Henri Sauvage)가 설계하면서 매장을 계속 확장했다. 사마리텐은 파리의 봉 마쉐(Bon marche) 백화점과 함께 미국, 영국 등 세계 백화점의 모델이 되었다. 하지만 2005년, 안전진단을 통해 구조적 문제가 발견되면서 백화점은 강제 폐업하였다. 2001년 LVMH(루이뷔통 모엣 헤네시)는 이를 2억 2500만 유로(약 3,125억원) 인수하였으며, 7억 5000만 유로(약 1조 107억원)를 들여, 역사적 기념물인 사마리텐 백화점을 아르누보 양식으로 복원하였다.

사마리텐 백화점은 에르네스트 코냑(Ernest Cognacq, 1839-1928)이 처음 문을 연 양장점에서 출발하였다. 그는 마리 루이 제이(Marie-Louise Jag, 1838-1925)와 결혼했고 부부는 인근 지역의 부동산을 매입하면서 소매업으로 사업을 확장하였다. 소규모 맞춤형으로 제품을 팔던 방식에서 벗어나 대량 생산된 기성품을 판매했다. ‘사마리텐에는 모든 것이 있다’는 슬로건을 전면에 내세우며, 대중에게 합리적 가격과 일명 ‘아이 쇼핑’도 가능한 현대식 백화점의 시초가 되었다. ‘목로주점’, 반유대주의에 저항하는 드레퓌스 사건 당시 대통령에게 ‘나는 고발한다’ 라는 공개서한을 보낸 진보 지식인으로 잘 알려져 있는 프랑스의 유명한 소설가 에밀 졸라(1840-1902)는 봉 마쉐 백화점을 배경으로 한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1883)을 저술하면서, 자본을 바탕으로 여인들의 욕망과 보육시설, 직원의 복지를 위한 문화시설 등이 구축된 백화점이라는 근대의 거대 사회를 현미경적 시각으로 들여다 보았다. 그런 그가 사마리텐을 ‘현대 상업의 대성당’이라고 비유하였다. 그만큼 이곳은 예술적 가치 뿐만 아니라 역사성과 사회학적 가치가 융합된 쇼핑공간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노후화되고 다시 사용하기 힘든 구조안전진단을 받았던 건물을 세계적인 명품기업인 LVMH 그룹이 인수한 것이다. 철거한 후 사마리텐의 역사성을 적용하여 새롭게 건축하는 것이 약 1조원을 들여서 복원하는 것보다 건축비를 훨씬 절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LVMH 그룹은 인수 이후 오랜 시간 건물을 방치한 채, 호화 부동산 프로젝트를 추진하려고 한다는 대중의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건물의 내외부를 철저히 고증하고 아카이브 한 이후 아르누보 양식으로 복원하는 방법을 선택하면서, 사마리텐은 현재와 미래의 역사에 남게 되었다.

■ 자본과 개발을 선택한 나의 도시, 광주

우리는 어떠한가? 매우 가까운 곳에서 자본 논리에 의해 곧 사라져갈 공간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광주 근대의 노동과 산업유산의 흔적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대지 29만 6340㎡의 전방·일신방직이 바로 그것이다. 현재 몇 개의 건물들만 남게 되고 구조적으로 문제 있거나 활용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는 많은 건물들은 경제적 개발 논리에 의해, 복합쇼핑몰과 호텔·업무시설·주상복합·공공시설 등을 조건으로 하는 대규모 개발에 의해 사라질 예정이다. 과연 이곳은 ‘기억의 장소’가 될 수 있을까?

■ 역사는 기억이 중첩되고 공유될 때 문화가 된다.

우리나라에서 정부예산이 가장 많이 들어간 건물은 2014년 62만 9,145㎡의 부지에 건립한 정부세종청사로서, 총 공사비가 약 1조 3,816억원이 투입되었다. 두 번째는 10여년의 공사와 여러 우여곡절 끝에 개관한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으로서, 연면적 16만 1237㎡, 건축비는 약 7,000억원이 투입되었다. 연면적 70,000㎡인 리모델링비로 약 1조 107억원이 투입된 사마리텐 백화점은 앞서 세종청사와 아시아문화전당의 건축비와 비교해 보면, 사실, LVMH의 선택이 납득이 가지 않는다. 과연 향후 LVMH가 투자 대비 수익을 얼마나 낼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욕망과 자본의 대명사로 세계적 명품의 공룡그룹인 LVMH가 사마리텐 백화점을 에밀졸라가 말한 것처럼 ‘현대 상업의 대성당’으로 다시 복원시켰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한때 백화점의 시초였던 건물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하고 천문학적 돈을 들여 다시 복원시킨 결정 덕분에, 파리 시민은 19세기 아르누보와 아르데코 양식으로 복원된 역사적 기념물로서의 백화점에 대한 기억을 21세기에도 여러 세대가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사마리텐은 파리를 여행하는 이들이 가고 싶은 또 하나의 아이코닉한 문화적 공간으로 역사에 남게 되었고 이곳은 ‘기억의 장소’가 되었다.

■ 라떼는 말이야! _ 세대가 공감할 수 없는 역사는 박제화된 것이다.

세대 차이는 공감할 수 없기 때문에 비롯된다. 역사적 건축과 도시도 세대가 공감할 수 없다면, 그것은 박제화된 박물관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30년 이상이 된 아파트는 거주보다는 재건축을 기다리는 투자 대상으로 바라보고 50년 이상 된 주택은 철거 대상이라고 당연히 생각한다. 그렇게 자본의 논리로 인해, 옛 도시의 구조는 거의 남지 않게 되었고 어릴 적 고무줄하며 뛰어 놀던 골목길은 사라진지 오래다. 내 아이의 손을 붙잡고 보여줄 나의 고향은 사라졌다. 우리의 아이들도 30년 후면, 그들의 추억이 담긴 고향은 볼 수 없을지 모른다. 우리는 개발논리와 욕망으로 인해 역사와 기억을 잃어버린 낯선 빌딩 숲 거리를 걸을 수밖에 없다.

요즘은 후배 세대에게 10-20년 이전의 일을 이야기 할 때 이렇게 말을 시작한다. ‘라떼는 말이야~!’ 이 말은 나와 기억을 공유하지 못한 시기를 살고 있고 세대에게 사용하는 언어이다. 젊은 시절, 자주 갔던 영화관, 카페가 여전히 남아 있다면, 나의 아이와 함께 그곳을 방문할 때, 우리는 장소의 기억을 공유한 세대가 된다. ‘라떼는 말이야’ 라는 언어가 필요 없다.

사마리텐 백화점은 1870년대 백화점으로 시작해서, 1905년 확장을 시작한 이후, 2005년 폐업 때까지 백화점이었다. 2021년 리모델링을 거친 현재도 백화점으로 사용하고 있다. 약 150년의 시간 동안, 센느강변에 서있는 사마리텐 백화점을 할머니, 엄마, 아이는 함께 기억한다. 그렇게 기억은 공유되고 전승된다. 여행객들은 그곳의 살아있는 역사와 기억을 엿보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기꺼이 지갑을 연다. 이것이 살아있는 역사이고 문화가 된 역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