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김정숙 교수의 필름 에세이>자극적인 화면에 담긴 유쾌한 메시지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테마칼럼
[전남일보]김정숙 교수의 필름 에세이>자극적인 화면에 담긴 유쾌한 메시지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가여운 것들
  • 입력 : 2024. 03.17(일) 15:11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가여운 것들.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가여운 것들 포스터.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파격적이고 기발한 상상력으로 관객의 허를 찌르는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그의 특이함은 배우를 아카데미 수상자로 만드는 제조기와도 같다 할까. 전작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2019)에서도 올리비아 콜맨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을 만큼 연기력이 돋보였고, 여왕을 괴팍하고도 아둔한 바보처럼 그려낸 감독이 누구인지 관심을 끌기도 했다.

감독의 여덟 번째 작품인 영화 ‘가여운 것들’은 심리학자 매슬로(A. H. Maslow)가 말한 인간의 욕구 단계설을 화면에 입증해 보이는 것 같았다. 특히 ‘인간의 기초적 욕구인 생리적 욕구 단계에서는 안전동기가 부여될 수 없으며 높은 단계에 이르러야만 안전동기가 부여된다’는 욕구의 5단계론에 스토리의 옷을 입혀 실험 실증하는 것마냥 느껴졌다. 자살을 시도한 임산부에게 태아의 뇌를 이식하여 살려내는 발상부터 특이한 이 스토리는 스코틀랜드 작가 앨러스데어 그레이의 소설 ‘Poor Things (가여운 것들)’(1992)가 원작이다.

배경은 빅토리아 시대(1837~1901). 여성의 도덕성을 강조하던 시대였지만 역사적으로 가장 방탕했던 시대이기도 했다. 남편 블레싱턴 경(배우 크리스토퍼 애벗)의 폭압에 시달리다 못해 템즈강에 몸을 던진 임산부 빅토리아(배우 엠마 스톤)는 당시의 여성이 얼마나 억압되고 가여운 지위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준다. 괴팍하고 흉한 외모를 가진 꾀짜 의사 고드윈 벡스터(배우 윌렘 데포)는 빅토리아를 태아의 뇌로 살려내고 ‘벨라’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벨라 벡스터의 창조주나 다름없는 그 역시 실험을 했을 뿐이다. 어른의 몸을 한 갓난아이 상태로부터 성장해가는 벨라는 인간의 3대 생리적 욕구, 기(飢), 갈(渴), 성(性)을 차례로 탐닉한다.

벨라의 주변 남성들은 하나같이 억압적이다. 벡스터는 벨라를 자신의 조수 맥스(배우 라미 유세프)와 결혼시킴으로써 자신의 곁에 두는 구속을 하려 한다. 맥스는 벨라의 어법을 지적하고 여행하는 동안 만난 남자 해리도 벨라의 예법을 지적질한다. 바람둥이 변호사 덩컨(배우 마크 러팔로) 역시 호기심 많은 벨라를 위해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는 듯하지만 그의 곁에 두고 가두려는 억압을 하려는 것은 매일반이다. 반면, 벨라는 사회의 빈부격차에 눈뜨고 성차별, 참정권과 노동권을 지적하기에 이른다.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말하고 남자의 소유물이 되기를 거부하며 자기 힘으로 삶을 개척해 나가는 성숙의 과정을 겪으며, 자신이 받은 타격과 사회적 충격을 기반으로 견문을 넓히는 데 집중한다. 에머슨의 시집을 읽으며 왜 그의 진화론은 남성의 사례에 국한하는지 의문을 품고,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읽으며 심신의 자유를 얻기 위해 투쟁한다. 벨라가 주체로 서는 과정에서 섹스 역시 긴요한 수단으로 작용한다.

카메라는 벨라가 온전한 개체의 자리를 점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어안렌즈와 광각렌즈를 통해 벨라의 주변 세계를 왜곡된 프레임으로 보여주다가 벨라의 성장에 따라 점차 정상적인 프레임으로 바뀐다. 벨라는 세상을 깨우치고 이해할 때마다 시선을 위로 올려본다. 올라가는 계단 또한 벨라의 성장·성숙의 상징으로 사용된다. 그러다 고통이나 단절감, 빈민촌을 바라보는 충격 등은 시선이 위에서 아래를 향한다. 자신의 본능과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문, 세상에 대한 궁금증 등을 끝없이 해부하고 탐구하던 벨라는 마침내 온전히 재구성된 자유로운 자신과 마주한다. 박수를 치고 싶을 만큼 경탄의 결말이다.

과연 가여운 것들은 누구일까, 무엇일까를 생각해보게 만드는 영화. 감독의 전작처럼 자극적인 화면과 극단적인 콘텐츠로 괴작을 만든 건 분명하나, 그 안에 담긴 메시지 만큼은 확고한, 그래서 유쾌한 영화였다. 엠마 스톤은 이 작품으로 수많은 상과 함께 마침내 2024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렇지만 필자는 작품을 위해 과하게 자신의 몸을 희생한 여배우 역시 왠지 가엾다. 아무래도 필자의 가치관을 오염시킨 가여운 것 들이 많은 모양이다. 3월 6일 개봉.백제예술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