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수 대한적십자사 광주전남혈액원장이 지난 17일 오후 옛 광주적십자병원에서 고려고등학교 학생에게 80년 오월 현장 상황과 5·18 헌혈의 역사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정승우 기자 |
5·18 45주년 기념일을 하루 앞둔 지난 17일 오후 광주광역시 동구 5·18민주화운동 사적지 제11호 ‘옛 광주적십자병원(천변우로 415)’에는 시민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병원 내부는 45년 전 그날의 기억을 온전히 간직한 모습이었다. 낡은 경칩, 벗겨진 페인트는 오랜 시간의 흔적을 증명했다. 건물 1층과 마당만 개방됐지만 병원을 찾은 시민들은 그날의 분위기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이날 오후 김동수 대한적십자사 광주전남혈액원장과 고려고등학교 레드캠페이너 학생 9명이 병원을 찾았다. 김동수 원장은 5·18 이후 12년이 흐른 1992년 적십자사에 입사, 옛 적십자병원에 발령받아 1년 6개월간 근무했다. 역사적 현장에서 근무하며 5월의 목격담을 들었던 그는 생생한 그날의 현장과 적십자 인도주의 활동, 오월 광주의 헌혈 역사를 학생들에게 들려줬다.
김 원장은 “5월 21일 계엄군이 시민들을 향해 집단 발포한 날, 가장 가까운 병원이었던 이곳에 많은 광주 시민들이 총상을 입어 피를 흘리며 실려 왔다”며 “응급실에 침상이 부족해 자리를 잡지 못한 부상자들은 복도에 누워 의료진들의 치료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피를 흘리는 환자에게 무엇이 필요하냐”는 김 원장의 질문에 학생들은 “마취제, 혈액”이라고 대답했다. 관람을 하던 시민들도 발걸음을 멈추고 김 원장의 설명에 귀 기울이며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김 원장은 적십자 병원에서 이뤄졌던 수많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헌혈로 실현된 인도주의 정신을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그는 “당시 적십자 병원에 혈액이 필요한 부상자들이 많았지만 계엄군에 의해 혈액을 구하기가 힘든 상황이었다”며 “하지만 광주 시민들은 겁 먹지 않고 팔을 걷어붙이고 대동정신을 보였다. 21~22일 411병의 혈액이 채혈됐고 병원 앞에는 헌혈을 하기 위해 시민들이 50m 넘게 줄을 섰다”고 힘줘 말했다.
헌혈을 하고 집으로 귀가하던 중 계엄군의 총을 맞고 세상을 떠난 박금희 열사의 이야기를 들은 학생과 시민들은 탄식과 함께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이어 “당시 병원에서는 군인들과 시민들을 가리지 않고 의사와 간호사, 직원 등이 열흘 동안 철야 근무를 하며 치료하고 구호했다”며 “모든 부상자를 차별 없이 돕는 적십자사의 인도주의 정신을 보여주는 사례다”고 말했다.
![]() 김동수 대한적십자사 광주전남혈액원장이 지난 17일 오후 옛 광주적십자병원에서 고려고등학교 학생들과 함께 시민헌혈 캠페인 홍보활동을 하고 있다. 정승우 기자 |
고려고 1학년 옥지원(17)군은 “병원에서 근무했던 원장님의 설명을 들으니 당시의 상황이 더욱 생생히 느껴진다”며 “45년 전 급박했던 순간에도 광주 시민들의 헌혈 행렬에 감동 받았다. 생일이 지나는 대로 바로 헌혈을 하러 가겠다”고 다짐했다.
고려고 1학년 나준성(17)군은 “5·18 당시에 위험을 무릅쓰고 헌혈을 하기 위해 병원을 찾은 시민들의 연대 정신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됐다”며 “적십자 병원에 근무했던 의료진처럼 앞으로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는 분야에서 힘을 쓰고 싶다”고 소감을 말했다.
해설을 마친 김 원장은 건물을 둘러보며 광주의 헌혈 역사를 품고 있는 적십자병원이 지속적으로 관리 되길 바란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적십자병원에 대한 관심이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길 바란다. 리모델링으로 시민들의 안전한 관람이 가능해져 병원 전체가 개방됐으면 좋겠다”며 “헌혈을 통한 생명의 나눔과 대동정신이 깃든 이곳이 잘 보존돼 헌혈 교육의 장소로 활용됐으면 한다”고 소망했다.
정승우 기자 seungwoo.jeo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