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정신 헌법전문 수록해 오월영령 맺힌 恨 풀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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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정신 헌법전문 수록해 오월영령 맺힌 恨 풀어야"
●제45주년 5·18 기념식 이모저모
시간 지나도 상흔은 여전…'눈물만'
나눔·연대로 오월 '대동정신' 실현
"全공원 반대" 합천군민 집회 눈길
"내란 동조" 인권위원장 퇴장 당해
행사장 내 무장군인, 오월단체 질타
  • 입력 : 2025. 05.18(일) 18:52
  • 윤준명·정승우 기자
5·18민주화운동 제45주년 기념식이 열린 18일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5·18국립묘지에서 생명의숲되찾기합천군민운동본부가 ‘일해공원 폐지법안 발의’를 촉구하고 있다. 정승우 기자
5·18민주화운동 제45주년 기념식이 열린 18일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5·18국립묘지에서 한 유족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윤준명 기자
어느덧 4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5·18민주화운동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계엄군의 총칼에 가족을 잃은 유족들의 눈물은 아직 마르지 않았고, 열사의 숭고한 뜻을 잇기 위한 시민들의 따뜻한 연대는 묘지를 가득 채웠다. 무소속 국회의원의 입당 선언부터 국가인권위원장에 대한 참배 거부, 무장 군인 행사장 배치 논란까지 올해 오월의 묘역 안팎은 그 어느 해보다 뜨거우면서도 복잡한 풍경을 만들어냈다.

●무뎌지지 않는 아픔, 말없이 흘러내린 눈물

제45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열린 18일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는 이른 아침부터 유족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하얀 소복 차림으로 묘역을 찾은 유족들은 그날의 아픔을 되새기며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의 실제 주인공, 문재학 열사의 어머니 김길자 여사는 “하루도 그날을 잊은 적 없다. 5월이 되면 더욱 가슴에 사무쳐 괴롭다”며 “한강 작가가 5·18을 세계에 알려주고, 국민들도 많은 관심을 가져줘 감사한 마음뿐”이라며 멈추지 않는 눈물을 쏟아냈다. 이어 “재학아, 엄마의 검은 머리는 어느새 하얀 백발이 됐다. 오월 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해 한을 풀어줘야만 너를 만나러 갈 수 있을 것 같다”며 “열심히 투쟁할 테니 하늘에서 지켜봐 달라”며 문 열사의 묘비를 연신 쓰다듬었다.

부상 후유증에 시달리다 작고한 김영철 열사의 아내 김순자(72) 여사도 영정사진을 정성스레 닦으며 떠난 남편을 회상했다. 김 여사는 “당시는 살아 돌아온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이후 고통이 심해 많이 힘들어했다. 남편을 생각하면 불쌍해 눈물만 흐른다”면서 “오월 정신이 헌법 전문에 수록돼, 계엄과 같은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당신의 원통함 알기에’…참사유가족의 연대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도 민주묘지를 찾아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다. 이는 같은 상처를 지닌 이들이 서로를 위로하고 기억하자는 동행의 일환이다. 특히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오월어머니들은 지역민들과 함께 ‘광주시민상주모임’에 참여하고 유가족 위로 책자를 펴내는 등 변함없는 지지로 ‘4월 어머니들’에게 용기를 전해온 바 있다.

단원고 2학년5반 이창현군의 어머니 최순화(60)씨는 “5·18 행방불명자 중 아들과 이름이 같은 양동국민학교 1학년 이창현군이 있다. 너무 애틋한 마음에 매년 그의 묘비를 참배하고는 한다”며 “이군이 얼른 가족 품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간절한 소망을 밝혔다.

5·18민주화운동 제45주년 기념식이 열린 18일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5·18국립묘지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참배객들에게 나눠줄 ‘광주 주먹밥’을 만들고 있다. 정승우 기자
●“대동정신”…나눔으로 기억하는 사람들

민주묘지 주변에서는 ‘대동정신’을 실천하는 각종 단체의 따뜻한 나눔이 이어졌다. 한 손에는 주먹밥, 다른 손에는 생수를 들고 분주히 오가는 이들의 모습은 ‘오월 광주’를 지탱해 온 공동체 의식의 상징과 같았다. 20여년동안 주먹밥 나눔을 실천해온 솔잎쉼터 봉사단 회원들은 올해도 기념식을 찾은 유가족과 시민들을 위해 주먹밥과 각종 반찬으로 이뤄진 2만명 분의 식사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부덕임(75) 솔잎쉼터 대표는 “주먹밥은 어려움을 함께 이겨냈던 광주의 상징이자, 우리 민주주의의 상징”이라며 “그날의 참상을 지켜본 광주시민으로서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다짐”이라고 밝혔다.

북구새마을부녀회는 초여름 더위 속 시원한 생수를 배부하며, 참배객들의 갈증을 덜어냈다. 김옥자(64) 북구새마을부녀회장은 “부녀회원들은 매년 묘지를 찾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음료를 제공하고 있다”며 “시민들의 추모를 돕고, 나눔과 봉사를 통해 모두가 연대하자는 취지”라고 밝혔다.

참배객들에게 국화꽃을 무료로 나누는 장년의 남성들도 눈길을 끌었다. 동호회 ‘그날’ 회원들은 지난 2004년부터 매년 사비를 털어 나눔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5·18을 잊지 않기 위해 활동 잡지를 발간하는 등 각종 추모활동도 이어오고 있다.

기행종(62)씨는 “대학생이던 5·18 당시 계엄군의 폭력에 맞서 싸웠던 지인과 친구들이 이곳에 잠들어 있다. ‘나는 과연 무엇을 했는가’라는 부끄러움에서 시작해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며 “시간이 지나더라도 5·18은 기억돼야 한다. 많은 이들이 우리의 기억활동에 동참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강조했다.

●전국 각지서 모인 시민들, ‘민주화’ 한 목소리

전국 각지에서 광주를 찾은 참배객들은 저마다 바라는 ‘민주주의’를 목 놓아 외쳤다.

생명의숲되찾기합천군민운동본부는 민주의 문 앞에서 ‘전두환 공원 폐지 법안’을 즉각 발의할 것을 촉구했다. 활동가 고동의(55)씨는 “전두환의 고향 합천에는 그의 호를 딴 일해공원과 같은 잔재가 남아있다”며 “전국에 남은 부끄러운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합천군민으로서 서명운동을 펼치고 있다. 범죄자들을 미화하고 찬양하는 기념물을 그대로 두는 것은 피로 세운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도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단체는 “조국 민주화를 위해 산화한 수많은 열사의 유가족들은 30여년동안 법 제정을 위해 투쟁하고 있다”며 “지난 21대 국회에서 본회의를 통과했으나, 대통령 거부권 행사로 물거품이 됐다. 이들에 대한 제도적 명예회복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국민을 총칼로 위협하는 세력들이 역사에 재등장할 것”이라고 강력히 주장했다.

5·18민주화운동 제45주년 기념식이 열린 18일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5·18국립묘지를 찾은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이 시민들의 반대에 막혀 현장을 떠나고 있다. 윤준명 기자
●김상욱 입당·안창호 퇴장…‘민주의 문’서 엇갈린 발걸음

대통령 탄핵에 따른 조기대선 정국 속에서 광주는 정치적 격랑의 중심이 됐다. 이날 민주묘지에서는 상반된 방향의 발걸음이 연출됐다.

국민의힘을 탈당한 무소속 김상욱 의원은 기념식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더불어민주당 입당을 공식 선언했다. 그는 “국민의힘은 정당으로서 기능이 사실상 마비됐다”며 “민주당 내에서 보수와 진보 사이의 균형 정치를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조기대선 정국에서 이재명 후보 지지 선언 이틀 만에 입당을 결정한 그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지지자들의 환호 속에 민주의 문을 통과했다.

반면, 비슷한 시간 민주의 문을 통과했던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은 시민단체의 거센 항의에 부딪히면서, 10여분만에 쫓기듯 묘지를 빠져나왔다. 시민들은 안 위원장이 지난 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방어권 보장을 포함한 계엄 관련 권고안을 의결한 점 등을 ‘내란 동조’로 규정했고, “안창호는 사퇴하라”를 외치며, 그의 참석에 강하게 반발했다. 안 위원장은 분노한 시민들에게 에워싸여 뜻 모를 미소를 지은 채 차량에 탑승, 현장을 떠났다. 미소를 목격한 시민들의 분노는 더욱 거세졌고, 안 위원장이 떠난 뒤에도 그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무장한 군인 배치, 누구를 위한 기념식인가” 질타

기념식에서 사용된 곡과 행사 연출을 두고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묵념 시간에는 ‘죽은 군인을 위한 노래’가 울려퍼졌고, 헌화 도우미로는 제복을 입은 군인이 배치됐다. 특히 기념식 무대 좌우에는 무장한 군인들이 자리하면서, 이들이 착용한 군복이 지난해 12·3비상계엄 시도 당시 국회에 출동했던 계엄군과 동일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5·18기념재단은 행사 직후 보도자료를 내고 “5·18의 가해자는 계엄군, 즉 군인이다”며 “정부는 기념식을 준비할 때, 이 사건이 왜 발생했는지, 가해자가 누구이고 피해자가 누구인지를 고려했어야 한다”고 규탄했다.
윤준명·정승우 기자
대선 후보들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 한 목소리
“헌혈 통한 80년 5월 생명 나눔정신 이어가야”
'함께, 오월을 쓰다' 제45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