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 이주, 공사 지연…재개발에 무너진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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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강제 이주, 공사 지연…재개발에 무너진 주민들
●학동 참사 그후 4년 <1>갈 곳 잃은 사람들
붕괴 참사 후 “집도 일도 잃었다”
입주 늦어지며 전세집 전전 한숨
“임대 수익 사라져 생계도 막막”
공사비 상승에 입주 포기도 속출
  • 입력 : 2025. 07.21(월) 18:51
  • 정유철 기자 yoocheol.jeong@jnilbo.com
광주광역시 동구 학둥4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 부지. 철거 중이던 건물이 붕괴돼 17명의 사상자를 낸 학동 참사 이후 공사 지연과 공사비 상승으로 입주예정자들의 고통이 커지고 있다. 정유철 기자
지난 2021년 6월 철거 중이던 건물이 붕괴돼 17명의 사상자를 낸 광주 동구 학동 참사가 남긴 것은 무고한 시민의 죽음만은 아니었다. 수년째 지연된 재개발 공사는 살아남은 자들의 생계까지 위협하고 있다. 연면적 41만㎡ 규모의 대형 재개발 사업이 중단되면서 도심 슬럼화 현상이 발생하고, 이주한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은 채 떠돌고 있다. 이에 본보는 5차례에 걸쳐 학동4구역 주택재개발 사업 중 발생한 참사 이후의 실태를 조명한다. 이는 각종 비위와 구조적 문제로 발생한 또 다른 재난이기 때문이다. <편집자주>



“그저 잘 되겠지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풀릴 기미는 커녕 더욱 더 일이 꼬이고만 있습니다.”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4구역 주택재개발 정비사업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 건설로 총 세대수는 2299세대다. 이 중 약 660세대가 조합원(원주민 330여세대)이고, 나머지는 일반 분양권자다.

그러나 지난 2021년 6월 학동 참사가 발생한 이후 많은 이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

특히 원주민을 포함한 조합원 330여 세대는 강제 이주와 오랜 공사 지연으로 인한 추가 부담금 등 금전적 손실은 물론 건강과 생활 전반에 큰 타격을 받았다. 이들은 가게를 접고, 임대 수익을 잃고, 전세집을 떠돌고, 신경안정제를 먹으며 버티고 있다. 지난 수년간 이들이 경험한 것은 기약 없는 사업 지연과 공사비 폭등, 그리고 책임을 지지 않는 조합과 시공사의 논리뿐이었다.

학동4구역에서 4대째 3층짜리 작은 상가·주택 건물에서 임대업 등으로 생계를 꾸려온 A(69)씨는 재개발 사업 때문에 일상이 무너졌다고 하소연한다.

A씨는 지난 2019년 9월, 철거가 예정된 건물에서 퇴거했다. 조합으로부터 아파트 분양권과 자산 권리가액 명목으로 시세의 60% 수준 돈을 받고 전세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지난 2021년 6월 9일, 재개발 철거 공사 중 일어난 ‘학동 참사’ 이후 공사가 전면 중단되면서 A씨의 계획은 꼬이기 시작했다. 2023년 입주를 예상했던 A씨는 전세 계약이 만료된 지난해 겨울, ‘집을 빼달라’는 집주인의 요구에 갈 곳을 잃었다.

가까스로 작은 주택을 구했지만, 이 과정에서 스트레스로 병이 생겼고, 일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그러나 집을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복지 지원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A씨는 “작은 상가라도 있던 시절엔 임대 수익으로라도 살아갈 수 있었지만, 지금은 수입이 완전히 끊긴 상태”라며 “현재로서는 앞길이 매우 막막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학동 참사에는 여러가지 추한 뒷면이 있었다. 불법 재하도급, 로비 의혹, 부실 공법 사용, 조합장 비위 건 등이었다. 재개발 사업은 당연히 멈췄다.

2023년 입주할 것으로 예상했던 A씨는 전세계약이 만료된 지난해 겨울, ‘집을 빼달라’는 집주인의 말에 갈 곳을 잃고 말았다.

생계에 직격탄을 맞은 것은 상가주택 소유주 B(60)씨도 마찬가지다. 그는 이곳에서 가게를 운영하며 거주해 온 원주민이다. 2019년 조합의 이주 요청으로 자산 권리가액 절반을 받고 이사를 했고, 다른 곳에서 높은 임대료를 감수하며 살아가고 있다.

B씨는 학동 참사로 입주 일정이 지연되면서 많은 빚을 떠안게 되자, 심리적 스트레스를 받아 신경안정제를 처방받기에 이르렀다. 최근 시공사와 조합이 분양가마저 올린다는 소식에 사실상 입주도 포기한 상태다.

B씨는 “시공사와 조합이 지원한 권리금(자산 권리가액)도 원래 제 돈 아니냐. 이사 비용 지원도 없었다”며 “저의 노후 계획은 완전히 망가졌고, 계속 피해만 늘어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셀프세차장을 운영했던 C(77)씨의 사업도 엉망이 됐다.

그는 재개발로 인해 자산 권리가액(사업체)3분의 1 정도만 받게 돼, 다른 곳에서 사업을 이어갈 수 없게 됐다.

C씨는 “학동4구역 공사 지연으로 잘 해왔던 사업이 무너진 상황이다. 문제는 아무도 보상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D(65)씨는 노후에 살기 위해 학동4구역에 있던 단독주택을 통해 분양권을 샀다. 새 집으로 입주할 부푼 기대를 품었던 그는 다주택자가 될까봐 기존 집을 처분했지만 공사 지연으로 현재는 자녀 집에 얹혀 살고 있다.

여기에 공사비 상승으로 추가 부담금이 1억~2억원가량 높아져 입주도 포기했다.

D씨는 “입주하게 되더라도 이 나이에 나머지 돈을 어떻게 지불하겠는가. 결국 시공사와 조합 측에 집만 뺏긴 셈”이라고 말했다.
정유철 기자 yoocheol.jeo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