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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에 들어서니 새맑은 하늘 아래 여기저기 접시꽃이 많이 피었다. 출근길에 지나치는 봉산 작은 절집 담벼락에도, 수북학구당 길섶에도 자홍색, 흰색, 붉은색으로 치장한 접시꽃들이 소담하게 피어 고운 자태를 드러낸다. 접시꽃은 초가의 사립문 옆에나 장독대, 국민학교 교정, 완행열차가 쉬어가던 간이역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여름꽃이다. 키 크고 잘생긴 외형과 다르게 접시꽃은 여느 꽃들이 가진 황홀하고 진한 향기는 없다. 하지만 누가 보든 말든 철이 되면 늘 그 자리에서 피고 지며 집을 지키고 손님을 맞이한다. 그래서 더...
2025.06.09 16:55삼국지 ‘순욱전(荀彧傳)’에 이런 고사가 있다. 동한 말기 당시만 해도 조조의 실력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그러나 몇 차례 전투에서 승리한 후, 특히 산동성 연주 일대에서 여포를 격파한 후 그의 세력은 상당히 커졌다. 연주 근처의 서주는 그 지세가 험한 요충지인 데다가 각종 산물이 풍부해서 조조는 진작부터 이 지방을 손에 넣고 싶어 했다. 그러나 서주를 지키는 도겸이라는 인물이 워낙 인심을 얻고 있는지라 한 차례 전투를 벌여보았지만 여의치 않았다. 그 뒤 도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조조는 곧 서주를 공격하려고 했다. 이때 조...
2025.06.08 18:49장미는 신비로운 꽃이다. 장미처럼 인류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꽃은 흔치 않다. 이에 얽힌 신화나 전설도 수없이 많다. 로마신화에선 불사(不死)의 꽃으로 불린다. 태양신 아폴로는 죽은 숲의 요정 ‘님프’에게 생명의 빛을 내려 장미로 되살렸다. 그 때 비너스 신은 미(美)를, 바커스 신은 향기를, 꽃의 여신 플로라는 붉은 빛깔을 내렸다. 님프를 무척 사랑한 플로라는 ‘차가움’을 암시하는 푸른 빛은 내리지 않았다. 순결의 백장미, 정열의 홍(紅)장미는 있어도, 푸른 장미는 없는 ‘이유’다. 장미는 사랑과 아름다움, 환희의 상징이다...
2025.06.04 14:28‘천하우락재선거(天下憂樂在選擧)’. 세상의 모든 걱정과 기쁨은 올바른 선택에 달렸다는 뜻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최한기가 남긴 이 말은, 오늘 우리가 목격한 대통령 선거 결과를 되새기기에 더없이 적절한 문장이다. 유례없는 국정 공백 속에서 치러진 이번 조기 대선은 단지 권력 교체를 넘어, 공동체 전체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겠다는 국민적 의지의 표현이었다. 오늘의 선택은 곧 대한민국이 위기 앞에서 내딛는 첫걸음이자, 역사에 남을 이정표가 됐다. 이번 대선은 그 자체로 여러 상징을 품었다. 정치에 대한 실망과 무관심, 갈라진 여...
2025.06.03 21:07지구촌 곳곳이 ‘기후 위플래시(hydroclimate whiplash)’로 몸살을 앓고 있다. 우리말로 ‘hydroclimate’는 수중기후, ‘whiplash’는 채찍질을 뜻하는 데, 학계에서 극단적인 기후현상을 표현할 때 쓰는 용어다. 말 그대로 ‘기후로 채찍질을 한다’는 것인데, 예를 들자면 기후 변화로 인해 극심한 무더위와 가뭄이 지속되다가 갑자기 폭우가 쏟아진다거나, 홍수가 발생한 후에 곧바로 가뭄이 찾아오는 현상이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스위스의 한 산간마을을 대규모 산사태가 덮쳐 마을의 90%가 매몰되는 끔찍...
2025.06.02 17:37“라면 국물만 먹어도 광우병에 걸릴 수 있습니다. 성장 이상과 생식기능 저하를 겪을 수 있습니다.” 2008년 대한민국은 미국산 소고기와 광우병에 대한 공포가 온 사회를 지배했다. 라면 스프에 흔히 사용되는 소고기 분말을 놓고도 ‘미국산’과 ‘광우병’이라는 키워드가 따라붙었다. 특정 라면업체에는 ‘광우병에 걸린 소뼈를 갈아 넣어 스프를 만든다’는 괴담까지 퍼지며 불매운동을 벌이자는 움직임까지 일어났다. 관련 식품업계를 휘청이게 할 정도의 파동이었지만, 지난해 국내 수입육 시장의 미국산 소고기 점유율은 48.1%로 당시의 공포는...
2025.06.01 17:15“어화 조물주의 솜씨 야단스럽고 야단스럽다/저 수많은 봉우리들 나는 듯 뛰는 듯 하고/우뚝 서 있으면서 솟은 듯도 하니, 참으로 장관이로다….” 1580년 송강 정철이 지은 ‘관동별곡’은 웅장하고 화려한 문체가 돋보이는 대표적인 가사 문학이다. 임진왜란 시기, 수많은 당쟁에 휩싸였던 송강. 그 해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하면서 실로 오랫만에 당쟁에서 벗어난 그는 내금강에서 비로봉을 거쳐 해금강과 동해의 해돋이를 둘러본 뒤 금강산의 아름다운 절경들을 생동감 넘치는 시로 그려냈다. 기괴한 산수와 미려한 풍경, 장엄한 대자연을 노래한 시어들...
2025.05.29 17:22광주시와 지역 대학이 손을 맞잡았다. 인구 감소, 청년 유출, 수도권 집중이라는 어려운 숙제를 ‘교육’을 통해 풀어보겠다는 각오다. 이름하여 ‘RISE(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 사업이다. 지난 5월 27일, 광주광역시청에서 광주시와 17개 대학은 ‘라이즈(RISE) 사업 협약식’을 맺고 본격 실행에 돌입했다. 한마디로 이 사업은 ‘지역이 키우는 대학, 대학이 살리는 지역’을 목표로 한다. 많이 들어본 말이지만, 이번엔 조금 다르다. 단순한 대학 지원이 아닌, 대학을 중심에 두고 지역 전체를 다시 짜겠다는 시도다. 학령인구 ...
2025.05.28 14:58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군의 개입으로 세 차례 심각한 위기를 겪었다. 1961년 5·16 쿠데타, 1979년 12·12 군사반란, 그리고 2024년 12·3 비상계엄 시도. 이 세 사건 모두 육군사관학교 출신 인사들이 중심에 있었다. 총을 앞세운 정치 개입은 헌정 질서를 유린하고 국민 주권을 위협했다. 군의 권력화를 제도적으로 차단하지 못한 결과였다. 현재 국방부 장관은 법적으로 평시 군령권을 갖고 있다. 전역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은 장성이 장관으로 취임해 실질적 작전권까지 행사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역대 50명의 장관 중...
2025.05.27 17:29“국민은 헌정사에서 군의 정치개입을 반복하지 않고자 국군의 정치적 중립성을 헌법에 명시했지만, 국군통수권자인 피청구인이 정치적 목적으로 권한을 남용해 군인들이 또다시 일반 시민들과 대치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헌법재판소가 지난달 4일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을 결정하면서 언급했던 이 문장은 지난 80년간 5·16, 12·12 군사반란에 이어 12·3 계엄으로 이어진 사태의 중심엔 군이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1945년 광복 이래 군은 호국의 방패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기도 했지만 정치권력의 한복판에 뛰어들어 국가와 국민을 상대로...
2025.05.26 17:19대한민국 최초의 민주적 방식을 통한 공직자 선출은 1948년 5월10일에 있었던 제헌국회의원 선거다. 이 제헌국회의원 선거의 투표율은 무려 95.5% 였으며 강원도의 경우 98.2%라는 압도적인 투표율을 기록했었다. 유엔 감시하에 치러졌으며,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이뤄진 선거이자 남녀 모두가 평등하게 누릴 수 있는 투표권이 제공됐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뒤이어 1948년 7월20일에는 초대 대통령 및 부통령 선거가 있었다. 직선제는 아니고 간선제였다. 최초의 대선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당선됐다. 지방선거는 ...
2025.05.26 10:00“걷기를 통해 마음을 정리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혔다.” 배우와 작가, 감독으로 유명한 만능 엔터테이너 하정우에게 걷기는 ‘자신을 위로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평균 하루 3만 보, 많을 때는 10만 보까지 걷는다는 그는 걷기를 ‘두 발로 하는 기도’라고 말한다. 건강한 두 다리로 세상을 누비고, 그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들은 하정우에게 지속가능한 삶을 가져다 준 동력이다. 기쁨과 슬픔, 성공과 실패가 공존하는 기나긴 여정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깨달음을 얻는 것도 걷기가 있어 가능했다. ‘내가 길을 걷는 게 아니...
2025.05.22 16:56고대 아테네에는 비합법적인 수단으로 지배자가 될 수 있는 위험이 있는 정치인을 추방하는 ‘도편추방제’가 있었다. 시민들은 해마다 투표를 통해 도편추방제를 실시할 것임을 정했으며, 추방이 결정되면 깨진 도자기 조각에 해당 정치인의 이름을 적어 그를 10년간 도시 밖으로 내쫓았다. 누구보다 ‘공정한 사람’으로 불렸던 아리스테이데스도 이를 피할 수는 없었다. 어느 날 길을 걷던 아리스테이데스에게 한 시골 사람이 도자기 조각을 내밀어 이름을 적어 달라고 부탁했다. 누구 이름을 적어야 할지 묻는 아르스테이데스에게 시골 사람은 ‘아리스테...
2025.05.21 16:37담배회사를 상대로 한 첫 소송은 지금으로부터 70년 전, 1954년 미국에서 시작됐다. 한 개인 흡연자가 폐암 진단을 받고 “담배 때문에 병들었다”며 법정에 섰다. 하지만 법정은 냉정했다. 의학적 증거는 부족했고, 흡연과 질병 사이 인과관계는 명확하지 않았다. 기업의 방어 논리는 강했고, 소송 비용은 천문학적이었다. “흡연은 당신의 선택”이라는 말 앞에서 피해자의 진실은 늘 뒤로 밀렸다. 그로부터 40년, 흡연자들은 번번이 졌고, 담배회사는 승소를 거듭했다. 1994년, 미시시피주가 움직였다. 처음으로 주정부가 담배로 인한 건...
2025.05.20 13:53‘새옹지마(塞翁之馬)’는 인생의 길흉화복이 항상 바뀌어 예측할 수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고사성어다. 이는 중국 고전 ‘회남자’의 ‘인간훈’ 편에서 유래됐다. 변방에 살던 한 노인이 기르던 말이 도망가자 마을 사람들이 위로했지만, 노인은 “이것이 복이 될지 누가 알겠소?”라며 낙심하지 않았다. 몇 달 후, 말은 다른 준마를 데리고 돌아왔고, 마을 사람들은 축하했지만 노인은 다시 “이것이 화가 될지 누가 알겠소?”라며 기뻐하지 않았다. 이후 노인의 아들이 그 말을 타다가 다리가 부러졌지만, 이 일로 인해 전쟁에서 징집되지 않아...
2025.05.19 1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