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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초하루, 세월 참 빠르다. 어느새 올해도 절반이나 지났다. 엊그제 모내기한 것 같은데, 출퇴근길 지나다니는 성산 삼지천 들판 가득한 벼들이 금세 한 뼘은 더 자라 온통 함초롬하다. 금방이라도 달빛아래 하얀 벼꽃을 피어올릴 기세다. 새맑은 하늘아래 파랗게 치솟는 벼들을 보노라니, 황금물결 일렁이는 가을날의 풍요가 그려지다가도, 쌀을 천시하는 몹쓸 세상을 살아야 하는 농부들의 그늘진 눈빛들이 떠올라 괜스레 한숨이 새나온다. 쌀은 단순한 곡물이 아니다. 우리 민족의 삶과 역사를 담아온 생명의 줄기이자 문화의 뿌리이다...
2025.06.30 15:47그들은 ‘신세대’로 불리며 등장했다. 1990년대 후반, 사회는 그들을 ‘X세대’라 칭했다. 산업화 세대의 금욕과 86세대의 이념을 벗어나 자유와 감수성을 중시하는 ‘한국형 개인주의 세대’. MTV와 잡지를 통해 자율을 배우고, IMF의 먹구름 아래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들은 기존 질서에 순응하면서도 속으로는 다른 삶을 꿈꾸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버티고, 치이고, 다시 일어섰다. 그들이 바로 우리사회의 허리춤인 70년대생. 그러나 이들에겐 늘 자리가 부족했다. 앞세대는 이미 자리를 선점했고, 뒷세대는 새로운 언어와 속...
2025.06.29 15:32“짱뚱어를 이대로 죽일 것인가.”, “짱뚱어를 살리자고 사람을 죽일 것인가”. 지난 1997년 일본 정치권이 난데없는 짱뚱어 논쟁에 휩싸였다. 쌀 생산을 위해 규슈 이사히야 만에 대규모 간척사업을 벌이면서 그곳에 서식하던 짱뚱어가 대거 폐사했기 때문이다. 착공 당시부터 환경파괴와 세금낭비라는 비판이 제기됐던 간척사업. 하지만 물막이 공사가 끝난 이후 거북등처럼 갈라지고 말라가는 광대한 갯벌은 일본인에게 충격이었다. 물을 찾아 퍼덕이다 죽어가는 짱뚱어의 모습도 섬뜩했다. 이른바 ‘이사히야만 짱뚱어 사건’. 비록 결론은 바뀌지 않았지만...
2025.06.26 16:56빛은 색이다. 맑고 청명한 하늘 빛. 탁 트인 하늘 아래 펼쳐지는 푸른색 바다. 해질 무렵, 온 대지를 붉게 물드는 노을. 이 모든게 색이고 빛이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는 결코 색을 볼 수 없다. 빛이 있어야 색이 드러난다. 빛은 하늘과 바다, 땅과 함께 잉태됐다. 인간은 그 빛을 다양한 색으로 이름 지었다. 색은 눈으로 볼수 있는 가시광선의 영역이다. 그러나 인간은 색을 위대한 예술 작품으로, 문화로, 기록으로 남겼다. 3만년 전 선사 시대, 동굴에는 그림들이 그려져있다. 당시 시대상을 알수 있는 이 그림에도 색이 있다. 색...
2025.06.25 13:41올 시즌 KIA 타이거즈는 주전 선수들의 줄부상 속에서도 흔들림 없는 경기를 펼치며 팬들에게 우승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 이른바 ‘잇몸 야구’라 불리는 KIA의 야구는 화려하진 않지만 내실 있는 승리로 팀을 4위권에 올려놨다. ‘잇몸 야구’라는 표현은 주전 선수들이 빠진 상황을 이가 빠진 것에 빗댄 것이다. 그러나 주전이라는 치아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그 뿌리를 받치는 잇몸, 즉 백업 선수들이다. KIA는 올 시즌 이 잇몸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144경기라는 긴 시즌을 주전 선수들만으로 소화할 수는 없...
2025.06.24 17:34여름철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있다. 무더위에 지친 우리를 더욱 짜증나게 만들고 밤잠을 설치게 하는 불청객, 바로 모기다. 고온다습한 장마철엔 더 극성이다. 하룻밤 새 모기 한 마리에 온 가족이 뒤척이고, 극도의 가려움을 유발하는 흡혈 자국을 보면 분노까지 치밀어 오른다. 모기는 해충 중에서도 아주 작은 미물에 속하지만 인류의 역사에 깊숙이 개입해온 ‘무서운’ 존재다. 단순히 여름철마다 찾아와 불편을 끼치는 해충을 뛰어 넘어 인류의 문명과 전쟁의 그림자 속에 모기는 늘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고대 로마가 번성...
2025.06.23 16:04지난 21일 새벽, 부산의 한 아파트 화단에서 고등학생 3명이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모두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던 이들은 함께 옥상으로 올라간 뒤 화단에서 발견됐으며, 유서도 남겨진 것으로 알려졌다. 불현듯 소노 시온 감독의 ‘Suicide Circle’(자살클럽)의 첫 장면이 떠오른다. 일본 도쿄의 한 지하철역, 재잘재잘 떠들며 지하철을 기다리는 평범한 모습의 여고생들. 54명의 여고생들은 지하철이 들어온다는 안내방송에 서로 손깍지를 끼고 “하나, 둘, 셋”하며 일제히 철로로 몸을 던진다. 영화 오프닝 사상 가장 충격적인...
2025.06.22 16:39“밭에서 완두를 거두어 들이고 난 바로 그 이튿날부터 시작된 비가 며칠이고 계속해서 내렸다. 비는 분말처럼 뭉근 알갱이가 되고, 때로는 금방 보꾹이라도 뚫고 쏟아져내릴 듯한 두려움의 결정체들이 되어 수시로 변덕을 부리면서 칠흑의 밤을 온통 물걸레처럼 질펀히 적시고 있었다….” 1973년, 당시만 해도 거의 무명작가였던 윤흥길이 쓴 중편 소설 ‘장마’는 지루한 장마를 통해 남북분단의 비극을 극명하게 보여준 작품이다. 전쟁에서 전사한 아들을 둔 외할머니와, 빨치산 아들을 둔 친할머니의 기구한 운명. 그 속에서 장마는 불행한 전쟁의 상징...
2025.06.19 17:26“민주 한국이 돌아왔다.” 이재명 대통령이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하며 국제사회에 던진 이 한마디는 단순한 외교적 수사가 아니다. 지난해 12월3일 헌정질서를 뒤흔든 불법 계엄 시도는 세계가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에 중대한 질문을 던졌다. 과연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인가, 위기를 견딜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었는가. 6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한국은 그 해답을 스스로 증명해냈다. 계엄을 해제한 국회, 헌법 절차에 따른 대통령 탄핵, 그리고 조기 대선을 통한 새로운 정부 수립. 어느 하나 무력 충돌이나 극단으로 흐르...
2025.06.18 13:24우리 삶에는 ‘적당함’이라는 미덕이 있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탈이 나기 마련이다. 공자도 이를 경계했다. ‘논어’ 선진편에서 제자인 자공이 “자장과 자하 중 누가 낫습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자장은 지나치고, 자하는 미치지 못한다”고 답하며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過猶不及)”는 말을 남겼다. 지나침은 부족함과 마찬가지로 문제를 일으킨다는 뜻이다. 결국 공자는 ‘적정한 선’을 지키는 것이 인간의 도리임을 강조한 셈이다. 현대 사회는 과열된 경쟁과 성과 중심 문화가 일상화된 시대다. 특히 경제 영역에서는 더욱 그렇다. ...
2025.06.17 18:00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 사이에 출생한 세대를 의미하는 ‘밀레니얼 세대’와 1997년부터 2012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을 일컫는 ‘Z세대’를 합친 용어인 ‘MZ세대’는 오늘날의 젊은 세대를 의미한다. 이들은 어릴 때부터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자연스럽게 사용해 왔으며 짧은 콘텐츠(숏폼)를 선호하고 개방적이면서도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온라인 쇼핑, 모바일 결제, 스트리밍 서비스 등 스마트폰을 활용한 디지털 소비에 익숙하며 스마트폰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진정성 있는 콘텐츠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2025.06.16 15:23요즘, 뉴스 보기가 즐겁다는 사람들이 늘었다. 대통령 한명이 바뀌었을 뿐인데, 모든게 새롭다고 한다. 저러다 쓰러질까봐 무섭다고 하면서도 ‘퇴근 안하는 대통령’ 그저 신기하다고 한다. 언론생활을 하면서 지금까지 정권 바뀌는 것을 몇 번이나 보아왔다. 패턴은 늘 비슷했다. 보수 정권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들어오면 언론들 상당수는 밀월 기간을 즐겼다. 진보 정권이 들어오면 일부를 제외하고는 공격하는 양상을 보였다. 전남일보야 광주에 있는 언론사이기 때문에 지역민의 성향이 그대로 나올 수밖에 없다. 광주에서는 ...
2025.06.15 20:54지난 2011년 타계한 박완서 작가는 생선 중에서 병어를 유난히 좋아했다고 한다. ‘계절의 맛과 함께 추억의 정서를 맛볼 수 있고, 자연의 순수함까지 담겨있다’는 게 이유였다. 살이 연하고 담백하지만 값이 비싸지 않아 서민적이고 맛이 뛰어나다는 것도 평생 소박하게 살아왔던 그의 철학과 어울린다. 숙성되서 나오는 감칠맛, 씹을수록 고소한 병어회는 그에게 글을 쓰는 이유이면서 기쁨이었다. “겨울철 광어회보다도 병어의 살은 더 달콤하고 부드러웠다. 눈처럼 흰 살에 간장을 찍으면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내렸다.”는 그의 말은 병어에 대한 최고...
2025.06.12 16:492025년 6월, 이재명 대통령의 당선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자, 2024년 12월3일 선포된 비상계엄 이후 추락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위상이 다시 한 번 회복되는 사건이었다. 이번 선거의 진정한 의미는 국민을 향해 총구를 겨눈 이들을 단죄하기 위한 국민들의 염원이 만들어낸 결실로, 단순한 정권심판을 넘은 역사에 대한 응답이었다.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릴 수 있는가. 이 물음은 더 이상 문학적 수사에 머무르지 않는다. 1980년 광주에서 총에 맞아 숨진 이들의 이름은 2024년의 거리에서 다시 불렸다. 세대는 달랐지만, 절박함...
2025.06.11 13:35브로드웨이에 오른다는 건 무명의 화가가 루브르에, 이름 없는 연주자가 카네기홀에 선 것과 다름없다. 미국 뉴욕 맨해튼 중심부, 42번가를 따라 줄지은 극장들은 전 세계 공연 예술인들의 꿈이자 종착지다. 그 무대 위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성공’으로 여겨지고, 그곳에서 살아남는 작품은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 콘텐츠로 기록된다. 브로드웨이의 역사는 길다. 18세기 말 소극장 몇 곳에서 시작된 이 거리는, 20세기 초 전기 조명과 대형 무대 장치의 도입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특히 500석 이상의 규모를 갖춘 41개의 정식...
2025.06.10 1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