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용환 논설실장 |
다산 정약용에게도 장마는 농민들을 궁핍하게 만드는 불청객이었다. “괴롭고 괴로운 비 일부러 내리는 듯/밝은 해 나지 않고 구름도 안 걷힌다/보리는 싹이 돋고 밀은 땅에 누웠는데…/누운 보리 못 일어남을 그 누가 알겠는가.”라는 ‘고우탄’이라는 시에는 내리 퍼붓는 장맛비에 보리와 밀 농사를 망친 농부들의 시름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애틋하게 담겨있다. “장맛비 내린대서 괴로워할 것 있나/날 맑아도 혼자서 탄식할 뿐인 것을.”이라는 구절에서는 장마로 인한 시름뿐 아니라 날이 맑아도 탄식밖에 할 수 없는 지식인의 무력감이 느껴진다.
‘장마’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순 우리말이라고 한다. 오랫동안 우리 민족과 함께 했던 만큼 장마에 얽힌 속담도 많다. ‘가뭄 끝은 있어도 물난 끝은 없다’는 말은 가뭄 때는 농사만 안되지만 장마로 홍수가 나면 더 큰 피해를 불러와 물을 무섭게 여기라는 의미다. ‘불난 끝은 있어도 물난 끝은 없다’는 속담도 비슷한 의미다. ‘삼 년 가뭄에는 살아도 석 달 장마에는 못 산다’고도 했다. 그렇다고 장마가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유월 장마에는 돌도 큰다’고 했듯 농업이 주업이었던 한민족에게 1년 강수량의 3분이 1이 집중되는 장마는 없어서는 안될 꼭 필요한 존재였다.
지난 주 제주에서 시작된 장마가 19일부터 전국으로 확대된다는 소식이다. 특히 장마가 본격화되는 20일 오후부터는 국지적으로 강한 비가 집중될 가능성이 높고, 일부 지역에는 호우경보가 내려질 정도의 폭우가 예상된다고 한다. 그야말로 폭풍전야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위기 시대, 폭우와 폭염 등 극한적 기후는 일상이 됐다. 광주·전남도 지난해 극값을 경신한 하루 강수량으로 역대급 기후재앙을 경험했다. 그래도 장마는 피할 수 없는 자연현상이면서 적어도 ‘물’을 생각하면 없어서는 안될 연례행사다. 두 얼굴을 가진 장마가 큰 피해 없이 지나갈 수 있도록 철저한 준비가 필요할 것 같다. 이제 시작된 첫 장마, 다산이 걱정했던 고우(苦雨가 아니고 감우(甘雨 ·단비)로 지나가면 좋겠다. 이용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