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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너무 행복했어, 감동이야!” 여섯 살 된 아이가 엄마 손을 잡고 한 말이다. 어떤 맛있는 생일 음식이라도 먹은 것일까? 갖고 싶었던 물건을 선물 받기라도 한 것일까? 지난달 광양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어린이 음악극 ‘심심해 호랑이는 장가갈 수 있을까?’라는 공연 후 쏟아져 나온 인파들이 이구동성 칭찬하던 풍경의 하나다. 이 어린이 가족은 경상북도에서 두 시간 반을 달려왔다고 한다. 또 어떤 엄마들은 이렇게 말했다. “광양에서 이런 수준 높은 어린이 음악극을 볼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요.” 관객의 반응이 열광적이었다. 배...
2025.06.27 11:22소는 누가 키우나? 처음 들으면 그냥 웃자고 던지는 농담 같지만 곱씹을수록 이 말엔 우리 사회의 핵심 질문이 담겨 있다. 풍자와 자조가 섞인 유행어이기도 했다. 이상은 좋은데 현실은 누가 책임져? 기획은 좋은데 정작 실무는 누가 해? 다들 말은 잘하는데 도대체 소는 누가 키우냐고? 대개 이런 뉘앙스다. 이 말이 자조적으로 유포되면서 책임회피형 농담이나 허탈함을 표현하는 풍자어가 됐다. 하지만 농경사회에서 이 말은 매우 구체적인 질문이었고 우리 사회를 지탱해 온 기본 시스템이기도 했다. 농사일에 절대적인 것이 소였다. 소를 사람과 다...
2025.06.19 17:41전통회화(繪畵) 중 한국을 대표할 만한 작품들은 셀 수 없이 많다. 그중에서 가장 한국적인 그림을 고르라면 선뜻 내놓을 수 있을까? 단순히 그림의 장르나 형태로만 고를 수 있는 게 아니기에 난처해지기 마련이다. 예컨대 산수나 풍경이 인간의 삶과 조화를 이루는 자연관, 여백의 미나 담담한 선과 색채에 드러나는 감정선, 한이나 흥, 정 따위의 정서 구조, 기호나 도상이 가지는 회화적 구조 따위를 복합적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서나 철학, 미의식, 삶의 태도들 말이다. 말하자면 국보로 지정된 추사의 ‘세한도’를 가장 한국적인...
2025.06.12 10:19국가의 상징으로 다룰 만한 것들이 여러 가지다. 한 나라의 정체성, 역사, 문화, 철학, 정치체계를 시각적, 청각적, 개념적으로 대표하는 요소들이 그것이다. 공식적 법령에 명시된 것과 관습적으로 통용되는 것들로 구분해 볼 수 있다. 태극기, 애국가, 무궁화, 국새(國璽) 이외 나라의 새(國鳥), 나라의 나무(國樹), 국기(國技), 대통령기, 조선왕조실록이나 훈민정음 등의 국가도감 등 거론할 만한 것이 많다. 대한제국기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러 변천 과정을 거쳐 국가상징으로 여길만한 국장(國章)들이 거론되거나 주장됐다. 법령 정...
2025.05.29 17:56‘창작판소리 윤상원가’ “사방은 칠흑같이/ 쥐죽은 듯 적막할 제/ 시민군들 어느결에/ 총을 꼭 껴안고는/ 살풋 잠이 들었구나 그때여 윤상원은/ 초조한 마음을 달래느라/ 담배 한 대 피워무니/ 지나간 젊은 날들/ 회한이 밀려온다~” 예사롭지 않은 선율, 진양조장단이라 더욱 장중하다. 노래하는 이의 후골(喉骨)이 박사 고깔의 끝자락처럼 떤다. 노래를 넘고 장단을 넘어 마치 세상의 끝 지점에 이르고야 마는 애절함이 울대에 닿은 까닭이리라. 이윽고 노래는 ‘소리 내력’의 한 구절로 이어진다. “어머니~/ 고향에 돌아가요/ 죽어도 나는 돌...
2025.05.22 17:48“멀리 고향을 떠난 지 40여 년 만에/ 희어진 머리를 깨닫지 못하고 돌아왔네/ 새 터의 마을은 풀에 묻혀 집은 간데 없고/ 옛 묘는 이끼만 끼어 발자국마다 수심에 차네/ 마음은 죽었는데/ 한은 어느 곳으로부터 일어나는가/ 피가 말라 눈물조차 흐르지 않네/ 이 외로운 중(僧) 다시 구름 따라 떠나노니/ 아서라, 수구(首丘)한다는 말 부끄럽구나” 초의선사가 58세(1834년)에 고향을 찾아와 읊은 노래다. 대선사이니 속세와는 인연을 끊고 정진해 불도를 이뤘을 듯싶지만, 고향과 부모 형제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숨길 수 없었던 것일까. ...
2025.05.15 15:16“무릇 갓난아기가 어머니의 태중에 있을 때 캄캄하고 막혀서 갑갑하게 지나다가, 갑자기 넓고 훤한 곳에 터져 나와 손을 펴고 발을 펴매 그 마음이 시원할 것이니, 어찌 한마디 참된 소리를 내어 제멋대로 외치지 않으리오. 그러므로 우리는 의당 저 갓난아기기의 꾸밈없는 소리를 본받아서 저 비로봉(毗盧峯) 산마루에 올라가 동해를 바라보면서 한바탕 울어볼 만하고, 장연(長淵, 황해도의 고을) 바닷가 금모래 밭을 거닐면서 한바탕 울어볼 만하며, 이제 요동 벌판에 와서 여기서부터 산해관(山海關)까지 1천 2백리 사방에 도무지 한 점의 산도 없이...
2025.05.08 17:15윤동주의 흰 그림자 “황혼이 짙어지는 길모금에서/ 하로 종일 시들은 귀를 가만히 기울이면/ 땅검의 옮겨지는 발자취소리/ 발자취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나는 총명했던가요/ 이제 어리석게도 모든 것을 깨달은 다음/ 오래 마음 깊은 속에/ 괴로워하던 수많은 나를/ 하나, 둘 제고장으로 돌려보내면/ 거리모통이 어둠속으로/ 소리 없이 사라지는 흰 그림자/ 흰 그림자들/ 연연히 사랑하던 흰 그림자들/ 내 모든 것을 돌려보낸 뒤/ 허전히 뒷골목을 돌아/ 황혼처럼 물드는 내방으로 돌아오면/ 신념이 깊은 으젓한 양처럼/ 하로 종일 시름없이 풀포기...
2025.05.01 15:54“지금쯤 선녀 씨는 저 세계로의 경계, 말랑말랑하면서도 흐물흐물한, 자궁의 입구만큼이나 좁은 ‘틈’에 머무르고 있을 것이다. 산자의 때를 벗지 못한, 완전히 죽지 못한 존재, 살아있음도 죽어있음도 아닌, 그냥 중유(中有)의 존재로서 말이다. 아마 그곳에서 선녀 씨는 오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김개영의 장편소설 ‘나의 시적인 무녀 선녀 씨’(실천문학, 2024)의 한 대목, 동해안 북부 무당인 어머니 장례 풍경이다. 자전적 소설, 화자(話者)는 김개영이다. 소설의 약속처럼 화자는 실제로 죽은 어머니를 위해 두 번의 오구굿을 했다...
2025.04.24 17:05“마을에 촘촘히 뿌리내린 생활 협동계는 주민 삶의 지지대이자 자치 의제의 산실이었다. 마을 대동계는 생활 협동계들의 연합체이자 생활과 순환경제를 결합한 주민 자치단체였다. 이런 전통마을 자치 정신에 따라 생활 자치 운동과 순환경제 운동을 결합한 농촌 마을 모델을 둠벙마을이라고 개념지었다. 여기에 가치농업과 가치혁신을 더하고, 관계인구를 더하면 전환시대 농촌이 새 희망을 얻을 것이라는 결론을 가지게 되었다.” 박상일이 쓴 ‘전환시대 농촌의 길’(드림북, 2025. 2) 한 대목이다. 둠벙마을은 논에 물을 대려고 판 둠벙이 스스로 생태...
2025.04.17 16:04두 여울물이 있다. 하나는 소설로 쓰인 이야기이고 또 하나는 노래로 불린 이야기이다. 먼저의 이야기는 황석영이 ‘여울물소리’라는 이름으로 썼다. 나중의 이야기는 황호준이 같은 이름으로 창극 무대에 올렸다. 지난해 말 광주시립창극단 창단 35주년 브랜드작품으로 공연됐으니 4개월여 지났나? 하지만 소설 속 장별 제목이기도 했던 ‘여향(餘響)’의 기운이 시방도 내 몸에 남아 있다. 황석영이 말하고자 했고, 황호준이 노래하고자 했던 웅숭깊은 내력 탓일 것이다. “이야기란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생겨나나, 무엇을 위해 존재하나, 어떤 것이 ...
2025.04.10 17:25“공심은 저러시고/ 나무남산 본이로세/ 조선은 국이옵고/ 팔만은 사두세경/ 허궁천 비비천/ 삼화도리 열시왕/ 이덕 마련하옵실 때/ 경상도 칠십삼관/ 전라도 오십삼관~” 진도를 중심으로 하는 남도씻김굿 거리 중 ‘초가망석’의 내드름 부분이다. 지역이나 가창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긴 하지만 대개 수도 서울의 본디 내력을 줄거리 삼는다. 우리의 근본과 이 땅의 내력을 반복해 선포하는 셈이다. 바리데기, 당금애기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무속 신화에 속하는 공심에 대해서는 2017년 6월 9일자 본 지면에 다뤘다. 곡성 옥과에 터를 마련한 ...
2025.04.03 16:22한복 입은 예수, 장삼을 두른 성모 마리아, 역설적으로 낯선 이 그림들이 출현한 것은 근자의 일이다. 장발의 성화를 비롯해 운보 김기창의 ‘예수의 생애’ 혹은 배운성이나 장우성의 성모화 등이 손에 꼽히는 사례일 것이다. 그런데 듣자 하니 무명작가 허솔의 성화 일러스트에 대한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고 한다. 주로 해외 파견 신부들의 요청이라 한다. 왜 이들이 허솔의 성화 일러스트에 관심을 가지고 주문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전적으로 한복에 있다. 흑인 예수상이라던가 갓을 쓴 예수상 등 기독교의 토착화에 기댄 각 나라의 성찰이 부상된 것도...
2025.03.27 15:49어떤 알곡들이 튀어 오르는 소리일까. 어떤 생명이 땅속을 헤집고 올라오는 진동일까. 파도 알갱이들이 서로 부딪치는 풍경일까. 쟁반에 옥구슬 구르는 소리라는 상투적 표현만으로는 다 말하기 어려운 청아한 음들의 향연이다. 눈을 지그시 감고 들으면, 재잘거리기도 하고 손으로 입을 가린 채 함박웃음을 짓기도 하며 새싹 오르는 뒤꼍이며 고샅이며 매화봉우리 터지는 나무 곁을 종종걸음으로 달려 다니는 아이들이 보인다. 아이들이 아니라도 좋다. 어미를 쫓아 장난질하는 강아지들 혹은 고양이어도 무방하다. 통통 뛰어다니는 선율을 따라잡는 앵글이 분주...
2025.03.20 16:25다랑쉬 동굴 입구, 스산한 날씨였다. 2019년 8월 작곡가 김대성의 대표곡 ‘다랑쉬’가 연주되는 현장, 뒤덮인 칡넝쿨의 우듬지들이 해금 연주자 박솔지의 선율을 타고 울렁거렸다. 진한 슬픔의 곡조로 흐르는 선율임에랴 어찌 흔들리지 않을 잎이 있을 것이며 떨지 않을 가지가 있을 것인가. 낯익은 선율인 듯도 싶고 어쩌면 낯선 선율일지도 모를 이 가락을 듣자마자 나는 남도의 진계면 육자배기를 떠올렸다. 육자배기가 아니고서야 내면의 아픔을 이토록 헤집어놓을 수 있을까 싶었다. 이 곡이 발표된 것은 이보다 20여년 앞선 2002년이다. 해금...
2025.03.13 17: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