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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6. 20_22. 통신사선 탐사, 홍도의 해무 -이윤선 유월 중순을 넘긴 바다는 깊고 아득했다. 한 치 앞을 열어주지 않는 시계(視界)였다. 틈새로 간혹 갈매기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지난 6월 20일부터 3일간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의 복원통신사선이 공식적인 첫 탐사(단장 진호신 연구관)에 나선 길이다. 항구에 접안 하기는 했지만 묘박(錨泊)에 준한 일정이었다. 배에서 먹고 자고 사흘 밤낮을 보냈다. 시험탐사 때도 합류하여 본 지면에 감상을 남긴 바 있다(2022. 1. 14). 새벽부터 목욕재계하고 마음을 곧게 한 후에야 승선할 수 있었다. 고대로부터 배를 타는 사람들의 심리가 그러하다. 제사장이 큰 제사를 지낼 때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스치는 바람 한 조각, 지나는 날짐승 하나에도 일진과 기후의 조짐을 예측하고 대비한다.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시대임에도 이 심리...
편집에디터2022.07.07 15:00'2021 세계 한국어 한마당' 개회식에서 축하공연을 하고 있는 이날치밴드. 뉴시스 경기소리는 이희문에게 보존해야 할, 혹은 발전시켜야 할 그 무엇으로서 가창자에게 의무와 당위를 부과하는 억압 기제로 작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통 성악의 음악적 텍스트는 '만들어진 전통'이 빚어낸 페르소나(persona)를 벗고, 원형으로서의 경기소리와 그 텍스트가 꽃핀 문화와 물적 토대, 환경으로부터 오는 에너지를 자유롭고 창조적으로 활용하는 과정에서 일종의 이행대상(transitional object)의 역할을 부여받는다. 지난 6월 24일 한국민요학회 제75차 정기학술대회, 이소영 교수(명지병원예술치유센터)가 발표한 '민요의 공연예술화에 대한 비평적 고찰-이희문의 경기소리를 중심으로'의 한 대목이다. 이소영은 이 발표에서 이희문의 획기적이고 도발적인 실험들이 역설적으로 경기소리라는 민요의 ...
편집에디터2022.06.30 16:12발리 오고오고 행진. 정지태 제공 6월 초 한국 최초로 도깨비학회를 결성하고 소소한 국제학술포럼을 열었다. 도깨비가 한국 고유의 호명법이라 세계 최초의 학회라 해도 무리는 없겠다. 영광스럽게도 이 몸이 초대회장으로 추대되어 당분간 학회를 이끌 처지가 되었다. 학회원들에게 보낸 성료 감사의 인사말 중 해외발표문에 대한 논평 일부를 옮겨두고 그 의미를 새겨둘까 한다. 참고로 조자용의 왕도깨비 유산에 대한 김영균(도깨비학회 고문)박사의 기조발표 및 세계의 가면에 대한 김정환(도깨비학회 고문)소장의 기조발표 등 흥미진진한 국내의 발표가 있었다. 지면 활용상 이 발표들은 따로 기회를 만들어 소개해드리기로 하겠다. 뜻하지 않게 일본 및 해외 연구자들도 다수 가입신청을 해주어 고무적이었다. 미약한 시작에도 불구하고 창대한 미래를 예비하는 듯하다. 윤열수 명예회장, 나승만 명예회장, 박전열 ...
편집에디터2022.06.23 15:47그날따라 짙은 해무가 끼었다. 여수 백도의 물목, 바로 앞에 있는 매바위가 보일 듯 말 듯 지척이었다. 김승옥의 무진기행처럼 그 끝을 알 수 없는 안개였다. 지상의 눈 달린 생물들에게만 그런 것이 아닌 듯했다. 천길 물속도 안개가 스몄던 모양이다. 길 잃은 물고기들이 방황하다 벼릿줄을 보지 못하고 그물 안으로 들이닥쳤다. 그물의 멸치는 만선하고도 넘칠 만큼 풍족하였다. 아들은 신이 났다. 그물을 걷어 올리는 손에 힘이 넘쳤다. 그런데 이물칸에서 백도를 바라보던 아버지가 불안한 듯 아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물을 거두어라! 돌아가야...
편집에디터2022.06.16 17:33노주인(老主人)의 장벽(腸壁)에/ 무시로 인동 삼긴 물이 내린다/ 자작나무 덩그럭 불이/ 도로 피어 붉고/ 구석에 그늘지어/ 무가 순 돋아 파릇하고/ 흙냄새 훈훈히 김도 사리다가/ 바깥 풍설(風雪) 소리에 잠착하다/ 산중에 책력(冊曆)도 없이/ 삼동(三冬)이 하이얗다. 정지용의 시, 인동차(忍冬茶)이다. 다 타지 않은 덩그럭 불, 물에 삶아 우려낸 인동차를 마시는 풍경이 그윽하다 못해 간절하다. 김 서린 흙냄새를 맡으며 바깥을 내다보니 눈바람 가득하다. 달력도 없는 어느 골짝 산중일 것이기에, 시간의 들고남이 무슨 상관이랴. 한겨울...
편집에디터2022.06.09 14:42"말이 맞지 못하야 이 날밤 삼경시에 바람이 차차 일어난다. 뜻밖에 광풍이 우루루루 풍성(風聲)이 요란커늘 주유 급히 장대상에 퉁퉁 내려 깃발을 바래보니 청룡주작(靑龍朱雀) 양기각(兩旗脚)이 백호현무(白虎玄武)를 응하야 서북으로 펄펄 삽시간에 동남대풍(東南大風)이 일어 기각이 와지끈 움죽 기폭판(旗幅版)도 떼그르르 천동(天動)같이 일어나니 주유가 이 모양을 보더니 간담이 떨어지는지라~" 판소리 적벽가 중 동남풍 부는 대목이다. 적벽대전 눈 대목의 하나, 긴박한 장면이기에 자진모리로 노래한다. 이 바람 아니었으면 주유가 조조의 백만 ...
편집에디터2022.06.02 15:23흑백영화 7인의 사무라이 마지막장면 캡쳐. '7인의 사무라이'가 궁극적으로 지켜낸 것은 무엇일까 영화 '7인의 사무라이'만큼 많이 회자된 영화가 또 있을까 싶다. 그만큼 유명한 영화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를 토대로 리메이크된 많은 오마주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1954년 개봉하였으니 우리로 말하면 동족상잔의 화마가 채 가시지 않았던 시기이기도 하다. 세계적인 거장이라는 구로사와 아키라(黒澤明, 1910~1998) 감독의 흑백영화다. 영화의 줄거리나 주제는 일목요연하게 사무라이들의 의기투합과 전쟁을 다루고 있다. '황야의 7인' 등 리메이크된 수많은 영화도 이런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장식하는 모내기다. 사무라이들의 주제와는 별 상관없어 보이는 이 장면이 내게는 대미나 대단원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거론하...
편집에디터2022.05.26 16:19"명량 전투가 끝난 뒤 임준영은 이틀 동안 작전 해역을 수색했다. 나는 임준영에게 전선 2척과 어선 5척, 그리고 군사 50명을 맡겼다. 임준영은 이틀 후 군사를 인솔하고 암태도로 돌아와 보고했다. 임준영은 떠다니는 적의 시체 2000여 구를 건져서 묻었다. 연안 갯벌 쪽으로 다가오는 시체만을 정리했고 원양으로 떠내려가는 시체는 수습하지 못했다." 김훈의 소설 중 일부다. 난중일기를 기초로 쓴 이 소설에는 많은 수사자(水死者)가 등장한다. 해전(海戰)이니 응당 물에 빠져 죽은 이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눈을 뜨고 읽기가 난처할 ...
편집에디터2022.05.19 15:41일군의 농악대가 한 집에 이르렀다. 집주인은 안쪽에서 맞이하고 농악대는 바깥쪽에서 연주한다. 4/3박자 리듬이다. 구음보(口音譜)로 적어보니 '깽매 깽매 구갱깽/ 구갱매 깽매 구갱깽'이다. 연주만 하는 것이 아니다. 농악대원들 모두 합창하여 부르는 소리를 들으니 '쥔 쥔 문여소/ 어서어서 문여소'라 한다. 쥔장에게 문을 열어달라는 요청임을 알 수 있다. 꽹과리와 더불어 울리는 악기의 리듬 패턴이 이 요청의 말과 합일하여 공명(共鳴)한다. 이를 '문굿'이라 한다. 마당에 들어선 농악대가 가장 먼저 들르는 곳은 샘이다. 문굿 보다는 더...
편집에디터2022.05.12 16:24영암 가야금산조 테마공원 전경. 영암군 제공 우리 음악을 크게 궁중음악과 민속음악으로 나눈다면, 민속음악은 다시 성악과 기악으로 나눌 수 있다. 성악(聲樂)은 사람의 음성으로 하는 음악을 말한다. 악곡의 종류에 따라서 판소리 등의 창가, 민요, 가요, 가곡, 기타 따위로 구분한다. 연주 형태에 따라서는 독창, 중창, 합창, 제창, 기타 등으로 나누고 기능에 따라서는, 일하면서 부르는 노래, 놀면서 부르는 노래, 종교적인 제의에서 사용하는 노래, 기타 등으로 구분한다. 이 땅에 존재하는 어떤 악기보다 사람의 목소리를 이용한 음악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것은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다. 기악(器樂)은 악기를 사용하여 연주하는 형태를 말한다. 연주자의 수에 따라 독주, 중주, 합주 등으로 나누고 표현 형식에 따라 교향곡, 협주곡, 소나타, 실내악곡 등으로 나눈다. 우리 민요의 가창 방식...
편집에디터2022.05.05 15:36첫번째 동굴, 감실이 있는 에고의 방. 이윤선 경악! 바로 그 자체다. 거대한 땅굴, 7년간 매일같이 그것도 혼자서 굴을 팠다.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돈벌이로 한 것도 아니다. 굴을 다 파놓고도 자랑은커녕 문을 닫아걸었다. 전남 장흥의 사자산 자락, 평범한 시골이지만 굴은 예사스럽지 않다. 깨달음을 얻기 위한 갖가지의 조형물들이 가득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거대한 지하 조각 미술관이라 할 수 있다. 면적 약 500평 규모에 굴 길이만 합쳐도 약 100미터 정도는 될 것 같다. 굴속의 각종 이미지는 부조 중심으로 50가지 정도다. 한 작가의 구도자적 수행공간으로 시작한 특이한 지하 현장이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이 쓴 해설의 첫 대목이다. 4월 초 발행된 신간, '강대철 조각토굴'(살림출판, 2022) 내용이다. 사실 나도 지난해 4월 윤관장을 따라 ...
편집에디터2022.04.28 16:24백제시대 전돌, 부여 외리 문양전 중 산수귀문전-국립중앙박물관 "나의 친우 성번중의 집에 일찍이 귀신의 장난이 있었는데, 초저녁 종이 울릴 무렵에 은은히 서산의 수풀 속에서 나와 돌을 던지기도 하고 불을 붙여 와서 한 여종을 능욕하여 임신이 되었는데 마치 사람과 접촉하는 것 같았다. 민가에 이따금씩 이러한 환난을 만나는 수가 있으니, 의원들이 말하는바 귀태라는 것으로, 백방으로 막으려고 애써도 되지 않는다." 김안로가 지은 야담설화집 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귀태설화(鬼胎說話)라고 한다. 흔히 얘기하는 도깨비 이야기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이를 '두려워하고 걱정함' 또는 '나쁜 마음'이라고 풀이해두었다. 홍나래는 귀태를 이렇게 분석한다. "귀태 이야기 속 주인공은 아비 없이 태어났다는 소문과, 나자마자 세간의 비웃음과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 아이들이다. 그는 철이 들면 마을에 머...
편집에디터2022.04.21 16:22새 정부 들어서면서 변화하는 것 중 하나가 나이 셈법이다. 세계에서 유일한 한국식 나이 셈법이라고 말들이 많았다. 많은 매체가 앞다투어 이를 보도했다. 한 여론조사 발표를 보면, 국제표준인 '만 나이'를 우리 국민 70% 이상이 찬성한다고 한다.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이기도 하고 대다수가 찬성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만 나이' 세는 방식으로 바뀌는 듯하다. 중국이나 일본은 물론 심지어 북한까지 '만 나이' 셈법으로 바뀐 지 오래이니 반대할 명분은 많지 않아 보인다. 근자의 설왕설래를 거쳐 코로나 확산과 지원 등의 문제에...
편집에디터2022.04.14 16:33양파수확작업. 무안군 제공 양파를 끝까지 벗기면 무엇이 남을까? 마늘이나 쪽파도 마찬가지다. 씨앗이 들어있는 씨방이 나오는 것도 아니요, 무화과처럼 속으로 핀 꽃이 들어있는 것도 아니다. 끝까지 가면 아무것도 없다. 분명 실체가 있어 벗겨 내려갔는데 마지막 종착지에는 아무것도 없는 공허만이 남아있다. 양파 하면 떠오르는 우화가 도스트예프스키의 '양파 한 뿌리(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1880)'이다. 연구자들에 의하면 이 우화는 지옥에 대한 도스트예프스키의 생각을 함축하고 있다고 한다. 역설적으로 수호천사가 찾아낸 양파 한 뿌리가 희망일 수 있다는 뜻이다. 생전에 선행을 많이 한 사람들과 비교하면 불공정한 것처럼 보일수 있지만, 그럼에도 인간에게는 누구나 양파 한 뿌리 정도의 희망이 있다는 뜻이라고나 할까. 물론 전제가 있다. 마지막 남은 희망일지라도 독식하지 않고 서로 나눌 수 ...
편집에디터2022.03.31 15:59얼른 생각하기에는 신분도 높고 지혜도 뛰어난 오키의 도공들이 만든 품위 있는 다기가 훨씬 뛰어나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조선의 잡기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내가 생각하기에는 역시 결과만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낳게 한 원인과 과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데서 오는 패배일 것이다. 즉 밖으로만 모방할 뿐 안으로부터 그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은 것이다. 새삼스럽게 조선인처럼 가난으로 돌아갈 필요는 없고 또한 잡기를 만들 필요도 없다. 그러나 맛에 사로잡힌 부자유한 마음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참된 것은 태어나지 않는다. 아...
편집에디터2022.03.24 14: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