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푸른 바다색에 하얀 파도가 부서지는 동해 바다. 그 바다가 바라보이는 곳에 서면 몰아치는 찬바람에 옷깃을 여미면서도 우리는 낭만을 얘기하곤 한다. 하지만 바라만 보는 것을 너머 그 바다 속으로 뛰어 들고, 파도를 타고 수평선을 넘다보면 어느 틈에 낭만은 뒷전으로 밀리고 배 멀미의 울렁거림과 함께 가슴 깊이 밀려드는 고독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동해의 그 깊은 바다에 외롭게 떠있는 섬들은 유난히도 외로워 보이는 것일까. 울릉도와 그 부속 섬들이 그렇고, 더 멀리 떨어져 있는 독도가 더욱 그렇다. 또 아침 햇살을 제일 먼저 받는 ...
편집에디터2020.09.03 18:28중국 화북성의 서남쪽에 태항산이 있다. 이 산은 험난하고 깊은 오지여서 예로부터 이곳을 기준으로 동쪽을 '산동(山東)'이라 불렀고, 서쪽을 '산시(山西)'라 불러오면서 역사 속에 자주 등장하는 유서 깊은 명산이다. 이곳의 자연이 비경이기는 하지만 그것에 홀리기 보다는 우리는 또 다른 이유로 이 산을 찾을 필요가 있다. 일제하의 암울한 시절에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해 청춘을 바쳐 싸워 나간 우리 독립군들의 눈물이 베이고 그 흔적이 곳곳에 산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의용군'이 바로 그들이다. '호가장 전투', '십자령 전투'가 ...
편집에디터2020.08.06 13:31중앙아시아에는 스탈린 시절에 연해주에서 강제 이주해간 우리 동포들이 많이 살고 있다. 일명 '고려인'이라 부른다. 이주 초창기에 있었던 그들의 한(恨)맺힌 삶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서 어느 정도 알고 있고, 이제 꽤 많은 세월이 흘러서 그들도 현지 생활에 적응하면서 기반을 다져오고 있는 게 현실이다. 사막과 초원, 그리고 만년설을 이고 있는 산맥이 어우러져 있는 키르기즈스탄에도 고려인들이 몇 군데 흩어져 살고 있다. 그 중에 '까라발타'의 변두리에 있는 한 고려인 집에 들렸다. 할머니와 아들, 손녀가 반갑게 맞이해 준 이 집은 ...
편집에디터2020.07.23 11:20영산강을 따라 산책을 하고 있었다. 갖가지의 초목들 사이에서 들꽃들이 난무하다. 잘 가꾸어진 정원이 부럽지 않는 풍경이다. 무엇을 찾아가는 것도 아니고 누구를 만나러 가는 것도 아닌 지금 이 발길이기에 좋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언제부턴가 이런 들녘에서 일하는 사람들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모든 게 변하기 마련이라고 하면 그만이지만 그래도 일하는 사람이 들어있는 풍경이 그립다. 양어장이 있었다. 물고기가 들어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왜가리 한 마리가 설치해 놓은 실 덫에 걸려 죽어 있었다. 인간의 먹...
편집에디터2020.07.09 13:02바람을 따라서 원추리, 엉겅퀴 피어있는 풀밭사이를 걷다가 산딸기 따먹고, 벼랑 끝의 바위 위에 걸터앉아서 꽃나비와 친구하며 망망한 바다와 저 아래 암벽에 부서지는 백파를 바라본다. 혼탁한 속세에서 벗어나 먼 곳에 와 있음을 실감케 함은 물론이요, 세상에 지친 영혼을 잠시나마 쉬게끔 하는데 제격이다. 만일 이런 곳에 귀양살이 왔다면 그건 호사스러운 것이다. 한국 영토의 최서남단인 가거도. 상하이에서 닭우는 소리가 들린다는 곳이다. 일제시대 때 '소흑산도'라 명명되어 불려오기도 했지만 원래의 이름은 '아름다운 섬'이라는 뜻의 가가도(...
편집에디터2020.06.25 13:036.25 직후 빨치산 토벌작전이 한창일 무렵, 가족 관계이거나 또는 부득이하게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밖에 없었던 민초들이 있었다. 그러나 세상은 냉혹해서 정치나 이념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어린 자식들에게 까지 화를 미쳤다. 빨치산에 당한 앙갚음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토벌군에 의해 마을 양민들이 집단으로 학살된 비극이 있었다. 그 중의 하나인 산청군 사천면 외공리 암매장터의 십여 년 전 발굴 현장이다. 유해의 대부분은 어린이들이었다.
편집에디터2020.06.11 13:24여기 저기 빈집들이 보인다. 아니 버려진 집들이다. 누군가의 시간이 녹아 역사를 이루었을 그곳이지만 이제 아무도 찾는 이들이 없어 자연으로 돌아가는 그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한다. 모두들 어디론가 떠나기에 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고 했다. 특히 농어촌의 공동화 현상이 심각하다. 늙은 부모가 떠나고 나면 그 자리를 자식들이 이어받아 오다가 언제부터인가는 떠난 자식은 돌아오지 않는다. 단지 기억 속에 묻어둘 뿐이다. 누군가 떠난 빈자리 버려진 집들이 오늘도 눈물짓는다.
편집에디터2020.05.28 13:11만주 지역인 랴오닝성 랴오양과 등타시 사이에 있는 백암산성은 현지에서는 '엔쪼우성'이라 부르는 고구려 산성이다. 태자하가 흐르는 것을 굽어보고 있는 산정에서 1500년의 세월을 견디어 오면서도 비교적 다른 성에 비해 남아있는 성벽의 상태가 양호한 곳이다. 또한 기단 부분을 보면 전형적인 고구려식 들여쌓기 형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549년에 돌궐의 1만 군대의 집중 공격에도 함락되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봐서 규모는 크지 않지만 이 성벽의 견고함을 짐작케 한다. 일부 무너져 내린 성벽의 틈바구니로 나가 잡목과 가시덤불 사...
편집에디터2020.05.14 16:49여기 저기서 거대한 돌덩이들이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그것도 놀랄 만큼의 아주 오랜 세월을 말이다. 당연 돌덩이들이야 억겹의 시간을 응축하고 있는 것이지만, 그냥 돌덩이들이 아니고 인간의 입김을 쐬고 손길이 미친 것들이기에 우리는 그것을 '고인돌'이라 부른다. 세계 도처에 거석문화의 하나로 이 고인돌들이 산재하고는 있지만 우리 한반도에 제일 많고, 특히 남도에 집중 분포되어 있다보니 과히 고인돌 왕국이라는 말도 서슴치 않는다. 청동기 시대의 산물이라고 말하지만 그 시간 또한 얼마나 거슬러 올라가야 될지 아직도 수수께끼에 싸여있는 ...
편집에디터2020.04.30 14:18광주시의 달동네 '발산부락'의 골목길을 기웃거리면서 조만간 사라져 갈 것들을 기록해 두고 싶었다. 이런 것들은 좋으나 궂으나 한 시대의 풍경이 되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빈집들이 많지만 아직도 자리를 지키며 떠나지 못한 사람들이 그 골목의 적은 온기나마 유지해 가고 있다. 어느 남루한 담벼락에 시선이 멈추게 되었다. 민주화의 물결을 타고 노동자들의 입김이 거세질 때의 세상 이야기가 화석처럼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내용은 물론 지금도 진행형이지만 왠지 씁스름한 웃음이 일었다. 기록해 두겠다고 이리저리 두리번 거리고 있을 때 한 사내가 ...
편집에디터2020.04.16 13:03민족의 비극을 보여준 또 하나의 잊여서는 안될 사건이 제주 4.3 이다. 공교롭게도 오늘이 바로 그날을 되새기는 날이다. 코로나 질병으로 지금 온 세계가 난리통이라지만 그날의 아픔을 잊고 넘어가서는 안된다. 이념의 갈등을 구실삼아 군경토벌대에 의하여 대략 3만명 이상이 학살된 제주 4.3사건이 진정국면에 접어들 무렵,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치안국의 불법적 '예비검속' 광풍에 무고한 제주 양민들이 경찰에 의해 학살되어 산야에 암매장 되거나 깊은 바다에 수장되었다. 그 중의 하나인 이곳 '섯알오름'은 일제 때 최대 탄약고였고...
편집에디터2020.04.05 16:20일제하에서 해방된지 75년이 되어가지만 아직도 그 기쁨과 의미를 모르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 동포들이 있다. 그들이 바로 일제 식민지 시대 '유배의 섬'이라 불렀던 '사할린'에 강제 징용 또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건너가 살게 된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언제부턴가 고향 방문의 길이 열리게 되었고, 일부는 '고향마을'이라는 보금자리에 이주해 살게 끔 되었다. 하지만 또 다른 이산가족의 아픔을 염려해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생의 종착역을 눈앞에 두고 안타까워 하시는 분들이 소수 남아있다. 그중의 하나인 '최남출' 할머니의 얼마 전 모습이다....
편집에디터2020.03.19 13:48동지들은 가고 .... 나만 홀로 남았는가 우리 현대사에서 가슴 아픈 사연들이 어디 하나 둘 이던가. 그 중의 하나가 민족의 비극을 보여준 '빨치산' 이야기다. 일제 식민지 하에서 해방이 되었다고 좋아했던 것도 잠시 뿐이었고 점령군의 논리로 조국이 두 동강났다. 독립 선열들 또한 이념 논쟁에 양분되어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게 되자 민족을 팔아먹었던 친일파들이 그 틈새에서 다시 고개를 들고 자신들의 죄상을 감추기 위해 나라를 구하겠다는 허울 아래 다시 피를 부르고 말았지 않았던가. 소년 빨치산이었던 '김영승' 옹이 86세의 고령...
편집에디터2020.03.05 13:47어느 작은 별에 인간이라는 동물들이 살고 있다. 그 집단들이 모여 사는 곳을 '도시'라고 말하던가. 물론 크고, 작고 하는 면에서 그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그곳은 언제나 번잡하고, 바쁘고, 소음과 탁한 공기 속에 노출되어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크고 작은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사라진다. 나름대로의 문제점들을 간직한 채 진화에 진화를 거듭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인가. 모두가 그 작은 별의 주인이라도 되는 양 색깔을 품어낸다. 국가간에, 민족간에, 또는 사회적 이념간의 색깔을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 도시의 무게가 버겁다고 말...
편집에디터2020.02.20 17:08그대, 관산성 전투의 슬픈 역사를 아는가? 언제부터인가 품고 있는 숙제가 있었는데 오늘이 바로 그 숙제를 푸는 날인가. 천오백 년의 시공을 뛰어넘기 위해 고속도로를 질주하듯 달린다. 찾아간 곳은 충청북도 옥천의 야산 백제와 신라가 박 터지게 싸우던 시절의 슬픈 역사가 서려 있는 곳 그 이름 '관산성 전투' 현장이다. 월등한 군사력에도 불구하고 천운은 백제에 있지 아니하였던가. 순간의 방심이 운명을 갈랐다. 백제의 성왕이 포로가 되어 참수되자 억장이 무너지는 슬픔을 어찌 감당할 수 있었겠는가. 기세를 잃은 백제군은 순식간에 처참하게 ...
편집에디터2020.02.06 13: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