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하라니요. 민주주의는 원래 수다스러운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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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프로젝트
"침묵하라니요. 민주주의는 원래 수다스러운 거예요"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 창설자이자 상근변호사 이소아 씨||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 막는 일상의 폭력에 맞서 싸우다||"자신을 증명하려고 무리하지 마라. 또 강요하지도 말자"
  • 입력 : 2019. 01.31(목) 13:51
  • 노병하 기자
이소아 변호사.
겨울치고는 생각보다 따뜻한 1월의 어느 날이었다.

프로젝트 섭외 대상이라는 전화에 쾌활한 목소리로 "그런데 어쩌죠. 저희 사무실은 비좁고 문패도 없어요. '같이돌봄가게'에 얹혀 살거든요. 오시는 것은 좋은데 사진 찍기가 힘드실 거예요"라고 답한다. 너무 쾌활해서 잠시 농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다.

몇 군데의 장소가 거론되고 결국은 전남일보 본사로 결정됐다.

보통 이런 인터뷰는 편한 장소나 자신을 표현하기 좋은 장소에서 하기 마련인데 그녀는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았다.

허나 왜 그런지는 대화를 해보면 금방 알수 있다. 그녀는 '찾아오라고 말하는 변호사'가 아니라 '제가 가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서류 속에서 의뢰인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피해 현장에서 만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소아 변호사. 1978년생, 이화여대 법학과 졸업, 2007년 사법고시 합격(사법연수원 38기). 부모님 고향이 전남이라는 이유로 본인의 유년기를 모두 광주에서 보냈다.

이 변호사가 공프로젝트의 2019년 두 번째 주인공인 된 이유는 아주 명확했다. 그녀는 약자를 대변하면서도 수임료를 받지 않는 공익 변호사이고, 이 공익변호사라는 개념을 광주에서 최초로 만든 사람이기 때문이다.

-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의 창설자이자 상근변호사로 근무하고 있다. 동행의 모토가 독특하다. 설명해 달라

△동행의 모토는 '존엄과 권리를 상실한 이들의 목소리를 법의 언어로 전달합니다'이다. 쉽게 이야기 하면 '민주주의는 수다스럽다'는 것을 법으로 증명하는 단체다. 지구에 사는 인간들은 모두 다르다.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비슷하지만 다 다르다. 그리고 거기에는 사회적 약자와 장애인, 성소수자, 외국인 노동자도 있다. 그들이 각각 자기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동행의 탄생 이유다.

-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그들의 정체성을 사회가 인정하고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을 말하는가.

△받아들이거나 거부하거나 하는 것은 개개인의 선택이다. 앞서 말했듯 모두가 다른데, 어떻게 그것을 강요하겠나. 문제는 다르다는 이유로 행해지는 폭력과 차별, 목소리 조차 못 내게 막는 사회적 분위기, 심지어 폭력을 행함에도 이게 폭력인지 모르는 일반인들에게 그것이 폭력이라고 말할수 있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일상에서 얼마나 많은 '인지하지 못하는 폭력'이 산재하는지는 사회적 약자가 돼보면 한다. 아울러 그렇게 '인지하지 못하는 폭력'을 행하는 사람들 역시 언제 어느 때 사회적 약자가 될 수 있다. 노숙자가 될 수도 있고, 사고로 인한 장애인이 될 수도 있으며, 자신의 아이가 성소수자가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게 사회다'라는 말로 넘어가 버린다. 민주주의 사회라면 그래서는 안된다.

- 그렇다면 이 변호사에게 있어 정의는 '말하는 것'인가?

△정확하게는 '그들(사회적 약자)이 말하게 하는 것'이고 '우리가 듣는 것'이다.

몇 년전 소송을 벌였던 여수 유흥주점 여성 사망 사건의 경우,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출발했다.

성매매 자체가 여성의 몸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반인권적이며, 어떤 의미에서 정치적인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아무도 모르게 덮어질 뻔했던 한 여성의 죽음을, 용감한 9명의 동료 여성들이 고발을 하면서 성매매의 착취 구조가 드러날 수 있었다. 그녀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느꼈던 것은 우리 사회에서 그녀들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녀들에게는 인권이 없었다. 모두에게 주어지는 보편적이고 당연한 그 권리가 없었다. 성매매 유흥주점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말이다.

인권이 없는 것은 그녀들 뿐만이 아니다. 우리 일상에서도 반 조직적 언사는 용납이 잘 되지 않는다. 조직에 반할 경우 개인의 정의와 인권은 가장 먼저 무시된다. '그럴거면 나가라'가 돌아 올 뿐이다. 제대로 된 사회라면 대화를 통해 설득하고 싸워야 하는데, 지금 현재의 대한민국은 그저 목소리를 막아 버린다. 내 입장에서는 이것이 불의다. 그렇기에 이 침묵을 강요하는 대상과 맞서 싸우는 것이다.

- 살면서 '정의가 실현 됐다'고 느꼈던 적은 있는가.

△재판에서 이긴다고 그런 감정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회가 바른 길로 가고 있을 때 그런 감정이 드는 것 같다. 살면서 여러 번의 그런 경험이 있지만 최근으로 한정한다면 서지현 검사를 성추행하고 인사 불이익을 가한 안태근 전 검사장이 유죄판결을 받았을 때다. 검찰이라는 조직내 약자의 목소리에 사회가 귀를 기울였고, 바른 결과가 나왔다. 이런 것이 정의라고 생각한다. 목소리를 내고, 거기에 귀를 기울여 주고. 그래서 상식적이고 당연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 말이다.

- 마지막으로 젊은이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동행을 만들기 전 난 죽을 뻔 했었다. 암이었다. '아 이제 죽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그 후유증이 있다. 그런데 살았다. 살아나니 모든 게 쉬워졌다.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빈곤하고, 조금 더 피곤하고 확신이 들지 않는다고 해도 말이다. 실제로 동행을 시작할 때 확신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주변의 만류도 엄청났다. 하지만 시작했다. 왜냐면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무엇때문에 공익변호사를 하냐는 질문도 마찬가지다. 좀 거슬러 올라가면 대학시절 카톨릭 동호회에서 사회 봉사활동을 하는 선배들이 대단해 보였다. 그리고 나도 그들처럼 하고 싶었다. 그래서 변호사가 되자마자 곧바로 여러 시민단체의 변호사로 일했다.

누가 시킨 것이 아니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것이다. 사람들은 그런 내 선택에 대해 많은 말들을 했다. 허나 신경쓰지 않았다.

지금의 청년층도 마찬가지다. 지금 당장 무엇을 증명하려고 하지 마라. 아니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애쓰지 말자. 자신은 자신이다. 누가 알아주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증명할 필요도 의무도 없다. 그런 것을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무시하라. 나의 결정은 온전히 내가 하는 것이다.

노병하 기자 bhn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