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판 위의 배달 라이더,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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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도박판 위의 배달 라이더,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양가람 사회부 기자
  • 입력 : 2020. 02.19(수) 14:06
  • 양가람 기자
'띵동!' 배달 라이더 A(18)군은 휴대전화에 뜬 콜(주문)을 확인하자마자 오토바이 페달을 밟았다. 퇴근시간대라 도로는 꽉 막힌 상태였지만 쉬지 않고 질주한 덕에 간신히 목적지에 도착했다. 하지만 고객은 배달이 늦었다며 화를 냈고, A군은 별점을 낮게 받을까 두려워 죄송합니다,를 거듭 외쳤다. '띵동!' 콜 알람이 울리자 건물 밖으로 나온 A군은 숨돌릴 틈도 없이 오토바이에 몸을 실었고, 다시 도로 위를 달렸다. 잠시 후, 어플에 A군이 배달한 음식에 대한 리뷰가 올라왔다.

"주문한 지 한 시간이 지나서야 음식을 받았어요. 면은 퉁퉁 불었고 군만두는 다 식은 상태였어요. 별 하나도 아까워요."

수많은 청년 배달 라이더들이 도로 위에서 죽고 있다. 지난해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19년 상반기까지 18~24세 청년 중 오토바이 배달로 사망한 사람은 모두 32명이었다. 산업재해로 사망한 청년들의 44%(72명 중 32명)가 오토바이 배달로 생을 마감했다.

그들에게 안전장치는 없다. 법적으로 자영업자인 배달 라이더들은 모든 위험을 온전히 스스로 감수해야 한다. 배달 라이더는 '누구에게도 구속받지 않지만 실제 모든 것에 구속돼 있는 존재'인 셈이다.

고객들의 별점 리뷰는 '신속 배달'을 부추긴다.

사람들은 도로 위 청년들의 죽음을 안타까워 하지만, 주문 음식 배달이 조금만 늦어지면 그들에게 화를 낸다. 리뷰를 안좋게 쓰거나 '별점 테러'를 일으키기도 한다. 배달업체는 별점이 낮거나 고객 리뷰가 좋지 않으면 해당 라이더 소속 업체를 리스트에서 삭제한다. 청년들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신속 배달을 위해 달려야 하는 이유다.

낮은 배달 수수료는 라이더들이 '더 많은 배달'을 하도록 내몬다.

라이더들은 배달 한 건당 2000~3000원 수준의 수수료를 받는다. 하지만 연료비, 보험료 등을 제하면 남는 게 없다. 한 시간에 최소 5건을 배달해야 겨우 최저임금 수준에 도달한다. 이런 구조 속에서 제한 속도 준수는 라이더들에게 먼 나라 이야기다.

한 라이더는 배달 노동을 도박에 비유했다.

"판에 돈이 쌓여 있고 빨리 달려가면 쥘 수 있다. 가져가는 사람이 임자다. 생활에 쪼들리고 돈이 궁해 이 판에 뛰어든 사람들이 안 달리고 버틸 수 있나. 도박에 빠진 사람도 문제지만 도박판을 짜고 만든 이들이 더 큰 문제 아닌가."

'띵동!' 콜 알림이 울리면 도박판 위 라이더들은 질주해야 한다. 그들이 더 이상 목숨을 판돈으로 걸지 않아도 되게끔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양가람 기자 lotus@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