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산동교'와 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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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광주'산동교'와 6·25
  • 입력 : 2020. 06.25(목) 17:44
  • 이기수 기자
이기수 사진
 어제는 6·25 한국전쟁 70주년되는 날이었다.그날의 포화를 기억하는 사람도 이제 많지 않다.1950년 전쟁둥이가 일흔 노인이 됐을 만큼 긴 세월이 흘렀기 때문이다.광주 유일의 6·25 전적지인 산동교에서도 전쟁의 상흔은 찾아볼수 없고 평화롭기만 하다.

 전쟁이 터진지 한 달 가량이 지난 1950년 7월 23일 새벽4시께 광주 북구 동림동에 위치한 옛 산동교는 폭파된다. 장성에서 퇴각한 26연대 병력과 경찰로 편성된 군경합동부대는 남하하는 인민군의 탱크를 방어하기 위해 다리를 끊었다. 마치 한강 철교가 두동강 난것처럼. 산동교는 호남지역에서 낙동강 전선인 마산지역으로 가는 길목에 있어 방어 상 중요한 위치였다. 하지만 오전 11시30분께 인민군 제6사단 병력 일부는 산동교 폭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탱크 3대를 앞세운채 군경 합동 부대의 저지선을 뚫고 유유히 강을 건넜다.한 시간동안 2.3인치 로켓포 등을 쏘며 인민군과 맞서던 산동교전투에서 합동부대의 김홍희 총경이 전사하고 장명규 경감이 다리를 잃는 중상을 입었다. 당시 합동부대는 사실상 전략적 요충지 방어에는 실패했지만 시민이 대피할 시간은 벌었다. 당시 아무런 상황도 모른 채 집에 있던 시민들은 총소리가 들리자 전투가 발생한 것을 알고 서둘러 피난길에 오를수 있었다. 광주지방보훈청은 일부 시설이 복구된 산동교에 대해 2011년 현충시설로 지정해 광주시민의 휴식처와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70년 전 산동교가 폭파된 것처럼 이달 16일 남북 화해의 상징 건물이 폭파됐다. 북한이 이날 2018 판문점 선언에 의해 개설한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청사를 일방적으로 폭파시켜 한반도에 다시 전운이 감돌고 있다. 이는 6·25 한국전쟁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을 실감케 한 사건이다. 1953년 7월 27일 체결한 정전협정이 휴전일뿐 종전이 아님을 상기시키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다'는 새로운 평화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한 판문점 선언이 파기되는 순간이었다.

북한이 군사행동을 한다고 하더라도 6·25와 같은 동족상잔의 비극은 없어야 하고,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3년간 전쟁으로 엄청난 인적·물적 희생을 치른 쓰라린 경험이 남북 모두를 파멸로 이끌 전쟁만은 피해야 함을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란 믿음에서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년전 그랬던 것처럼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다시 만나 한반도 평화와 상생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남북 정상은 2018년 4월 27일 제1차 남북정상회담때 도보다리에서 담소를 나눠 화제를 모은 바 있었다. 산동교와 도보다리처럼 다리는 제모습을 하고 있을때는 연결과 평화 유지의 의미라면 끊길 때는 전쟁과 대참사 같은 비극을 상징하는 시설물이 아닐까 싶다. 이기수 논설 위원



이기수 기자 kisoo.lee@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