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위기는 어떻게 다가올 위기의 배경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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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위기는 어떻게 다가올 위기의 배경이 되는가
  • 입력 : 2020. 07.02(목) 16:48
  • 김은지 기자

대구 수성구 삼덕동 대구미술관을 찾은 시민이 마스크를 착용한채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새로운 삶의 가치를 모색하는 '새로운 연대'전을 작품을 관람하고 있다. 뉴시스

대격변 | 애덤 투즈 | 아카넷 | 3만3000원

저자 애덤 투즈(Adam Tooze)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호출되는 인물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의 세계를 밀도 높게 서술한 '붕괴'로 국내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다. 글로벌 수준에서 반복되는 위기의 순간에 주목해 포스트 팬데믹의 세계 전망 '셧다운'과 기후 위기의 정치경제학 '탄소'에 이르는 '글로벌 위기 4부작'을 집필 중이다. 투즈가 현재의 전례 없는 위기 상황을 두고 비교의 대상으로 지목한 시기가 양자 세계대전 사이 즉 전간기이다. '대격변'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대공황에 이르는 세계질서의 재편 과정을 다룬 그의 또 다른 역작이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금융에서 비롯한 절대 우위의 경제력으로 전후 처리와 배상금 문제를 주도하며 세계 유일의 패권국으로 부상한다. 투즈는 새로운 세계질서를 주조한 미국의 우월적 힘을 두고 '부재하지만 존재하는'것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불안정한 기반 위에서 성립된 새로운 세계는 또 다른 전쟁에 이르는 파국을 맞는다. 새로운 세계질서는 어떻게 결합하여 재앙에 이르게 됐을까? 끝없이 일어나는 인간에 의한 재앙은 결국 누구의 책임인가? 세계는 영원한 안정과 평화를 이룩할 수 있을까? 이 책의 물음이 여전히 유효한 것은 100년 전 세기의 결정적 순간이 빚어낸 세계에서 우리가 살아가기 때문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5년 당시 영국의 군수 장관 데이비드 로이드조지는 성경에 나오는 '대홍수'에 빗대어 대격변을 예견했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세계는 숨 가쁘게 요동했다. 1917년 볼셰비키의 정권 장악,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 로마노프·호엔촐레른·합스부르크 왕국의 몰락, 베르사유 협정, 유럽과 중동에서의 국민국가 탄생, 동유럽의 혁명과 반혁명, 러시아의 내전과 기근, 프랑스 르 라인란트 점령 등. 투즈는 영국과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러시아, 중국, 미국까지 8개 강국들과 그 나라들 사이의 전략적 행위들을 추적하며 현대 세계를 구성하는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 요소들이 걸린 분쟁의 이야기를 전한다. 이 균형을 잃은 세계에서 승자와 패자는 상호 간의 새로운 의존성과 타협하며 미국과 뒤얽힌다.

미국은 우월한 경제력을 지렛대 삼아 협상국과 동맹국에 '옳은' 편의 승리가 아닌 어느 편도 승리하지 않은 것을 강요했다. 이 승리 없는 평화라는 구호는 문호 개방이라는 일관된 정책 목표와 함께 미국이 주도한 전후 질서를 규정하는 핵심 요소이다. 이러한 패권의 추구가 국가주의 미국의 목표로서 전후 문제의 처리 과정에서 일관되게 유지되는 모습을 저자는 집요하게 서술한다.

이러한 정책의 연장에서 미국은 강력한 디플레이션 정책을 펼치며 다른 나라들에 동일한 조치를 강요했다. 이는 군비축소의 방편이 되기도 했다. 금본위제 회귀로 상징되는 통화가치 안정의 추구는 제국주의로 상징되는 군국주의자들의 발목을 묶는 족쇄 구실도 했다. 이점에서 투즈는 1931년 9월 영국의 금본위제 이탈이 다가올 두 번째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대격변'의 세계질서는 대공황에 휩쓸려 미완의 상태로 파국을 맞는다. 1931년 독일의 배상금을 영구히 종결하는 후버의 모라토리엄 선언은 의회에서 가로막히며 다시금 미국은 국가주의로 회귀했다. 이는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세계질서에서 벗어나려는 현재의 움직임과 매우 닮아있다. 코로나19사태 이후로 우리는 세계적 협력과 연대의 필요성을 더욱 절감하고 있다. '대 유행병이 낳은 경제 위기'는 현실로 다가왔다. 우리는 또다시 '대격변'의 전조 앞에 서있다. 파국을 맞을 것인가, 새로운 희망을 창조해낼 것인가? 20세기 최대의 사건에서 비롯한 '지나간 위기'는 앞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위기'를 점칠 가늠자가 될 것이다.

대격변. 아카넷 제공

김은지 기자 eunji.kim@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