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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기시감
  • 입력 : 2020. 09.16(수) 10:19
  • 도선인 기자
도선인 사회부 기자.
하루에 수만 건씩 쏟아지는 기사들을 볼때면, 묘한 기시감이 들 때가 많다. 좀 더 나은 사회를 바꿔보자는 지적들, 어김없이 일어나는 황당한 사건들, 정치권 내에서의 대립들…. 대다수의 사람들도 기사를 보며 '이번에도 또?'라고 생각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기시감이 들 찰나도 없이, 사회문제가 해결되는 상황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기자들의 할 일이 없어지는 것 아니겠느냐마는 바뀌지 않는 행태에 씁쓸한 마음이 들 때가 많다.

이른 새벽 3년 차 택배 노동자를 만났다.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그는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해고 조치를 받았고 택배업계에 발을 들였다. 그는 이른바 '공짜 노동'이라 불리는 택배 분류작업에 크게 문제 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택배 노동자는 배달 한 건 당 800원 남짓의 수수료를 받는다. 수수료 금액에 대해서는 합의된 기준은 없다. CJ대한통운, 쿠방과 같은 대기업과 위탁 계약을 맺은 택배 대리소 마음대로 정해진다. 거대 자본은 800원 남짓한 수수료 안에 매일 7시간 씩 '택배탑'을 쌓는 육체노동의 대가가 포함됐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노동자가 아니라 개인사업자로 분류된다. 노동을 제공하지만 근로기준법에 보장된 점심시간도 근로 시간도 휴가도 없다. 수많은 기사에서 지적됐던 문제다.

코로나19가 계속되면서 택배 물량은 급증했고 올해만 택배 노동자 7명이 과로사로 세상을 떠났다. '택배 노동자의 과로'라는 사회적 문제가 7번이 반복되는 동안, 셀 수도 없는 기사들은 쏟아졌다. 우리는 그때마다 얼마나 많은 기시감을 느꼈는가.

기시감이 드는 수많은 기사들로 인해, 지난달 처음으로 '택배없는 날'이 만들어진 성과도 있었지만 발걸음은 딱 거기까지였다. 여전히 택배 노동자들은 거리에 나와 '근본적인 노동 구조를 바꿔야 한다'며 목소리를 내고 있다. '더 빨리 더 많이' 배달해야, 건당 수익을 더 가져가는 근로 환경이 계속된다면, 여전히 우리는 똑같은 기시감을 앞으로도 반복해서 느낄 것이다.

덧붙여 광주에서 오래 연극 생활을 이어 온 한 배우의 전화를 받고 난 또 한 번의 기시감을 느꼈다. 코로나19가 재확산되면서 예정된 공연을 모두 취소했다고. 넉넉지 않은 연극 바닥에서도 올해처럼 힘든 상황은 처음이라고 하소연을 했다.

서글픈 예측이지만 코로나19로 문화계가 전멸했다는 상반기 소식들은 변화없이 하반기에도 계속될 것이다.

2020년 절반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19로 한국 사회의 여러 문제가 촉발됐다. 잘 보이지 않던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문제들이 뚜렷해졌고 기시감을 느끼게 하는 기사들은 지금도 쏟아지고 있다. 부디 2021년에는 이런 씁쓸함이 덜해지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