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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이슈 8-3> 학살의 현장 걷다보면 "울분과 먹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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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이슈 8-3> 학살의 현장 걷다보면 "울분과 먹먹함"

■여순사건 유적지는
여수 14연대 주둔지·만성리 '거대 무덤'도
순천, 광양 곳곳 전투·학살·매장지 수두룩

게재 2020-10-18 18:22:58
18일 여수시 만흥동에 위치한 형제묘. 이곳은 여순사건의 부역혐의자로 종산국민학교(현 중앙초등학교)에 수용되었던 사람들 중 125명이 1949년 1월 3일 이 자리에서 희생된 곳이다. 나건호 기자
18일 여수시 만흥동에 위치한 형제묘. 이곳은 여순사건의 부역혐의자로 종산국민학교(현 중앙초등학교)에 수용되었던 사람들 중 125명이 1949년 1월 3일 이 자리에서 희생된 곳이다. 나건호 기자

 올해로 72주기를 맞는 여수·순천 10·19사건은 좌·우로 나뉜 이념의 잣대 앞에 벌어진 비극적인 '피의 역사'이다.

 여수, 순천 등에서 벌어진 9일간의 기록은 그야말로 끔찍한 학살이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진실은 72년째 침묵하고 있다.

 죽음의 공간은 오랜 세월, 산업화 등으로 콘크리트에 파묻혔고 각종 기계음은 한맺힌 울분마저 삼켜버렸다. 오직 역사적 현장임을 알리는 안내판과 비석들만 즐비하다.

 여수 신월동에 위치한 14연대 주둔지는 여순항쟁의 시작이다. 1948년 5월4일 광주에 주둔한 제 4연대 1개 대대가 내려와 제 14연대를 창설했다.

 이승만 정부의 제주 4·3항쟁 진압 명령에 동족을 향해 총부리를 겨눌수 없다며 제주 출병을 거부하면서 여순사건이 발발했다. 현재는 한화 여수공장이 자리해 있다.

 여수 경찰서 인근에 있는 종산국민학교(현 중앙초)는 걸어서 나간 사람이 없을 정도로 죽음의 공간이었다.

 당시 부산의 5연대 1대대장이었던 김종원은 일본군 하사관 출신으로 악명이 높았다. 그는 종산국민학교에서 혐의자를 취조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일본도로 여수 시민의 목을 치기도 했다.

 여수 시내에서 마래터널을 걸어서 지나면 만성리. '형제묘'라는 비석이 세워진 곳엔 125명의 넋이 섞여 있는 거대한 무덤 땅이다.

 1949년 1월13일 종산국민학교에 수용되었던 이들 중 125명이 먼 거리를 걸어서 만성리까지 와 처형됐다. 시신이 얼마나 많았던지 3일간이나 불길이 꺼지지 않았다고 한다.

 현재 이곳엔 '여순사건 희생자 위령비'가 서 있다.

 순천시 조곡동에 위치한 순천역은 여수의 봉기군이 인근 지역으로 진출한 첫 번째 지역이다. 통근 열차에 나눠 탄 2000명의 봉기군은 순천역에 사령부를 설치했다.

 순천역은 당시 봉기확산의 과정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곳으로 순천 공격의 중요 거점이 됐다. 순천역 근무 철도원이 많이 희생된 아픈 공간이기도 하다. 순천을 탈환한 진압군은 역무원 등을 생목동 수박등 공동묘지로 끌고가 총살했다.순천교(장대다리)와 동천 제방은 봉기군과 진압경찰 사이에 최초로 치열한 접전이 벌어진 곳이다. 이번 전투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 순천 동천을 사이로 광양삼거리(현 조곡삼거리)에 진압경찰이 주둔했고, 봉기군은 동천 제방에 방어선을 구축했었다.

 대량 학살지와 매장지도 수두룩하다.

 동순천역(순천시 조곡동)은 인민군 사령부가 설치된 곳이지만 3일 만에 진압군이 재탈환하게 된 곳이다.

 옛 순천경찰서(순천시 연자로 12)는 봉기군이 경찰과 우익을 처형했고, 이후엔 경찰이 좌익과 부역자를 처형한 아픈 공간이다.

 호남은행과 사거리(현 신한은행) 일원은 토벌군의 특별조사국이 설치, 빨갱이 색출에 이용됐고 고문도 이뤄졌다.

 매곡동 학살지(현 매산중학고 옆 당산나무 주변)는 개신교 성지로 당시 주민 26명이 총살당한 곳이다.

 순천농림중학교(현 순천대학교)는 진압군 주둔지로 고문과 취조, 학살이 자행됐다. 학구삼거리(순천시 서면 학구리)는 봉기군이 첫 전투에서 패배한 곳이며, 해룡 도롱마을(순천시 해룡면 도롱리)은 반란 동조, 반군협력 협의로 많은 주민들이 희생된 곳이다.

 낙안면 신전마을(순천시 낙안면 신전리)은 집단 민간인 학살이 자행된 곳이다. 국군 입대자가 없다는 이유로 '빨갱이 마을'이라며 32가구를 불태우기도 했다.

 구량실(순천시 서면 흥대리)은 평범한 산골마을이었으나 민간인 처형, 보도연맹원 집단처형 등이 이뤄져 '송장골'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주령골(반송쟁이)은 광양시 광양읍 덕례리 일원으로 광양 주민 100여 명이 진압군에 의해 끌려와 집단총살을 당했던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