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과 시월(詩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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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단풍과 시월(詩月)
  • 입력 : 2020. 10.18(일) 16:17
  • 최도철 기자
"숲길을 지나 곱게 물든 단풍잎들 속에 /우리가 미처 나누지 못한 사랑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푸른 하늘 아래 마음껏 탄성을 질러도 좋을 /우리를 어디론가 떠나고 싶게 하는 설렘이 있었습니다. /가을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용혜원 '가을 이야기').

10월. 초록이 지쳐 단풍드는 날. 가을바람을 따라 숲에 드니 나무들의 때깔 바꾸기가 한창이다. 아직 연록 그대로인 잎도 다문다문 눈에 띄지만, 굴참나무는 갈색 물을 들이느라 분주하고, 단풍나무는 선홍 빛깔을 올리기에 부산하다. 지난 주말 지인들과 찾았던 지리산 피아골 풍경이다.

눈부신 하늘 아래 들길마다 산길마다 구절초, 쑥부쟁이, 산국이 피어있는 가을날 산행은 더할 나위 없는 희락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절기가 분명한 우리나라 단풍은 색이 곱고 영롱하기로 견줄 바가 없다. 고금의 문장가들이 그 아름다움에 반해 무더리무더리 글로 풀어낸 동인이다.

영광이 태 자리인 오세영 시인은 "무어라 말씀하셨나 돌아서 옆을 보면 /화들짝 붉히는 낯익은 얼굴 /무어라 말씀하셨나 돌아서 뒤를 보면 /또 노오랗게 흘기는 그 고운 눈빛 /가을 산 어스름 숲속을 간다. 붉게 물든 단풍 속을 호올로 간다."라며 단풍 산행을 그려냈다.

승주가 고향인 조정래 작가는 '태백산맥'에서 "새빨간 단풍들은 계곡의 물까지 붉게 물들였다. 주황빛이나 주홍빛의 단풍들 사이에서 핏빛 선연한 그 단풍들은 수탉의 붉은 볏처럼 싱싱하게 돋아 보였다."며 피아골 단풍을 묘사했다.

강진에서 태어난 김영랑 시인은 "장광에 골붉은 감잎 날아와 /누이는 놀란듯이 치어다 보며 /오메 단풍들겄네."라며 단풍이 짙게 깔린 가을을 노래했다. 단풍드는 10월은 시월(詩月)임이 분명하다.

바야흐로 단풍철이다. 늘 그랬듯 설악산을 시작으로 오대산, 지리산, 내장산 등 단풍 명소마다 야단이고 법석이란다.

글을 쓰노라니 몇 해 전 다녀온 고창 선운사 호젓한 단풍길 기억이 새록하다. 선운사 단풍의 백미는 은행나무와 애기단풍 물결이 넘실대는 일주문부터 도솔계곡이다. 걷는 내내 굵은 노거수들이 울긋불긋 절정의 단풍을 펼쳐내고 도솔천 맑은 물이 이를 비쳐낸다. 그야말로 승경이다.

낼모레 상강이 지나면 국화주 마시는 중양(重陽)이다. 고구마 몇 개 싸고 물 한 병 담아 쉬 떠나고 싶다. 코로나 역병으로 찌든 마음 비우고 가을 서정을 듬뿍 길어 올는지도 모른다.

최도철 기자 docheol.choi@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