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벌어 사는 일용직 노동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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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하루 벌어 사는 일용직 노동자입니다"
근로자대기소로 출근하는 자영업자||“버틸 수가 없어… 이게 최선이다”||광주·전남 폐업률 계속 ‘상승’||“계약자 없어 폐업마저 어렵다”
  • 입력 : 2020. 10.28(수) 17:34
  • 최원우 기자
"평생을 피땀 흘려 번 돈으로 힘들게 일군 가게였는데… 버티다 버티다 결국 가게를 정리했습니다. 힘들게 창업한 만큼 첫 사장님 소리를 들은 기억이 생생한데 2년도 채 안 됐는데…"

28일 오전 10시께 광주 남구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만난 박병재(57)씨는 긴 담배 연기와 함께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온몸이 먼지로 얼룩덜룩한 박씨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샌드위치를 가게의 사장님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매일 새벽마다 일감을 찾아 근로자 대기소를 전전하는 일용직 노동자가 됐다.

올 초만 해도 이럴 줄은 몰랐다.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박씨는 창업에 대한 부푼 꿈을 안고 회사를 퇴사해 지난해 2월 모아둔 돈과 대출을 받아 샌드위치 가게를 차렸다.

"처음에는 창업을 왜 이제 결심했을까 싶을 정도로 가게 운영이 잘됐죠. 단골손님들이 생기면서 어느 정도 고정수입도 생기고..."

매달 700만원 이상의 수입을 벌어들일 정도로 성공적인 창업,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지난 1월 말 등장한 코로나19는 빠른 속도로 박씨를 옥죄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하나둘 줄어들던 손님이 5월부터는 바닷물이 빠지듯 눈에 띄게 줄면서 월 매출액은 200여 만원 대로 떨어졌다. 이때부터 박씨는 월세와 직원 고용비, 전기세 등 가게 영업을 유지하기도 어려운 적자 운영에 시달렸다. 그리고 끝내 지난 8월 가게를 폐업해야 했다.

현재 박씨는 매일 오전 5시에 일어나 근로자 대기소에 출근하고 있다. 이곳이 새로운 '직장'이 된 셈이다.

회사 경력을 제외하면 특별한 기술도 없는 그에게 주어지는 일은 여러 가지 자질구레한 일을 하는 '잡부'가 전부. 그는 매일 건설현장, 인테리어 공사, 철거현장 등에 투입되고 있다.

박씨는 "코로나 이후 자영업자들에게 버티라고만 하는데 정말이지 사람이 버티는 게 아니라 돈이 버티는 거더라"라면서 "돈이 없다 보니 버티기 힘들어졌고 결국 폐업을 했다. 계속 적자를 보느니 폐업하는 것이 최선이었다"고 말했다.

비단 이것이 꼭 박씨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올해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의 경제적 충격은 결코 공평하지 않았다. 있는 자는 버텼지만 자영업자, 특히 규모가 작은 소상공인은 해일에 휩쓸리듯 사라져 가야 했다.

지난 22일 한국은행이 제출한 '광주·전남지역 조사연구자료'에 따르면 자영업 폐업률은 지난해 말 기준 광주가 13.9%, 전남은 11.8%를 기록했다. 광주의 경우 같은 기간 전국 자영업 평균 폐업률인 12.3%를 크게 웃돌았다. 이는 전국 폐업률 중에서도 최고 수준이다.

자영업의 5년 생존율의 경우 광주는 26.5%, 전남 27.3%를 기록, 같은 기간 전국 평균 29.2%를 크게 밑돌았다.

결과만 보자면 광주전남 지역 자영업의 폐업률은 높아지고 생존율이 낮아지는 추세가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는 것이다.

더욱 서글픈 현실은, 그나마 폐업이나마 할 수 있었던 자영업자는 다행이라는 점이다.

봉선동에서 국밥집을 운영하는 김대철(64)씨는 "장사를 시작할 때 이전 세입자에게 지급한 권리금을 다음 세입자에게 받아야 하지만, 불황 속에서 다음 세입자를 구하긴 어렵다"라며 "폐업할 경우 권리금은 없다고 생각해야 하는데 그러면 또 돈이 나가는 셈"이라고 말했다.

창업 당시 빚을 지고 시작한 자영업자들이 대부분인 만큼 권리금을 포기하고 폐업을 신고하긴 어렵다는 말이다.

또 같은 업종의 다음 세입자가 나타나면 상관없지만, 세입자가 나타나지 않은 상태에서 폐업할 경우 인테리어 공사로 바뀐 건물 구조를 원상복구 해야 한다. 이를 위한 철거비마저 지출해야 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신용카드 계산 등을 위한 포스기나 정수기 등 각종 대여 물품의 계약 기간을 채우지 못한 경우 위약금마저 발생한다.

폐업마저 한두 푼이 아닌 수백만 원에 이르는 돈을 추가로 내야 하기에 폐업하기도 쉽지가 않다.

김다빈(38)씨는 "더이상 카페를 운영하기가 어렵다고 판단, 건물주에게 문의했더니 변경된 건물 구조의 철거비를 내라고 하더라"라며 "뭘 해도 돈이 나가는 상황이다 보니 그냥 버티는 수밖에 없다. 하루하루가 지옥 같지만 어쩔 수 없이 가게를 영업 중"이라고 말했다.

갈수록 자영업자들의 서글픈 비명은 커져가지만, 코로나19의 끝이 보이는 것도 정부의 현실적인 지원 정책이 보호해 줄 수도 없는 상황. 그저 버텨내는 것만이 전부인 이들 앞으로 추운 겨울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최원우 기자 wonwoo.choi@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