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 정철 딜레마에 빠진 전남 지역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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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송강 정철 딜레마에 빠진 전남 지역사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전남 공립대안학교 명칭 '송강고'||“기축옥사 때 호남인 학살했는데”||남악 중앙공원 ‘흉상’도 반발 커
  • 입력 : 2020. 11.23(월) 17:19
  • 양가람 기자
내년 3월 문을 여는 공립대안학교 송강고등학교의 조감도. 전남도교육청 제공
담양에 들어설 공립대안학교가 이름 때문에 논란이다. 호남 지식인을 대거 몰살한 송강 정철의 이름이 교명으로 사용되면서다. 여기에 무안 한복판에는 정철의 흉상까지 세워져 일부 지역 역사학자들 사이에선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남 최초 공립대안학교에 '송강고' 명칭

내년 3월 문을 열 전남 첫 공립대안고 이름이 송강고등학교로 확정됐다.

전남도교육청에 따르면, 지난 7월 담양군 봉산면 옛 봉산초 양지분교에 들어서는 전남1호 공립대안학교에 대한 '교명' 공모가 진행됐다. 당시 총 116편이 응모, 교명심의위원회 심의에서 '송강고등학교'로 최종 결정됐다.

도교육청은 "소나무처럼 학생들이 곧고 푸르기를 바란다는 뜻의 '송'(松)과 강물처럼 자유로운 사고를 지니기를 희망하는 '강'(江)을 의미한다"고 교명의 의미를 설명했다.

송강고는 광주·전남지역 최초의 기숙형 공립 대안학교다. 교과중심의 교육에서 벗어나 진로교육과 체험학습 등을 중심으로 교육과정이 운영된다. 학교의 목표는 '스스로 서고 함께 성장하며 미래를 꿈꾸는 교육공동체'로 설정했다.

도교육청은 학업중단 위기 학생과 학교 밖 청소년 등에게는 참된 교육의 장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역사학계 "정철, 호남 유림 탄압"

문제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터졌다.

송강고의 '송강'은 '사미인곡', '관동별곡' 등을 지었던 조선시대 문인 정철의 호이기도 하다. 송강 정철은 가사문학의 대가로 칭송받는 동시에 무자비한 정치가로도 평가되는 인물이다. 이에 지역 역사학계는 송강 정철의 이름을 학교명으로 사용하는 게 부적절하다는 입장이다.

이계표 전라남도 문화재위원은 "지역성을 강조하려면 '봉산'이나 옛 양지분교의 이름이 더 낫지 않나 싶다"면서 "송강은 가사문학의 대가지만, 역사적으로 논란이 많은 인물이다. 1589년 조선 선조 때 동인의 유림들이 모반 혐의로 박해를 받은 기축옥사 당시 송강은 수사책임자였다. 그는 호남 사림 1000여 명을 무자비하게 고문하고 처형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학교 이름을 인명으로 하는 것도 따져봐야 할 문제다. 굳이 인명이 필요하다면 만세의 사표가 될 만한 인물이어야 한다. 호남인들에 피해를 입힌 인물을 교명으로 쓰는 건 두고 두고 문제가 될 듯 하다"고 덧붙였다.

역사적 인물명을 빌려다 쓰는 것에 대해 신중해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이 위원은 "광주는 금남로, 죽봉대로 등 인명으로 도로명을 많이 지어왔다. 다들 의로운 분들이거나 큰 공적을 남긴 분들이다. 나아가 대안학교에는 누구나 공감할 만큼 좋은 이름이 붙길 바라는 만큼, 재고해 봐야할 문제"라면서 "1990년대 초반 '송강로'라는 도로명으로 거론됐으나 무산된 이유에 대해 고민해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당시 응모된 명칭 가운데 5개 정도를 뽑아 인터넷 설문을 진행했다. '송강고'라는 이름은 담양군청과 지역 주민들의 선호도가 높아 선정된 걸로 안다"고 말했다.

이어 "이미 명칭이 정해졌고, 관련 조례도 통과된 상태다. 학교명을 바꾸려면 다시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부터 밟아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명칭 변경이)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남악에도 정철 흉상… "논의 거쳐야 철거"

무안 남악에도 정철 흉상이 설치돼 적절성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2012년 전남개발공사는 전남도청의 위탁을 받아, 무안 남악신도시 중앙공원에 역사적 인물 12명의 흉상을 설치했다. 김천일·나철·서재필·왕인·윤선도·이난영·이순신·장보고·정약용·정철·초의선사·허백련 등 전남 지역과 관련이 있는 인물들이 흉상으로 제작됐다. 4억여 원 씩을 들여 제작·설치된 흉상의 밑엔 간단한 인물 소개가 적혀 있다.

당시 전남개발공사 관계자는 "관련 전문가와 지역민 의견을 수렴해 각 지역을 대표하고 도민에게 친숙하면서 추앙받는 인물들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남악 주민의 생활 중심지이자 산책로로 활용되는 공간에 논란이 되는 인물의 흉상이 설치된 것이 적절하느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역사학자들은 송강 정철 뿐 아니라 친일논란이 이는 이난영, 친미행적의 서재필 등이 12인에 포함된 점도 덧붙였다.

한 역사학계 관계자는 "전남개발공사의 흉상 설립에 절차상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다. 다만 공론화를 통해 송강을 역사적으로 재평가하고, 건설적인 논의가 이어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중앙공원 내 흉상 유지·관리를 맡는 무안군 신도시사업소 관계자는 "해당 민원이 따로 접수된 바가 없어 자세히 몰랐다. 하지만 당장 철거 문제를 꺼내는 건 신중히 접근해야 하는 문제다. 만약 민원이 접수된다면 검토, 의견 수렴 등 절차를 고려해 보겠다"고 말했다.

양가람 기자 lotus@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