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이승현> 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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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칼럼
아침을 열며·이승현> 사노라면
이승현 강진 백운동 원림 동주
  • 입력 : 2021. 01.13(수) 13:17
  • 편집에디터
이승현 강진 백운동 원림 동주
세한에 내리는 눈발이 하얗다 못해 푸르다. 며칠째 내리는 눈이 쌓여 원림의 동백나무는 그야말로 동백(冬白)이 되고 초가지붕은 눈을 모자처럼 쓰고 있다. 쏟아지는 햇살에 날리는 눈가루는 무지게처럼 눈부시다. 초가지붕 가장자리에 매달려 벼 낟알을 용케 찾아 먹이를 구하는 참새들의 모습이 애잔하다. 먹을 것이 부족할 것 같아 가을에 갈무리해 놓은 수수와 벼를 마루에 놓아주자 날고 앉기에 바쁘다.

사정상 두 집 살림을 하게 된 필자는 연말 연초 서울살이를 해보려고 갔다가 며칠도 못살고 다시 내려 왔다. 오랜 직장생활을 서울에서 해왔기에 수십 년간 교류했던 지인과 송년모임도 하고 도시의 번잡함과 화려함도 느끼고 싶었지만 코로나가 막아서버렸다. 성공한 친구들의 자랑을 안주로 막걸리 한잔도 못하고, 젊은 시절 추억의 찻집도 못갔다. 가족끼리도 거리를 둬야하는 이 느닷없는 도시의 일상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았다. 삶은 계속되고 있지만 삶의 방식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됐음을 실감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부고도 없이 가족의 애도조차 받지 못하고 죽어나간다. 생업의 파산이나 실직으로 경제적 토대가 무너져 가는 사람들이 늘어 가는데 주식과 부동산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그 와중에 일부는 떼돈을 벌고 있다고 한다. 이런 극단적인 경제적 불평등이 가져올 후폭풍이 무섭고 두렵다.

'더 이상 내겐 카드가 없었죠/ 이긴 사람만이 모든 걸 다 갖죠/당신이 나의 전부라고 믿었고/ 늘 지켜 줄 거라 믿었죠/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죠/ 패자는 초라하게 서있을 뿐이죠'. 승자 옆에서/ 팝 그룹 '아바'의 위너 테익스 잇 올( The Winner Takes it All) 노래처럼 승자가 모든 것을 가져가고 결정 짓는 그래서 나한테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세상과 마주하고 있다. 자본주의가 가져온 부와 권력의 집중, 가족과 공동체의 해체 같은 인간관계의 붕괴, 그 와중에 아무도 나를 지켜주지 못하는 이 시대의 아픔과 상처를 전쟁처럼 겪고 있다. 어떻게 해야 휘청거리는 내 삶을 다시 부둥켜 끌어안고 마르고 여윈 마음을 추슬러 삶의 애착을 갖게 될 것인가. 나 자신을 살리는 방법은 무었일까.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브드 브룩스는 인생이란 두 개의 산을 오르는 일과 같다면서 첫 번째 산에서는 자아의 욕구를 채우고 주류문화를 따랐다면 두 번째 산에 오르는 사람들은 이러한 세속적 욕구와 삶에 반기를 든다. 고독과 소외, 가치와 의미 상실, 공동체 부재 같은 극단적 개인주의 문화를 지양하고 이제 상호 의존과 이타적 헌신, 정신적 기쁨으로 가치관과 시선을 돌리길 권유한다. 마리아나 마추카토 런던대 교수는 '가치의 모든 것'이라는 책에서 오늘날 세계경제는 혁신과 기업에 과도한 가치를 부여해 소수의 사람만이 매우 과도하게 부유해지고 있다고 경고한다. 개인도 특정한 가치나 강요된 승패에 올인하여 인생을 허비하고 피 흘리고 있지는 않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자산운영가 천영록은 '부의 확장'이라는 책에서 자본주의가 만들어 놓은 거대한 자원을 인지하고 적재적소에 자신을 배치하고 이 연결망의 가장 유리한 지점에 서야한다고 조언한다.

라이언 홀리데이는 '스틸니스'라는 책에서 소란과 불안, 혼란한 일상과 싸우는 현대인에게 내 안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힘은 바로 '고요함'이라고 한다. 처칠은 바쁜 공무중에서도 틈틈이 그림을 그렸고 빌 게이츠는 1년에 두 번씩 일주일 동안 홀로 숲으로 들어가 지냈다고 한다. 코로나 시대를 살아내기 위해서는 삶의 가치,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조언들이다. 한 개인의 힘만으로는 코로나 재난을 극복하기가 불가능하기에 국가나 정부가 해야 할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정책, 즉 기본소득제 도입이나 교육격차 해소등이 시급하지만 우물쭈물하고 있고 백신주권 확보나 지방등 의료 취약지역 해소 같은 사회적 방역도 단시간에 해결될 수 없으니 결국 당장의 코로나 시대를 극복하는 것은 온전히 개인 책임이다. 소위 '영끌'이나 '동학개미'현상은 개인과 가족이 살아남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부정적 시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연착륙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서울이나 광주등 도시의 지인들에게 늘 지방에 내려와 한적한 농어촌에 살기를 권하지만 실행은 쉽지는 않다.

에볼라, 사스, 메르스, 코로나 같은 대역병은 자연 생태계의 파괴에서 비롯되고 도시에서 전염이 폭발한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자연주의적 삶, 생태보존 환경으로 돌아가는 것도 코로나를 극복하는 해법이 될 수 있다. 필자가 사는 강진은 놀랍게도 아직까지 코로나 확진자가 한명도 없다. 직장이나 사업으로 메여 있지 않은 은퇴자들이라도 주거지를 농어촌이나 산촌으로 이주하면 좋겠다. 자연에서 삶과 더불어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미련, 타인의 권리를 빼앗으려는 욕심을 버리니 마음은 평화로워지고 성질은 자애로워 졌다. 잠시 글쓰기를 멈추고 원림의 눈 밭을 걸어 매화나무와 마주하니 팥알 같은 꽃눈이 혹한 속에서도 수없이 메달려 터뜨릴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문득 떠오른 조선시대 선비 신흠(申欽)의 시 한수가 신념과 용기를 북돋운다.

'오동나무는 천년이 되어도 항상 제 곡조를 간직하고/매화는 일생동안 추위에 떨어도 향기를 팔지 않네/달은 천 번 이지러져도 그 본 모습은 변치 않고/버드나무는 백번을 꺾여도 새가지가 돋아니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