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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길 끊기자… "대한민국은 낯선 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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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길 끊기자… "대한민국은 낯선 땅이 되었다"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 마을
4·5세 본국 오갈수없는 상황
지난 8월 긴급입국 허용됐지만
“언어 고충 국적취득 어려워”

게재 2021-01-14 17:36:30
지난해 11월 '위기가정 SOS 고려인마을 희망풍차 네트워크'에서 고려인들을 위한 빨래 봉사가 진행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광주·전남지사 제공
지난해 11월 '위기가정 SOS 고려인마을 희망풍차 네트워크'에서 고려인들을 위한 빨래 봉사가 진행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광주·전남지사 제공

"한 고려인은 러시아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갈수가 없었죠. 하늘 길이 끊겼잖아요. 그래서 한국에서 며칠을 울었죠. 할 수 있는 일이 우는 것밖에 없었으니깐. 모아둔 돈 조금 보내주고…"

2006년 한국에 온 고려인 신조야(고려인마을 대표)씨는 지난해 코로나19로 하늘 길이 끊기자, 유난히 힘든 한 해를 보냈다고 털어놨다.

신조야 대표는 "한국 땅을 밟은 고려인들은 언어적인 고충이 많아서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이다. 말이 안 통하니 대부분 육체노동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간다"며 "지난해 코로나19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이런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려워 생계가 힘든 이웃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또 "그렇다고 한국 국적을 쉽게 취득할 수도 없다. 국적을 따려면 한국어 자격이나 일정 기간 한국 회사에서 일한 경력 등을 인정받아야 하는데, 돈을 벌려고 한국 땅을 밟은 이주민을 비롯해 고려인들은 그런 여건이 안된다"며 "그렇게 세월을 보내다가 비자 만료가 다가오자, 고려인들은 본국에 돌아가 연장을 받을 수 없으니 급한대로 2~3개월 비자를 단기 연장 받아 체류하고 있다"고 말했다.

즉, 지금 광주에 거주 중인 상당수의 고려인들은 한국에 돈을 벌려고 왔지만 일자리도 없고 코로나19로 돌아가는 길까지 막히면서 그야말로 강제 난민이 되어버린 것이다.

광주시에 따르면, 지난해 2월 기준 광주에 거주하고 있는 고려인들은 6300여명으로 집계된다. 그중 광산구에만 5400여명의 고려인들이 살고 있다.

가는 것만 못하는 것이 아니다. 오는 것도 힘들어졌다. 코로나19가 퍼지기 직전인 지난해 2월, 비자 연장을 위해 본국으로 돌아간 3세대 고려인들은 코로나19 확산과 함께 다시 한국 땅을 밟지 못한 상황이 계속됐다. 비자 연장 차 귀국한 고려인들이 코로나로 인해 입국하지 못하면서 한국에 3세대 자녀들만 남아 있게 돼 교육 및 생계, 의료비 등 긴급지원이 필요한 가정이 발생한 것이다.

이천영 새날학교(고려인 학교) 교장은 "광주에 홀로 남겨진 자녀들은 주로 친척 집에 머물거나 아동센터 보살핌으로 지난 한 해를 보냈다"며 "8월 긴급 입국이 허용되면서 부모세대가 들어오기도 했지만, 여전히 코로나 때문에 이동이 자유롭지 않은 상황이다"고 말했다.

한국 땅을 밟은 고려인들은 국적이 크게 우크라이나, 러시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벡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6개 국적으로 나눠진다. 보통 재외동포비자(F4), 방문취업비자(H2)를 통해 한국에 체류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6월까지 위 국적에서 재외동포비자(F4)를 통해 한국에 들어온 입국자는 총 2227명이다. 2019년 같은 기간의 경우 5679명과 비교하면 절반가량 줄어든 셈이다.

코로나19로 생계가 어려운 고려인 가정을 돕기위해 대한적십자사 광주·전남지사는 지난해 10월 '위기가정 SOS 고려인마을 희망풍차 네트워크'를 출범하기도 했다.

대한적십자사 광주·전남지사 관계자는 "4~5명의 가족 구성원이 좁은 원룸에 살아가고 있어 주거 환경이 열악한 가정이 많고 입국 이후 곧바로 건강보험 가입이 어려워 의료비가 없는 사람들도 상당수다"며 "고려인 가정 중 한부모, 장애인 등의 가구를 선정해 긴급 지원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광주에 거주 중인 고려인들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김영술 전남대학교 디아스포라학과 교수는 "코로나19 발생 초기, 고려인 동포들은 방역 수칙을 습득하는 것에 있어 언어적 고충이 많았다. 자칫 월곡동에 확진자가 발생하면 이주민을 향한 혐오감이 조성될 수 있어 조바심도 컸다"며 "한국어가 서툰 고려인 자녀 세대는 거리두기가 강화돼 한국어를 배울 기회까지 줄어들면서 학습 격차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고려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는 안산의 경우 일부 업체는 코로나19로 근로시간을 단축하면서 고려인부터 대상으로 했다"며 "코로나시대, 건강한 공동체를 위해 내국인들의 포용과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