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제로에 '투잡·쓰리잡'… 고사 위기 여행업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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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일반
수입 제로에 '투잡·쓰리잡'… 고사 위기 여행업계
작년 이후 매출 전무에 문 닫아||구직난에 막노동… 우울증까지||“한시적 지원금보다 지속 대책”
  • 입력 : 2021. 03.18(목) 17:17
  • 오선우 기자
호남지역 여행인들이 더불어민주당 광주시당 앞에서 피켓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호남지역여행업비상대책협의회 제공
코로나19 장기화로 수입이 없어진 여행업 종사자들의 생계가 경각에 달렸다. '투잡·쓰리잡'에 나서도 나아지지 않는 생활고에 정부 지원이 절실하지만, 제도 개선은 더디기만 하다.

●수입 제로… 임대료·관리비만 증발

"말은 사장이지만 실제로는 빈민입니다. 일자리도 못 구하는 사업자를 갖고 있으니."

광주 광산구에 거주하는 나권용(59)씨는 오늘도 집에서 전전긍긍하며 일자리를 알아보는 데 여념이 없다. 지난 1985년 처음 여행업에 발을 들인 후 94년 자신의 사무실을 열기까지 다사다난했지만, 지금처럼 초유의 위기는 처음이라는 그다.

코로나19 확산 후 1년, 나씨는 상무지구에 있는 사무실 출근을 해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내와 아들까지 셋이서 가족사업으로 해왔던 터라 집안 전체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코로나19 이전 나씨의 성수기 월평균 순 수입은 적어도 7~800만원에서 많으면 1000만원 이상. 세 식구가 생활 걱정 없이 각자 몫을 챙겨갈 정도는 됐다. 그러던 것이 지난 1월 이후 순식간에 '0원'이 됐다.

나씨는 "겨울방학, 여름방학, 추석 연휴기간 등 성수기에 바짝 벌어야 비수기에 수입이 적어져도 버티는데, 지난 1년간 여행업으로는 수입을 전혀 올리지 못했다"고 했다.

지난해 1월 중순까지만 해도 같은 해 5월까지 예약이 꽉 들어찼다. 하지만 전염병 창궐 소식에 1월 말부터 예약 취소가 쏟아졌다. 2~3월은 수입도 없이 항공사와 선사 등에 예약금 넣어둔 것을 회수하고, 예약 손님에게 환불해주는 작업으로 눈코 뜰 새 없었다.

나씨는 "강원도 양양 가는 비행기가 7월부터 뜨면서 국내 상품을 주력으로 물색해봤다"면서 "곧바로 재확산되고 수해까지 터지면서 줄줄이 예약 취소 행렬이 또 이어졌다"고 했다.

폐업할 수도 없어 문을 닫은 채 놔둔 사무실 때문에 임대료는 다달이 나간다. 노후를 위해 남겨뒀던 목돈만 속절없이 나가고 있다.

나씨는 "임대료에 관리비, 세무사비 등 한 달에 50만원씩 사라지는 셈"이라며 "보험료부터 주민세, 사업자등록세까지 앞으로 돈 나갈 일만 널렸다"고 했다.

●구직난에 배달·막노동… 우울증도

나씨는 현재 하남공단에서 하루 3시간씩 한 달에 10일 출근하는 공공일자리에 종사하고 있다. 화장실 변기에 들어가는 부품을 조립·포장하면서 나씨가 한 달에 받는 돈은 27만원 남짓. 세 식구 생활비는 고사하고 관리비·보험료도 내지 못한다.

지난해는 그나마 사정이 나았다. 광주시 희망일자리 사업에 선정돼 초등학교 학습 보조를 하며 배달 아르바이트 등을 병행하며 '투잡·쓰리잡'을 뛴 결과 부부가 한 달에 200만원을 벌어 생활이 가능했다.

나씨는 "올해도 신청했지만 떨어졌다"면서 "사업자가 없거나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은 저소득층 위주로 선발하다 보니 집 있고 사무실 있는 나 같은 사람은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했다.

적지 않은 나이에 기술 훈련은 생각조차 어렵다. 울며 겨자먹기로 몸 쓰는 일에도 나서봤지만 몸만 축날 뿐이었다.

나씨는 "계단을 타고 책상 나르는 일도 했다"면서 "엘리베이터에 흠집이 나면 배상해줘야 한다는 주인의 말에 5층에 있는 스터디카페로 책상을 지고 수없이 오르내렸다. 하루 만에 골병이 들어 며칠 드러누웠다"고 했다.

날이 갈수록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할 일 없이 집에만 있다보니 가족들과 자주 부딪혀 관계도 악화되고, 우울증까지 생겼다.

나씨는 "종종 다른 여행사 사장들을 만나보면 다들 마음이 약해진 것이 느껴진다"면서 "사회에서 도태되고 무너져버린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평생을 바쳐 긍지를 갖고 해왔던 일이 하루아침에 의미없는 일이 돼버린 것만 같다"고 했다.

중소여행사 종사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될 때까지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는 '일자리'다.

나씨는 "집합금지 업종 전환을 통한 재난지원금 확대도 좋지만, 일시적 방편일 뿐이다"면서 "내년도 글렀고, 내후년은 돼야 사무실 먼지를 치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때까지 여행업 종사자들이 최소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일자리를 정부와 지자체가 지원해주는 것이 시급하다"고 했다.

●정부 차원 제도 개선 절실

광주·전남·전북지역 여행업 종사자들이 모인 호남지역여행업비상대책협의회는 지난 1월25일부터 더불어민주당 광주시당사 앞에서 "정부와 국회는 코로나19로 사지에 내몰린 중소여행사에 운영자금을 지원하고 생존권을 보장하라"며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대책위는 △관광진흥개발기금법에 위기재난금 조항 제정 △여행업도 집합 금지 업종에 포함 △관광사업등록증 이전 법규 한시적 완화 △공유 오피스 지원 승인 △2020년 대출금 상환 연장 및 이자 지원 등을 요구하고 있다.

김재호 대책위원장은 "공유오피스 지원은 현재 시에서 추진 중이고, 대출금 상환 연장 및 이자 지원도 1년 늘어났지만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다"면서 "정부는 재난지원금 상향 및 일자리 지원, 각종 기준 완화와 제도 개선을 통해 호남지역 1500여 개에 이르는 여행사의 생존을 보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오선우 기자 sunwoo.oh@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