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적 유전자·박재항> 브랜드 인간- 동사로 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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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적 유전자·박재항> 브랜드 인간- 동사로 말하자
박재항 하바스코리아 전략부문 대표
  • 입력 : 2021. 04.14(수) 15:11
  • 편집에디터
박재항 하바스코리아 전략부문 대표
"자네들이 모두 교수가 될 수도 없고, 그러기를 바라지도 않네. 어떤 직업을 갖더라도 역사학을 배운 자로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교육을 시키는 거야."

전공과목의 첫 번째였던 '동양사학입문' 첫 시간에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공부라고 하면 시험 본 점수와 학점으로 우선 성취 정도를 판단했다. 그리고 대학원을 진학한 친구들을 두고는 누가 먼저 석사 이어서는 박사 학위를 취득했는지. 어느 학교의 전임교원이 되었는지 따졌다. 곳곳 기업에 흩어져서 직장 생활을 시작한 친구들은 서로 월급이 얼마나 되는지 비교하고, 조금 시간이 지나면서는 누가 어떤 직급에 올라갔는지 아니면 머물러 있는지 보면서 점수를 매겼다.

졸업하고 10년 정도가 지나며 뒤처지지 않고 승진도 했고, 브랜드전략이라는 분야에 누구보다 먼저 발을 들여놓고 여러 군데 강의도 하며 잘난 체를 하고 다녔다. 실상 내가 맡은 가장 중요한 광고주 고객의 브랜드전략은 조직의 벽에 막혀 전혀 오랫동안 진척이 없는 상황이었다. 비즈니스의 만병통치처럼 브랜드를 얘기하면서 정작 자신의 일은 하지 못하는 모순적 상황으로 인한 갈등이 어느 날 강의 시간에 내 속에서 폭발했다. 브랜드의 정의나 효용이 무엇인지 나도 모르겠다고 고백을 하고, 어리둥절해 하는 수강생들을 뒤로 하고 나왔다. 강의실 밖으로 나오자마자 학부 때 교수님께서 시대구분에 대해 하신 말씀이 기억났다. 시대를 구분하고 이름 짓는 것과 브랜드를 설정하는 게 별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맞고 틀리고를 떠나 마음이 편안해지고 눈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학부 때 학점 따는 공부는 못했지만, 역사학도로서의 자세, 곧 무엇이 되느냐는 이루지 못했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는 배웠다고 자부했다. 교수님이나 동학(同學)들의 동의 여부는 별도로 하고.

몇 년 전 정년퇴임을 하신 인문학 전공 교수님께서는 "나는 교수가 목표가 아니었어. 공부를 3년 죽으라고 해서 깨우치는 데 진전이 없으면, 딱 집어치우고 학교 앞에 설렁탕 식당을 차리려고 했지. 공부에 정말 재능이 있는 친구들에게는 돈 받지 않으며 운영하려 했지. 그들이 굶지 않고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게." 다행스럽게 그분의 학문에 진전이 있었고, 굶지 않으며 공부에 매달릴 수 있는 형편이 되었다. 논문의 수나 교수 직급, 요즘 같으면 연봉, 수강학생 수와 학생들의 강의 평가 점수라는 기준과는 확실히 다른 것을 그분은 추구하셨다.

꽤 알려진 세 석공의 비유는 그런 차이가 어디에서 연유하는지 보여준다.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거냐고 묻자 첫 번째 석공은 '돌을 부수고 쌓고 있다'라고 했고, 두 번째는 '교회를 짓고 있다'라고, 마지막 세 번째는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고 있다'라고 했다. 세 석공들의 대답을 가지고 '생업, 직업' 천직', 영어로는 'job, career, calling'이라고 분류하여 정의했다. 문자 그대로 '먹고 살기위해', '업계 내 더 높은 사다리에 오르기 위해', '신이 내린 소명을 다하게 위해'로 구분할 수 있다.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중장기적인 목표와 결부하여 생각해야 한다. 의미는 명사 하나로만 정의하지 말고, 뜻을 담아 가급적이면 동사화해야 한다. 벽돌을 하나하나 쌓는 것은 분절된 행동이다. '교회'는 '병원'이나 '관공서'와 같은 부류의 건물을 나타내는 명사일 따름이다. '하느님의 성전(the house of God)'이라 하면 다른 건물과 어떻게 다른지, 그 건물만이 갖는 가치와 의미가 드러난다.

아이들이 꿈을 말할 때 직업이 아닌 행동으로 표현토록 유도하라고 한다. 이를테면 '의사가 될래요'가 아니라 '아픈 사람을 고칠래요', '요리사가 되고 싶어요'보다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줄래요'식으로 하라는 것이다. 내가 무엇이 되고, 어떤 일을 할 것이고, 그러면 준비를 어떻게 할 것인지 더 명확해지고, 동기 부여도 더욱 확실해진다.

'브랜드는 명사가 아닌 동사다'라는 말을 많이 하고 다녔다. '애플은 반역하고, 베네통은 저항하고, IBM은 해결하고, Sony는 혁신한다'라고 설명을 붙였다. 20세기의 얘기라 Sony와 혁신이 짝 지어졌다. 그렇게 말하고, '그럼 삼성은? 현대차는? 동사로 따지면 무엇이지? 무엇 무엇을 '판다'와 '만든다'말고 뭐가 있는가'라는 식으로 말을 이어갔었다. 팔고 만드는 것은 어느 기업이나 기본으로 하는 것이다. 아직도 우리 대다수 기업들에게 특별한 동사는 없다. 세계 1위나 점유율 00%와 같은 명사도 아닌 숫자 목표만 있는 것 아닌가. 동사로, 그것도 나만의 동사로 말하는 법을 익히자.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