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팡이 대신 유모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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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지팡이 대신 유모차
  • 입력 : 2021. 05.13(목) 15:58
  • 이기수 기자
이기수 사진
 농촌 사정에 어두운 도시민이 농촌 마을을 방문할 때 오해할 수 있는 일이 하나 있다. 다름이 아니라 동네 노인들이 유모차(乳母車)를 밀고 가는 모습을 보고 맞벌이하는 자식을 위해 손자 ·손녀를 키워주고 있는가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라는 말이다. 관찰력이 떨어지는 이라도 금방 상황 파악이 가능하다.우선은 유모차에 탄 아이가 없는데다 유모차가 기진맥진 힘겹게 굴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 유모차는 생동감이 넘쳐나야 정상이다.가족 구성원이라는 애틋함과 사랑이 뿜어져 나오기 마련이어서다. 하지만 현재 농촌에서 굴러다니는 유모차는 모는이의 얼굴을 닮아있다. 햇빛에 색이 바랜데다 바퀴도 흔들거려 위태 위태 보이기 십상이어서다. 이처럼 고령으로 무릎과 척추가 온전치 못해 거동이 힘든 노인들이 외출시 유모차를 밀고 보행하고 있는 것이 대세가 된 지 오래다. 과거 외출시 노인 필수품이 지팡이였다면 지금은 유모차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유모차의 높은 효용성 때문이다. 유모차는 두 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밀고 갈 수 있어 안정감을 주는데다 힘에 부칠 경우 이동 중간에 유모차 좌석에 앉아 쉴 수 있는 이점도 있다. 유모차가 의자 역할도 해주고 있는 셈이다. 이런 이유로 요새 농촌 지역 노인이 있는 집마다 유모차 한 두대 정도는 보유하고 있다. 유모차는 원래 어머니가 유아(乳兒)와 유아(幼兒)를 태워서 밀거나 끌고 다니는 이동 수단이다. 생후 3,4개월경부터 사용하는 육아용 필수품이다.한데 농촌에서는 본래 용도가 바뀌었다. 누가 처음 유모차를 보행용으로 사용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단 유추는 할 수 있다. 맞벌이 보편화로 인해 육아가 농촌 어르신 몫이 된 것이 계기가 됐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손자·손녀를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맡길 정도가 될 때까지 키우면서 유모차를 손에 쥐게 됐다. 아이는 자식들에게 다시 돌려보냈지만 쓰임새를 다한 중고유모차는 그대로 농촌 집에 남게 됐을 것이고, 거동이 불편해진 할머니는 어느날 문득 보행 보조수단으로 사용했더니 의외로 편리하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것이다. 이것이 입소문이 나 전국 농촌에 퍼진 것이라고 감히 상상해본다. 유모차는 1848년에 미국의 C.바르턴이 최초로 만들었는데,처음 등장한지 170여만에 한국땅에서 노인들의 보행 보조기구 로 재탄생됐다. 아기 웃음 소리가 그쳤지만 노인보행용유모차가 여기저기서 눈에 띄는 아이러니는 현재 한국 농촌의 슬픈 풍경이다. 이번 어버이날을 보내면서 인간이 똑바로 오래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생각해보게 됐다.이기수 수석논설위원



 

이기수 기자 kisoo.lee@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