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제2의 탄생' 광명한 새 세상 독립하는 사건…성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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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이윤선의 남도인문학>'제2의 탄생' 광명한 새 세상 독립하는 사건…성년식
민족마다 각양각색 통과절차 ||우리는 향교에서 유교식 성년례||남자는 관례…여자는 계례 ||현재는 차별없이 통일해 치르기도
  • 입력 : 2021. 06.03(목) 16:40
  • 편집에디터

성년례 시연 중 들돌들기 연극-광주전통문화관 제공

"나라에 일이 있거나 관가에서 성곽을 쌓게 하면 여러 건장한 젊은이가 모두 등가죽을 뚫어 큰 줄을 꿰고 또 1장(丈) 정도 되는 나무를 매달고 하루 종일 소리를 지르며 힘을 다하여 이를 고통으로 여기지 않고 작업을 독려하며, 또한 이를 강건함으로 여긴다." 근자에 회자되는 마한 풍속 중 하나, <삼국지> 위지동이전에 나오는 기사다. 장(丈)은 한 자(尺)의 열배다. 약 3M에 해당하는 통나무인 셈. <삼국지> '위지 동이전 마한조'는 또 다른 풍속을 보고한다. "많은 사람이 떼 지어 노래 부르고 춤추며 술을 마셔 밤낮을 쉬지 않았다. 그 춤추는 모양은 수십인이 같이 일어나서 서로 따르는 형국인데, 땅을 낮게 혹은 높게 밟되 손과 발이 서로 응하여 그 절주(節奏, 리듬)하는 모양이 마치 중국의 탁무와 같았다." 탁무(鐸舞)는 목탁이나 방울을 들고 추는 군무다. 손에 어떤 악기를 들고 노랫소리와 구령에 맞춰 발을 높이 들었다가 놓기도 하고 행진한다. 강강술래나 농악 등 군무 형식의 민속놀이 기원으로 소환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등가죽을 뚫어 통나무를 달고 소리치는 풍속은 도대체 무엇을 하는 것이었을까? 마치 군대의 구령이나 군가, 혹은 집단으로 일을 할 때 부르는 노동요였을지도 모르겠다. 여러 학자들은 이것이 성년식의 하나였다고 해석한다. 성년식이라니? 이리 혹독한 통과절차를 거쳐야 성년에 이른다는 말인가?

성년식 이야기, 황영애교수(전 성균관 전의). 광주전통문화관 제공

성년에 이르는 길, 등가죽을 뚫거나 '씨압소'를 기르거나

등가죽을 뚫어 나무에 매달거나 수십 개의 창으로 살가죽을 뚫어 행진하기도 하고, 심지어 볼을 뚫어 입안에 창을 가득 꽂기도 하는데, 이런 풍속은 지금도 여러 나라에 남아있다. 나도 중국 소수민족의 축제나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힌두 축제 등 여러 지역 풍속들을 참관하고 공부한 바 있다. 인도에서 남중국에 이르는 아시아 소수민족들의 축제행사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풍경들이다. 대개 종교적 의례로 해석한다. 과격한 살신 행위와 극기를 통해 어떤 영성 혹은 어떤 통과의 절차를 수행하는 것이다. 이를 성년식의 하나로 연행하는 사례도 통과의례라는 점에서는 별반 다르지 않다.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에서 유래한 두굼다니족의 성인식은 나뭇단을 우물정자(井)로 15미터 정도 쌓고 발목에 칡 줄을 묶어 꼭대기에서 점프를 한다. 지상의 어른들이 북을 치고 노래하며 사기를 북돋우는 동안 용감하게 뛰어내리는데 몸이 땅에 닿아서도 안 되고 나뭇가지에 걸려서도 안 된다. 우리의 경우 향교 등에서 유교식 성년례를 치룬다. 남자를 관례(冠禮, 갓을 쓰는 의례) 여자를 계례(笄禮, 비녀를 꼽는 의례)라고 한다. 나이에서 절차까지 남녀 차이가 있다. 다만 지금은 이를 차별이라 여겨 남녀의례절차를 통일하여 치루기도 한다. 민간에서는 들돌 들기 등의 경합을 통해 성년에 이르렀음을 인준받기도 한다. 여수지역에서는 이를 '진세'라고 불렀다. 홍역을 마친 다섯 살 사내아이에게 단옷날 차려주던 축수잔치가 변한 것이다. 홍역이든 들돌 들기든 인생의 한 전환점이라는 맥락은 동일하다. 개경 보부상들은 성년에 이르는 담력을 실천하기 위해 견습사환, 수(首)사환, 차인(差人) 등 3단계를 두어 우수한 인재를 발굴했다. 차인은 주인이 자본을 대고 사업운영은 전문 경영인(差人)에게 맡기는 경영시스템이다. 이것이 '송도사개치부법'으로 발현되었다. 우리나라 상인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강진의 병영상인이라고 달랐겠는가. 견습사환과 수사환들은 차인의 단계에 이르기까지 목숨 걸고 실적을 높이며 책임경영을 위한 다양한 방식들을 연마하지 않았겠는가. 올 초 본 지면을 통해 우리나라 씨압소 전통을 소개했던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소년이 열네 살이 되면 송아지 한 마리를 분배받는다. 어미소가 되기까지 2년 정도 열심히 키우면 새끼를 낳게 된다. 어미소는 주인에게 돌려주고 송아지를 갖는다. 한 푼 없던 가난한 소년은 2년의 노력으로 자립할 수 있게 된다. 이 나이가 열여섯이다. 혼인 할 수 있고 경제적으로 자립 할 수 있으며 온품삯을 받을 수 있다. 성년에 이르는 과정이요 의례며 기점이다. 내가 청년창업 무상지원 등의 '배냇소 정책'을 제안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계례 시연 중 초가례(계자가 계빈께 절). 광주전통문화관 제공

통과의례 성년식, 넘어야 할 아리랑고개

통과의례 혹은 일생의례의 대칭적인 기점이 세시의례다. 태양이 황도를 순환하는 1년이라는 시간을 분절하여 각각의 중요한 마디(節)에 이름(名)을 붙인 것이 명절(名節)이라는 점, 본 지면을 통해 여러 차례 소개했다. 통과의례는 문화권에 따라 일생의례 관혼상제 등으로 호명한다. 나고 성장하고 혼인하고 죽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의 기점을 의례로 이해하는 방식이다. 유교식 성년의례는 사례편람에 준하기 때문에 출생의례가 빠지고 성년의례(관례, 계례), 혼례, 상례, 제례를 중심에 둔다. 출생의례는 어머니로부터 한 사람의 개체가 독립하는 사건이다. 열 달 동안 아버지의 정기 받아 어머니 뱃속을 유영하다 이내 탯줄을 끊고 개체로 분리되는 사건이다. 가임의 생물학적 기점이야 명료하지만 그 생명의 기운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도 태고의 어느 시기 선한 기운들이 생동하여 음과 양으로 분화되었다가 고귀한 생명으로 모이는 것이리라. 성인 남자와 여자가 만나 더불어 독립하는 혼인도 그러하다. 육갑(六甲) 돌아 시간의 첫마디에 다시 서는 것을 회갑(回甲)이라 이름 짓는 일도 그러하다. 죽을병에 걸렸다가 회생하는 경우도 그러하다. 우리 민족이 애창했던 아리랑, 그 노랫말마다 등장하는 문경고개 또한 다르지 않다. 사시의 마디마디가 그렇고 밀물과 썰물의 교차와 계절 바꾸어 흐르는 해류의 흐름이 그러하다. 성년이 된다는 것은 이 순환의 의미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이 지난한 고개를 넘는 일이다. 제2의 탄생이다. 이전의 것들에 기댄 탯줄을 과감하게 자르고 광명한 새 세상으로 독립하는 사건이다.

관례 시연 중 좨주(술내림)의례. 광주전통문화관 제공

남도인문학팁

철부지, 소는 언제 키우나

철은 사시사철의 준말이다. 사계의 순환이요 썰물 밀물의 조류와 계절 바꾸어 도도히 흐르는 해류의 순환이다. 천지순환의 역리와 일생순환의 이치다. 알맞은 때, 어떤 일을 하기에 좋은 시기라는 뜻이다. 이를 모르는 것을 철부지(不知)라 한다. 우주순환의 역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일생의 과정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언제 씨를 뿌리고 언제 김매기를 하며 언제 수확을 해야 할지 모른다. 홍역을 거치지 않으면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여수지역에서 말하는 '진세놀이'의 행간도 그러하다. 성년식을 마치거나 성년을 앞둔 이 땅의 청년들에게 김대중 대통령 말씀을 전해드린다. 성공하는 인생을 위해서는 서생(書生)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을 가져야 한다. 원칙을 중시하고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따지는 철학의 실천이 서생의 문제의식이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마당에 비가와도 널어둔 곡식을 거둘 줄 모르고 공자왈맹자왈만 외는 쪽방 선비가 되어 버린다. 상인의 현실감각을 주문하는 이유다. 전자가 이상의 세계라면 후자는 현실의 세계다. 이상에 치중하면 사릿발 들물인데도 노저어 나가려 하고 개옹 드러난 조간대의 시간을 기다릴 줄 모른다. 상인의 현실만 강조하면 배부른 돼지가 될 수도 있다. 조화가 필요하다. 국가는 이 땅의 청년들에게 무상의 씨압소를 나누어 주는 것이 의무다. 청년들은 고군분투 이 소를 잘 기르는 일이 의무다. 그래야 철든 성년이 된다.

관례 시연. 광주전통문화관 제공

광주전통문화관 무등풍류뎐 성인례 시연. 광주전통문화관 제공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