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일광장·정연권> 김보경·김슬지, 구례 우리밀을 사랑하는 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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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칼럼
전일광장·정연권> 김보경·김슬지, 구례 우리밀을 사랑하는 청년들
정연권 구례군도시재생지원센터장
  • 입력 : 2021. 06.24(목) 13:20
  • 편집에디터
정연권 구례군도시재생지원센터장
구례들판이 황금빛으로 일렁거린다. 보기만 해도 풍요롭다. 구례는 두번 황금들판이 열린다. 오월에는 우리밀이요 시월에는 벼가 익어가기 때문이다. 우리밀 수확이 끝나고 모내기도 마무리 돼간다. 줄지어 심어진 벼 포기가 초록호수로 변했다. 밀밭 가장자리 몇 개 남은 밀 이삭을 손으로 비벼봤다. 잘 영글었다. 밀알을 입에 넣고 씹었다. 밀 속 글루텐이 씹히면서 추억의 맛이 느껴진다. 햇밀을 밀어 만든 폿국시, 콩물 갈아 넣은 콩국시, 김치고명을 얹은 잔치국시가 그립다. 누런 찐빵, 파전에 막걸리도 마시고 싶다.

우리 밀은 거칠고 투박하지만 구수한 맛을 낸다. 반면 수입 밀은 글루텐 함량이 높아 쫀득쫀득 하며 부드럽고 세련된 맛이다. 밀가루 단백질 주성분인 글루텐이 분해되면서 생성된 '폴리펩티드(polypeptide)'가 중추신경계에 환각제와 비슷한 작용을 하며 자꾸만 먹고 싶게 만든다고 한다.

1984년 정부는 밀 수매를 중단했다. 값싼 수입 밀에 밀려 우리 밀이 설자리를 잃었다. 자취를 감췄던 우리 밀을 1990년 최성호 회장의 주도로 참여한 농부들이 살려냈다. 구례는 우리밀 제분공장이 있는 주산지다. 제과점, 우리밀 수제비 등 음식점도 많다. '목월빵집', '느긋한 쌀빵', '쑥부쟁이 머핀', '굿베리 베이커리' 등.

구례에서만 접할 수 있는 로컬 제과점이 많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곳도 있다. 그 중 20대 청년들이 운영하는 제과점을 들러봤다.

읍내에 자리한 '사나래밀' 제과점이다. 젊은 주인장 김보경씨가 반갑게 맞는다. 당차고 강단진 모습이다. 중학교 때부터 꿈꿔온 일을 하게 됐다고 한다. 자신감과 신념이 엿보인다. 간판도 없이 작게 써진 상호인 '사나래밀'이 무슨 뜻인지 물었다. '지리산 아래 밀'을 발음나는대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센스있는 작명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상호에 우리 밀을 함축하고 구례 이미지를 담을 수 있다는데 감동이 밀려온다. "간판을 크게 하면 좋겠다"고 했더니 "간판을 크게 걸고 유혹하는 상술에서 벗어나 맛으로 승부를 걸겠다"고 한다. 맛을 보았다. 첫 입은 심심하다. "뭐야 맹맹한데…." 그러나 반전이 일어났다. 두 입부터 새로운 맛이다. 담백하며 고소하다. 편안한 맛이다. 그렇다. 필자도 상업화된 맛에 길들어 졌던가보다. 우리 밀을 사용하느냐고 물으니 "구례농부가 생산한 앉은뱅이 밀을 쓴다"고 한다. 또 한 번 놀랐다. 앉은뱅이 밀까지 알고 사용 한다니. 앉은뱅이 밀은 초장이 작아 거센 바람에도 쓰러지지 않고 병해충에 강하다. 일반 밀가루에 비해 단백질 함량이 낮아 소화가 잘되며 특유의 향이 강한 토종밀이다. "가격이 비싸 경영에 어려움이 있지 않는가?" "부모님 집이라 월세가 없어요" 토종밀 등으로 맛있는 제품을 만들어 보겠다며 넉넉한 웃음을 짓는다.

구례 합명 주조장 옆 제과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주인장은 김슬지씨다. 인상이 부드럽고 목소리까지 정겹다. '이스트베이크 샵'은 작지만 아기자기 하고 정갈하다. "이스트가 빵의 발효제를 의미하는가?" "구례 봉동리 동쪽을 의미해요". 고향사랑의 당당함에 저절로 신뢰감이 간다. 맛을 보았다. 역시 우리가 알던 맛이 아닌 새로운 맛으로 신선함이 묻어난다. '당일 생산, 당일 판매' 원칙을 고수하며 산수유 등 구례농산물을 이용한 상품을 만들기 위해 연구개발하고 있다.

두 제과점 대표는 청년1인 창업으로 혼자 운영하고 있었다. 구례에서 시작된 우리밀 살리기 운동, 청년들의 창업, 섬진강 다슬기 수제비 등이 어떻게 출발했는 지 궁금했다. 기원을 찾아봤다.

화엄사 각황전(覺皇殿) 중건 전설에 주목했다. '각황(覺皇)은 부처님 별칭'이다. 정유재란 때 소실됐던 장육전(丈六殿) 중건을 위해 기도를 올리고 스님들은 손을 씻은 후 밀가루가 들어 있는 항아리에서 엿을 꺼내도록 했다. 손에 밀가루가 묻지 않는 스님이 화주승의 중책을 맡기로 했다. 계파스님만 밀가루가 묻지 않았다. 다음 날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시주를 청하라는 부처님 말씀에 따라 노인에게 시주를 청했다. 시주를 요청받은 노인이 소(沼)에 몸을 던져 공주로 환생해 왕을 감동시키고 깨우쳐 전각을 중건하게 했다는 전설이다. 기적이 일어나게 한 주역은 밀가루였다.

구례군 도시재생사업에 우리밀로 만든 먹거리를 준비하고 있다. 박인환 전 전남도 의장이 골목길에 빵 거리를 만들어 보라는 조언이 고맙고 감사하다. 골목길에 청년가게가 번창하면 생기가 돌 터다. 우리 밀 판매가 잘되면 농부는 흥이 나고 농촌에 큰 보탬되길 기원한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