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산동교 인근서 총살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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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아버지는 산동교 인근서 총살당했습니다"
80대 아들, 처형지 첫 증언 ||학생운동 주역 불구 좌익 몰려 ||산동교 인근서 6·25때 총살 ||수십년간 사망장소 관련 논란 ||내달 5일 장재성 추모제 개최
  • 입력 : 2021. 06.22(화) 16:51
  • 양가람 기자
22일 오전 장재성 선생의 처형지로 밝혀진 광주 북구 운암동 아파트단지 내 부지에서 장재성기념사업회 관계자들이 헌화 후 묵념하고 있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주역이었지만, 좌익으로 몰려 한국전쟁 당시 총살당한 잊혀진 영웅 '고 장재성 선생'의 사망 장소가 산동교 인근 야산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22일 장재성기념사업회에 따르면, 지난 5월 장재성 선생의 아들 장상백(81) 씨는 황광우 장재성기념사업회 운영위원장을 만나 아버지의 처형지가 산동교 인근 야산(현 운암동 일대)이었음을 증언했다.

장 선생은 1926년 비밀결사 조직인 성진회를 결성해 일제에 저항하다 체포됐으며 1929년 독서회를 조직해 활동을 이어갔다. 1929년 투쟁본부를 조직, 광주학생독립운동을 3·1운동 이후 최대의 민족운동으로 확산시켰다.

해방 이후엔 남북대표자연석회의 준비를 위해 월북했다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광주형무소에 수감됐고, 한국전쟁 발발 직후 시국사범으로 몰려 총살당했다.

그동안 역사학계는 장 선생이 무등산 인근에서 처형된 것으로 추정해 왔다. 장재성기념사업회 측이 아들 장씨의 증언을 토대로 확인한 결과, 장재성 선생은 광주형무소 복역 중 헌병들에 의해 군용 트럭에 실려 산동교 인근 야산으로 끌려와 총살당했다.

당시 장 선생과 같은 장소에서 총살 당한 이들 가운데는 보도연맹 사건으로 희생당한 이덕우 변호사도 있었다.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조사 위원회'의 자료에도 '1950년 7월5일 광주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던 좌익 사범들을 헌병들이 군용 트럭에 실어 산동교 인근에서 처형했다'고 나와있다.

당시 '수많은 총소리를 들었다'는 인근 주민들의 증언도 여럿 확보된 상태다.

박동기 남녘현대사연구소 소장은 "1950년 7월4일 이승만 정부의 공문이 내려온 이후, 매일 50~100명씩 트럭에 실려온 수감자들이 이 곳(산동교 인근 야산)에서 총살 당했다"면서 "형량이 높은 이들부터 처형당했는데,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은 장재성 선생이 처형 대상 1호였다. 헌병들은 수감자들더러 직접 땅을 파라고 지시한 뒤 총을 쏴 죽이고 그곳에 파묻었다. 흙무더기를 덮는 데는 동네 사람들도 동원됐다"고 설명했다.

7월5일 처형 당한 장 선생 시체는 27일 수습됐다. 당시 10살이었던 아들 장씨는 500구 가까이 되는 시체 더미 속에서 신원을 분별하기 힘들 만큼 심하게 부패된 부친의 주검을 찾기 어려웠다고 증언했다.

아들 장씨가 부친 사후 70여년 만에야 이같이 증언한 이유는 오래도록 앓아온 '빨갱이 트라우마' 탓이다.

황광우 운영위원장은 "장씨는 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마다 광주 금동에서 운암동까지 자전거를 타고 와 처형지를 방문했다고 한다"면서 "하지만 아버지가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주역이었음에도 좌익 사범으로 몰려 옥고를 치르고, 사후에도 빨갱이로 지탄 받는 모습을 보며 사람에 대한, 세상에 대한 불신이 생겼다. 최근에야 추모제, 서훈 추진 등 부친을 기억하는 움직임이 보이니 입을 여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전쟁 당시 5사단 20연대 헌병대 5중대는 오가는 사람이 적고 한산한 산동교 인근 야산을 집단 학살 장소로 선택했다. 현재 해당 장소에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집단 학살의 흔적은 찾아 볼 수 없다.

기념사업회 관계자들은 수많은 이들이 불법 처형당한 역사가 깃든 만큼 작게나마 기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현재 해당 부지가 시민들이 거주하는 사유지인 만큼, 시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장재성 선생 추모제가 내달 5일 오전11시 광주제일고 대강당에서 열린다. 장재성 기념사업회가 주관해 올해로 두 번째 열리는 추모제는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 헌화 △장재성 선생 흉상 헌화 △극단 토박이의 추모 연극 등으로 꾸며져 장재성 선생의 정신을 기린다.

양가람 기자 lotus@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