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있는 삶'과 52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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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저녁이 있는 삶'과 52시간
곽지혜 경제부 기자
  • 입력 : 2021. 07.19(월) 17:01
  • 곽지혜 기자
곽지혜 경제부 기자
'저녁이 있는 삶'

10여년 전, 한 정당의 대선후보 경선에 나선 후보자의 캐치프레이즈는 이제 대한민국 노동시간 단축과 워라벨 사회를 대표하는 문구가 됐다.

하지만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이 점차 그 범위를 늘려가면서 '저녁이 있는 삶'에 대한 의미까지 모호해지는 분위기다.

최근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되면서 중소기업과 영세 소상공인을 중심으로 논란이 거세다.

이들의 말에 따르면 저녁이 있는 삶은 차치하고 생계 자체가 수렁에 빠지고 있다.

특히 제조, 생산 등 뿌리산업으로 불리는 업종의 경우 근무시간을 맞추기 위해서는 인력 수급이 필수적인데, 현재 임금체계나 산업 구조상으로는 그만한 인력을 절대 대체할 수 없고 오히려 편법과 불법만이 판칠 것이라는 전망이다.

현장에서는 다가올 대선을 앞두고 어떻게든 방법이 있겠지, 선심성 정책이 나오겠지 하며 대책을 세우기보다는 그저 버티고, 견뎌보자는 분위기다.

광주지역에서 제조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한 대표는 실제로 "지금 저희 같은 중소기업이 대책이라고 찾고 있는 것은 불법적인 아웃소싱이다. 말그대로 지금 직원들을 52시간 적용이 안된 5인 미만으로 내보내서 개인사업자 등록을 하게 하고 하던 일을 계속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덩달아 노동자들은 근무시간 단축으로 줄어들 임금에 대해 한숨을 내쉰다. 특근과 야근 수당 등으로 기본급의 2배 이상을 벌어들이던 노동자들에게 주 52시간제 도입은 그저 생계를 위협하는 정책일 뿐이다.

반면, 여전히 장시간 노동이나 열악한 근로 환경으로 인한 산업재해는 꾸준히 발생하고 있고, 고통을 호소하는 50인 미만의 사업장 역시 산재 피해에 차지하는 비율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세계에서 노동시간이 가장 긴 국가 중 하나다.

애당초 노와 사는 서로 양립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졌다. 하지만 공통된 입장은 주 52시간제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 산업 현장에는 업종별, 사업 규모별로 보다 세심한 정책과 대안이 필요한 것이다.

또 쉽지 않겠지만 단가 적용이나 임금률 등 오랜기간 고수해왔던 산업 생태계의 모순점도 하나씩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언론 역시 어느 한쪽이 더 유리하다, 불리하다를 따지고 싸움을 부추길 것이 아니라 서로의 입장을 헤아려 더 나은 대안을 찾고, 보다 공정한 조직과 사회를 구축할 수 있도록 하는 대화창구 역할을 해야 할 시기이다.





곽지혜 기자 jihye.kwa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