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커뮤니티매핑의 모든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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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커뮤니티매핑의 모든것
  • 입력 : 2021. 07.22(목) 14:33
  • 박상지 기자

지난 2012년 미국을 강타한 허리케인 샌디로 인해 뉴욕 퀸즈 버로우가 물에 잠겨있다. 허리케인 샌디는 미국 동부 해안에 영향을 준 가장 강력한 폭풍 중 하나였다. AP/뉴시스

세상과 나를 바꾸는 지도, 커뮤니티매핑

임완수 | 빨간소금 | 1만5000원

2012년에 허리케인 샌디가 미국 동북부를 강타했을 때 뉴욕과 뉴저지 지역의 70~80퍼센트가 정전되었고, 도로 등 많은 기반시설이 파괴되었다. 각 가정에 전기가 끊겨 히터를 틀 수 없었고, 비상용 발전기를 가동할 수 있는 기름조차 구할 수 없었다. 쓰러진 나무와 전봇대 그리고 허리케인으로 도로가 막혀 많은 주유소가 기름을 공급받지 못했다. 주유소에 기름이 있더라도 정전으로 주유소 장비를 작동시킬 수 없었다. 허리케인이 지나간 후 많은 시민들은 기름을 판매하는 주유소를 찾다가 자동차 기름이 떨어져 결국 차를 길가에 세워두기도 했다. 주유소는 기다리는 사람들로 긴 줄이 생기고, 기름을 살 수 있을지 없을지 몰라 주민 간에 많은 갈등과 충돌이 생겼다. 이런 폭력과 혼란을 우려해서 중무장한 경찰과 군인들이 주유소를

지키는 일이 벌어졌다. 질서를 다잡으려면 주민들이 제대로 된 주유소 정보를 알아야 했다. 어느 주유소에서 기름을 파는지, 늘어선 줄이 얼마나 되는지, 언제 주유소를 다시 여는지. 저자와 고등학생들은 바로 그 자리에서 노트북을 펴고 주유소에 전화를 걸어 지도 위에 데이터를 올리기 시작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주민들이 데이터를 제공해주었다. 비전문가들이 발품 파는 것으로도 충분히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이 온라인 지도는 시민들에게 매우 유용한 정보를 제공했다. 그뿐 아니라 미국연방재난관리국, 에너지국, 국방부, 백악관, 구글 크라이시스맵, 뉴욕시 등에서는 이 정보를 실시간으로 그들의 웹사이트에 접목해서 사용했다. 커뮤니티매핑 기법을 통해 정부기관이 가지고 있는 공공데이터의 한계를 어떻게 보완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온라인 지도가 공개되고 컴퓨터뿐 아니라 스마트폰을 사용해 여러 사람이 동시에 움직이면서, 정보를 수집하고 공유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기술의 발달로 커뮤니티매핑의 개념이 더 잘 정리되었고, 동시에 활성화되었다. 커뮤니티매핑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위치 기반의 정보시스템 및 웹과 모바일 기반의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가능해진 지리정보 기반의 지식 공유 방법으로, 집단지성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선한 가치의 실현이다. 허리케인 샌디로 인해 기름을 구하지 못해 소외된 시민들에게 학생들이 수집한 주유소 정보는 생존에 가까운 역할을 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지도는 더 멀리 퍼져 나가 그 힘을 발휘했다.

커뮤니티매핑(Community Mapping)은 말 그대로 '공동체 지도 만들기'다. 신간 '커뮤니티매핑'의 저자 임완수는 흔히 '커뮤니팅매핑의 선구자'로 불린다. 2005년 그가 집단지성을 이용해 만든 '뉴욕 화장실 온라인 지도'는 커뮤니티매핑의 선구적 모형으로 꼽힌다. 이 활동은 '더뉴요커', '뉴욕타임스',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 소개되는 등 화제를 모았다. 또한 2012년 미국 동북부를 강타한 허리케인 샌디 때 고등학생들과 함께 만든 '주유소 지도'는 미국연방재난관리국, 구글, 뉴욕시, 백악관에서 사용했을 정도로 영향력이 컸다. 2013년 한국에 커뮤니티매핑센터를 설립해 GKL 독립운동 순례길 커뮤니티매핑, 코로나 마스크 지도, 폭설 및 지진 지도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 책에는 임완수 교수가 그동안 시민들과 함께 연구하고 개발해온 커뮤니티매핑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커뮤니티매핑에 관한 최초의 온전한 교과서라 할 수 있다. 1부와 2부는 커뮤니티매핑의 정의와 작동 원리 같은 기본 지식을, 3부와 4부는 위치 기반 지리정보시스템(GIS)과 공공 데이터 활용 등 좀 더 깊은 이야기를 다룬다.

커뮤니티매핑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는 '함께'이다. 따라서 '과정의 조직화'가 중요하다. 커뮤니티에는 함께 행동한다는 뜻이 숨어 있다. 따라서 공동체 지도라는 말로는 약간 부족한 면이 있어서 커뮤니티매핑이라는 영어를 쓴다. 한국어로 굳이 바꾼다면 '함께 만드는 공동체 지도' 정도가 어울리겠다. 이 책은 최근 벌어지는 커뮤니티매핑 활동이 자칫 놓치기 쉬운 본연의 가치를 생생한 사례를 통해 일깨운다.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