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내가 만만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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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쌀, 내가 만만하니?
  • 입력 : 2021. 09.14(화) 16:02
  • 이용규 기자
쌀에 대한 어린 시절의 기억은 천연색 사진처럼 선명하게 각인돼있다. 집에서 농사를 짓지 않아 쌀을 팔아 먹었다. 쌀 가게에 갈때마다 짚으로 짠 널찍한 망태안에 수북하게 담긴 하얀 쌀은 '생명의 양식'이라는 생각에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그 기쁨도 잠시 쌀가게 주인이 됫박안의 쌀을 둥근 밀대로 평평하게 깍을때마다 부풀어진 풍선이 김빠지는 것처럼 이내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쌀은 지금도 나에게 귀하게 다가오는 대상이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쌀에 대한 인식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연중 1인당 쌀 소비가 60㎏도 안돼 농사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고는 하나, 논에 아파트, 공장, 태양광 시설이 들어서는 것을 보면 마음이 불편하다. 우리나라는 73만2000㏊에서 벼를 재배해 연 370만톤의 쌀을 생산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잦은 강우로 쌀 수확이 350만톤에 그쳤고, 쌀재고는 10만톤 정도 불과한 상태다. 유엔식량농업기구가 권장하는 80만톤에는 턱없는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쌀 소비 둔화로 걱정이나 세상은 그렇지 않다. 유엔식량농업기구가 발표 자료에 따르면 세계인의 7명 중 1명이 배를 곯고 있다. 북한의 경우 700만명이 기아에 시달리고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결식 아동이 30만명, 결식노인과 노숙자를 합쳐서 30만명 등 총 60만명이 끼니를 걱정해야할 판이다. 우리 내부에서도 배를 곯는 사람들이 있는데, 쌀 소비가 줄어든다고 농지를 없애는 것은 한참 잘못됐다. 우리나라 경지 면적은 지난 10년동안 여의도 면적의 20배 정도가 감소된 것으로 나타났다.

필리핀은 1970년대 세계에서 쌀을 제일 많이 생산하는 나라였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은 세계 최대 쌀 수입국이다. 필리핀 정부가 태국이나 베트남에 비해 쌀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자 수입 정책으로 전환, 농업투자를 줄인 결과였다. 투자를 줄이니까 농촌 소득이 줄고 농촌 소득이 줄어드니 농민들은 도회지로 나가고, 이농을 하니 논밭이 황폐화됐다. 인도·베트남·이집트는 쌀수출을 금지하고, 중국은 수출용 쌀에 최고 25%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농경지를 줄이고 쌀을 애물단지로 취급하는 현실과는 대조적이다. 실질적으로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률은 사료 식물을 포함해 20%정도다. 어찌보면 정치인과 관료들의 농지법 위반이 많은 상황을 감안하면 농지가 생명 창고라는 인식은 수사에 그치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기후위기 시대에 불안정한 식량 생산은 현실화됐고 농업투자를 늘리지 않고 식량증산에 노력하지 않는다면 이에 따른 반작용은 불가피하다. 그런데 대통령 선거에 나선 후보들에게서도 쌀을 비롯한 농업에 대한 비전을 찾아볼 수 없다. 대선 공약에서 쌀을 비롯한 농업 정책의 실종이다. 오히려 유휴농지에 공장을 짓고 주택문제 해결을 위한 용지로 활용하겠다는 공약이 줄을 잇는다. 참 딱하다. 이용규 논설실장



이용규 기자 yonggyu.lee@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