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폭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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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폭탄
이용규 논설실장
  • 입력 : 2021. 10.12(화) 14:26
  • 이용규 기자
이용규 논설실장
베트남 전쟁의 영웅이자 6선 상원의원을 지낸 맥케인은 미국 대통령 선거 후보였다. 그는 지난 2008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 민주당 버락 오바마 후보와 대결했다. 오바마는 선거 기간 맥케인(McCain)을 맥세임(McSame)으로 불렀다. 맥(Mc)은 맥케인, 세임(Same)은 같다는 뜻으로 전직 대통령 조지 부시와 한통속이라는 의미로 공격했다. 맥케인이 대통령이 되면 부시처럼 전쟁을 계속하고 경제도 엉망진창이 된다는 인신 공격성 발언이었다. 맥케인에게는 막말이 됐고, 오바마가 미국 역사상 첫 흑인으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대선 정국 한복판에서 정치판이 막말로 여간 혼란스럽다. 여야를 넘어 같은 정당안에서도 경쟁자를 제압하기 위해 더욱 거칠어지는 양상이다. 정치권의 핫이슈를 반영하듯 대장동 논란을 놓고 이재명 경기지사와 이준석 대표의 한판은 치열했다.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되기 전인 지난 달 29일 이재명 지사는 자신을 화천대유의 몸통이라고 말하는 국민의힘 지도부를 향해 "이준석대표는 봉고파직하고, 김기현 원내대표는 봉고파직에 더해 남극에 위리안치를 시키도록 하겠다"고 직격했다. 이에 이 대표는 "이 지사가 입이 험한 것은 주지의 사실인데, 저는 비례의 원칙으로만 대응하겠다"라며 "이 지사의 추악한 가면을 확 찢어놓겠다"고 반격했다.

봉고는 암행어사가 지방 관리의 비위사실을 적발한 뒤 관서의 창고를 봉하는 조치다. 증거 보존을 위한 조치나 당사자의 직위해제를 상징했다. 비위 혐의에 대한 재판 결과에 따라 유배, 위리안치 등의 조치가 뒤따랐다. 위리안치는 유배된 죄인이 달아나지 못하게 집 둘레에 가시로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 가두는 것이다.

4명으로 압축된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간에도 서로 치고 받기는 예외가 아니다. 그동안 토론회를 거치는 과정에서 윤석열후보와 유승민후보간 주술 논쟁과 막말에 이은 감정싸움은 아슬아슬하다. 이 틈새를 파고드는 홍준표 후보는 경쟁 주자들에게 "쥐어 팰수도 없고", "그렇게 유약해서야", "가만히 있어봐" 등 듣기에도 민망한 말들을 쏟아내고 있다. 막말은 그 특성상 더욱 막가게 돼 있다. 상호간에 장군멍군을 거듭하며 그 과정에서 더욱 자극적 표현이 등장한다. 비전 경쟁은 뒤로 한 채 정치인이 내뱉는 독설은 사이다처럼 지지자와 진영간 구성원들에게 통쾌할 수 있겠지만 공존을 부정하는 가해행위다. 정치인의 말한마디는 매우 조심스러워야 한다. 화가 나도 할말이 있고 해선 안될말이 있다. 내 맘에 들지 않는 말을 한다고 거친 말을 쏟아내는 것은, 논쟁을 넘어 상대의 존재를 부정하는 폭력이다. 국민들을 현혹하기 위해 교언영색의 말과 자극적인 억지와 주장을 봉고파직해 위리안치할 때이다. 이용규 논설실장

이용규 기자 yonggyu.lee@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