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아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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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아름다운 '아너'
  • 입력 : 2021. 11.21(일) 16:52
  • 이용환 기자
이용환 문화체육부장
2008년 5월 어느 날,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척추장애인이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찾아와 1억 원을 내놨다. 군 복무 중, 타고 가던 차가 절벽에서 굴러 하반신이 마비됐다는 그는 지금까지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억척스럽게 돈을 모았다. 20년 넘은 양복 한벌로 4계절을 사는 근검 절약도 몸에 배었다. 아들에게 사업을 물려준 뒤 한숨 돌리나 싶었는데 이번에는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꼬박 하룻동안 사경을 헤맨 끝에 겨우 깨어난 그는 '혼자만 잘사는 것이 결코 성공한 인생이 아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아너소사이어티 전국 1호 남한봉 씨 얘기다.

아너소사이어티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랑의열매에 1억원 이상을 기부하거나 약정한 사람들의 모임이다. 우리 사회의 전통인 나눔의 정신을 현대에 맞게 되살린 한국형 노블레스 오블리주인 셈이다. 회원은 지난 2008년 1호가 가입한 뒤, 지난 6월 30일 기준으로 전국에서 2662명으로 늘어났다. 누적약정금액은 2874억여 원에 이른다. 지난 2013년에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 회원이 익명으로 29억여 원을 기부했다. 2008년 8명, 2009년 11명이던 가입자도 올해 151명으로 증가했다. 사회가 그만큼 성숙해진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모두 부자인 것만은 아니다. 경남 통영에서 젓갈 가게를 운영하는 김정리 할머니는 2001년 막내아들이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보상금으로 지급된 2억5500만 원을 전액 모금회에 기부했다. 서울 한성대학교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는 김방락씨는 경비원 월급을 매달 모아 1억 원을 내놨다. 부산에서 돼지국밥집을 운영하는 박달흠씨, 제주에서 고깃집을 하는 정형철씨, 춘천에서 닭갈비를 파는 김형우씨 등도 넉넉지 않은 돈을 쪼개 나눔에 동참하고 있다.

희망 2022, 사랑의 온도탑 제막을 앞두고 광주·전남지역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 크게 늘어났다고 한다. 특히 전남의 경우 지난해 12명이던 아너 회원이 올해 21명으로 증가했다. 이웃과 희망을 나누겠다는 '선한 영향력'의 힘이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김상균 사무총장의 신념은 '서민의 기부는 나라를 아름답게 하고 부자의 기부는 나라의 운명을 바꾼다'는 것이다. 뭔가 비정상으로 흘러가는 대선정국에다 여전히 기승인 코로나에 불황까지,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상황에서도 뭔가를 나누려는 '아너'들의 아름다운 마음이 대한민국의 희망이 되고 있다. 문화체육부장

이용환 기자 yhlee@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