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일가족 사망에 존속·비속살해 형평성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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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사고
반복되는 일가족 사망에 존속·비속살해 형평성 논란
담양서 신변 비관에 노모·10대 아들과 극단적 선택||자식 소유물로 보는 부모 늘어… 가중처벌 받지 않아||전통적 효 관념 반영… “비속살해도 같은 규정 적용해야”
  • 입력 : 2021. 11.14(일) 17:32
  • 양가람 기자
경찰 마크.
부모가 자녀와 함께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가운데, 부모가 자녀를 살해하는 비속살해와 자녀가 부모를 살해하는 존속살해 간 형량을 놓고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 전통적 효 사상이 반영된 존속살해 형량에 대한 위헌성이 강조되면서 비속에 대해서도 가중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14일 담양경찰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8분께 담양군 창평면 한 주차장에 주차된 차량 인근에서 A(48)씨가, 차량 내부에서 A씨의 어머니(80)와 초등학생 10대 아들이 숨진 채 발견됐다.

'결혼 실패' 등을 이유로 심적 괴로움을 호소해 온 A씨는 모친과 아들을 먼저 차에 태워 세상을 등지게 한 뒤, 본인도 뒤따라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날 오전 6시44분께 'A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암시하는 문자를 남겼다'는 가족의 신고를 받고, 휴대전화 위치 추적 등 수색 작업을 벌였다.

경찰은 목격자와 가족 등을 상대로 구체적인 사건 경위를 조사 중이다.

지난 2014년 서울대 법의학교실에서 발표된 논문 '한국의 존속살해와 자식살해 분석'에 따르면 2006년 1월부터 2013년 3월까지 국내에서 부모에 의한 자녀 살해가 총 230건 발생했다. 해마다 30∼39건 수준이다.

또 자녀를 살해한 부모의 46%가 자신도 목숨을 끊었고, 비속살해 사건의 56%가 경제적인 문제나 우울증 때문에 발생했다.

현행 법은 존속(尊屬)을 대상으로 한 범죄를 가중처벌하고 있다. 형법 제250조 2항(존속살해죄)은 '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제250조 1항(살인죄) '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보다 무거운 형량이다.

이는 부모나 조부모를 살해하는 잔혹한 패륜 범죄를 엄하게 처벌하려는 취지다.

반면 자녀, 즉 비속(卑屬)에 대한 범행을 가중처벌하는 규정은 형법에서 찾아볼 수 없다.

형법 제251조에서 영아살해죄를 묻긴 하지만, 최고 형량이 징역 10년으로 존속살해(7년 이상)보다 가볍다.

지난 2월 '아동을 학대하고 살해한 경우 사형이나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의 '아동학대범죄처벌 특례법 개정안'(정인이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아동이 아닌 성인 자녀 등을 대상으로 한 비속 범죄에는 여전히 일반 살인죄만 적용된다는 한계가 남는다.

이에 존속살해에 가중처벌 조항을 폐지하거나 비속범죄에도 똑같은 수준의 처벌 규정을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법률전문가는 "우리나라에선 자식의 패륜을 심각한 문제로 보는 것에 비해 부모가 자식에 저지르는 범죄는 체벌·훈육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며 "존속살해죄는 우리 사회의 효를 강조하는 유교적 관념 및 패륜성에 비추어 강하게 처벌하고 있다. 반면 보호하고 교양해야 할 직계비속을 살해하는 경우에는 별다른 가중처벌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봉건적 윤리관념에 기반한 것으로 존속과 비속 간의 지배·복종 관계에 기반한 권위주의적인 관점"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구성원 모두가 인격적 존중을 받는 민주적인 가족관계를 위해서라도 자녀 대상 범죄에 대해서도 가중처벌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비속살해의 처벌 강화가 능사는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비속살해가 부모의 상황이나 가정 환경 등 특수한 환경에서 발생하는 경향이 있는 만큼, 강한 처벌로 범죄 발생을 예방하기는 어렵다는 취지다.

비속살해가 반복되면서 이제는 부모가 자녀를 소유물이 아닌 인격체로 봐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특히 어린 자녀의 생사권마저 부모가 쥐고 있다는 잘못된 관념을 지워야한다는 것이다.

한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는 자녀 살해 사건이 터질 때마다 가중처벌법을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법안 통과는 요원하다. 비속 살인에 대한 공식 통계 조차 없다"며 "이제는 부모가 자녀를 살해하고 목숨을 끊는 행위를 단순 '비극'이 아닌 명백한 범죄 행위로 인식해야 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상담 받을 수 있습니다.

양가람 기자 lotus@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