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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적 유전자·윤승태> 해양학자의 환경일기 '아홉 번째 기록-남극도 밟으면 꿈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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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적 유전자·윤승태> 해양학자의 환경일기 '아홉 번째 기록-남극도 밟으면 꿈틀한다'

윤승태 경북대학교 지구시스템과학부 해양학전공 조교수

게재 2022-02-02 15:22:10

윤승태 경북대학교 지구시스템과학부 해양학전공 조교수
윤승태 경북대학교 지구시스템과학부 해양학전공 조교수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말이 있다. 스스로 공격하거나 방어할 수 없는 미물 지렁이도 밟혀서 죽을 지경이 되면 몸부림을 친다는 뜻을 지닌 속담이다.

여러 매체와 필자의 칼럼을 통해서도 접해보았겠지만, 최근 지구는 급격해진 기후 변화로 인해 다양한 기후 위기를 맞이하고 있으며 특히, 남북극 지역에서는 유례없이 빠른 속도의 용융(얼음이 물이 되는 현상)이 발생해 전지구 해수면 상승에 큰 위협을 주고 있다. 그런데 최근 필자는 서남극의 스웨이트(Thwaites) 빙하 인근에서 획득한 관측 자료를 분석해 빙하가 녹아 나온 물인 융빙수가 남극 얼음의 용융 속도를 다시금 줄일 수 있다는 일명 '자기 방어 기작'을 발견했다. 남극 빙하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얘기다.

남극 대륙에서의 서남극 스웨이트 빙하의 위치. 윤승태 교수 제공
남극 대륙에서의 서남극 스웨이트 빙하의 위치. 윤승태 교수 제공

서남극 지역은 빙하 밑 기반암이 해수면보다 아래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무겁고 따뜻한 성질의 환남극 심층수가 쉽게 얼음 하부로 유입되어 다른 남극 지역에 비해 빠른 용융이 발생하는 특징을 가진다. 그중에서도 서남극에 위치한 스웨이트 빙하는 최근 남극에서 가장 빠르게 녹고 있는 빙하이다. 특히, 스웨이트 빙하는 남극 상류의 빙하 흐름을 막고 있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스웨이트 빙하가 빠른 용융에 의해 붕괴될 경우 서남극 빙상 전체의 급격한 붕괴를 초래해 전지구 해수면을 수 미터(5~6m)까지 상승시킬 것으로 예측된다. 이러한 이유로 스웨이트 빙하는 '운명의 날 빙하'라 불리며, 많은 극지 과학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스웨이트 빙하를 비롯하여 서남극 지역에서는 따뜻한 해수 유입에 의한 빙하의 빠른 용융으로 많은 양의 융빙수가 해양으로 유출된다. 과거에 발표된 기존 연구들을 통해서 이러한 융빙수 유출이 빙하 주변의 해양 순환을 강화시키고 얼음 하부로 따뜻한 해수를 더 많이 끌어들여 얼음의 용융을 가속화시킨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필자는 '차가운 융빙수가 얼음 하부로 유입되는 열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2020년 초 극지연구소를 비롯한 다양한 기관의 공동연구진들과 스웨이트 빙하 인근 및 파인아일랜드 빙붕(*Pine Island Ice Shelf) 주변 해양에서 획득한 관측 자료를 분석하여 차가운 융빙수의 역할을 새롭게 찾아냈다.

2020년 관측에서는 2015년부터 발생한 파인아일랜드 빙붕 끝부분의 후퇴를 따라 빙붕 앞 해역의 지리적 여건이 변형되면서 융빙수 유입에 의해 생성된 반시계방향 소용돌이 순환이 재배치되었고, 반시계방향 순환이 재배치된 위치에는 상대적으로 높은 고도의 해저 지형이 발달해 있음을 확인하였다. 또한 반시계방향 소용돌이 내부에는 물리적인 이유로 차가운 융빙수가 모여들기 때문에, 따뜻한 해수에 의해 빙붕으로 유입되는 열이 차가운 융빙수, 높은 고도의 해저 지형 구간을 지나면서 감소하였음을 추가로 확인하였고, 결과적으로 해당 기작이 서남극 얼음의 용융 감소에 기여하였음을 새롭게 밝혔다.

융빙수에 의한 남극 얼음의 '자기 방어 기작'은 국제 학계에 최초로 제안된 내용이며 연구의 참신성과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 1월 13일자로 저명한 국제 학술지인 Nature Communications에 출판되었다. 국내 연구진이 해양 관측 분야에서 Nature 자매지에 연구 논문을 출판한 것은 매우 드문 일이며 국내 해양학계의 엄청난 쾌거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해당 연구 결과는 앞서 남극 빙하를 지렁이에 비유했듯이 자연도 자기 방어를 하는 기작이 있다는 것일 뿐 이로 인해 가속화된 남극의 용융이 당장 느려진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남극 얼음이 이 순간에도 빠르게 녹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본 연구를 통해 자연도 기후변화 위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꿈틀대고 있음에 정부-기업-학계가 더 큰 경각심을 가지고, 기후변화 위기 해결을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계기를 마련하기 바란다.

*빙붕(Ice Shelf)은 남극 대륙의 얼음 중 물 위에 떠 있는 부분을 의미하며 남극 대륙의 얼음이 해양으로 쏟아져 내려오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