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 나를 벗어 던지고 우주·영원과 교감하는 명상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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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이윤선의 남도인문학> 나를 벗어 던지고 우주·영원과 교감하는 명상터
장흥 사자산 조각동굴||지하 조각미술관 장관 ||굴 길이만 100m 넘어 ||우주같은 형상 공간||수천수만 해골 가득 ||반가부좌 한 사유상 '눈길'
  • 입력 : 2022. 04.28(목) 16:24
  • 편집에디터

첫번째 동굴, 감실이 있는 에고의 방. 이윤선

경악! 바로 그 자체다. 거대한 땅굴, 7년간 매일같이 그것도 혼자서 굴을 팠다.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돈벌이로 한 것도 아니다. 굴을 다 파놓고도 자랑은커녕 문을 닫아걸었다. 전남 장흥의 사자산 자락, 평범한 시골이지만 굴은 예사스럽지 않다. 깨달음을 얻기 위한 갖가지의 조형물들이 가득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거대한 지하 조각 미술관이라 할 수 있다. 면적 약 500평 규모에 굴 길이만 합쳐도 약 100미터 정도는 될 것 같다. 굴속의 각종 이미지는 부조 중심으로 50가지 정도다. 한 작가의 구도자적 수행공간으로 시작한 특이한 지하 현장이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이 쓴 해설의 첫 대목이다. 4월 초 발행된 신간, '강대철 조각토굴'(살림출판, 2022) 내용이다. 사실 나도 지난해 4월 윤관장을 따라 이곳을 방문했던 적이 있다. 김영균 원장(조자용기념사업회 이사)과 유시춘 EBS 이사장이 동행했다. 일체의 공개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동굴은 참석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하나하나의 부조가 주는 영감들을 어떤 수사학으로 형언할 수 있을 것인가. 나의 첫 느낌은 김영균 원장의 명저 '탯줄코드'(민속원)가 굴속에서 재현된 것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거대한 나무뿌리와 해골 혹은 뇌수와 자궁과 뱀들의 신화가 부조 형식의 조각품으로 직조된 현장이랄까. 굴속에서 나는 수많은 영감을 받았다. 허락을 받아 휴대폰으로 일일이 사진을 찍었지만 공개할 수 없었다. 공개 여부를 아직 결정하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생각지 못하고 있었는데 1년 만에 단행본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어찌 반갑지 않을 것인가.

다섯번째 굴, 오온의 촉수를 통해 형성된 의식은 어떻게 에고로 자리잡는가. 이윤선

근원의 자리를 찾아

책의 들머리에서 소개되고 있지만, 내게 가장 인상적인 조각은 석관 안에 든 부처와 이를 지켜보고 있는 예수의 상이었다. 이 동굴의 첫 작품이랄 수 있다. 부처가 잠든 석관은 거대한 나무뿌리 형상들이 에워싸고 있다. 2000년 동안 인류의 무지가 부처로서의 예수를 가둬놓고 있음을 상징한다고 말한다.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책을 한두 장 넘기기도 전에 의문이 풀린다. 우리나라 불교 조각의 최고 작가이자 불교 신자이지만, 강작가의 본래 종교가 기독교였고 주위 친척 지인들이 대부분 기독교였다는 고백 말이다. 한국 동란 때 아버지가 사상범으로 희생된 후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어머니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은 듯했다. 이후 월남전에 참전하거나 공부를 지속하면서 종교의 본질이랄까 신앙의 뿌리에 대해 많은 생각을 정리한 듯했다. 석가와 예수를 위대한 보살로 이해하는 그의 심성이 이를 말해준다.

조각 예수상이 오른손을 펼쳐 보이는 것은 미륵의 한 표현이다. 미륵과 메시아 예수를 같은 개념으로 이해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이 시대에 역사의 기득권자들에 의해 조율되고 왜곡된 예수가 아니라 부처로서의 예수, 하나님의 메신저로서의 예수 본래 모습으로 거듭나야 함을, 제 주변 기독 신앙인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부처로서의 예수라는 생각은 예수로서의 부처라는 생각과 통한다. 석관을 에워싸고 있는 거대한 나무뿌리 형상들을 보면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책에서 소개한 동굴을 몇 개만 따라가 본다. 첫 번째 동굴의 맞은 편에는 머리 위로 둥근 우주 같은 형상을 한 공간이 배치되어 있다. 뇌수와도 같고 나무뿌리와도 같은 장엄한 연결의 꼭지점에는 아마도 연꽃일 수 있는 8개의 꽃잎이 부조되어 있다. 사람을 작은 우주라고 한다. 이 공간이야말로 육근(六根) 즉 육식(六識)을 낳는 눈, 귀, 코, 혀, 몸, 뜻이 모인 작은 우주 아닌가. 이 자리 앉아 명상하면, 필시 진리를 깨달아 욕심과 집착이 없어지고 육근이 깨끗해지는 육근청정(六根淸淨)의 단계에 이를 것만 같다. 때때로 뿌리는 엉키고 설켜 근원과도 같은 뇌수 혹은 인식의 동그라미로 집중되다가 이내 두 번째 굴에서 수천수만의 해골들을 에워싼다. 세 번째 네 번째 굴로 이어지는 이 기이한 조각들은 해골로 표현된 무의식의 장엄(莊嚴)이라 할 만하다.

작가는 말한다. "옛날부터 구도자들은 육신의 무상함을 관찰하면서 집착을 극복하고자 했습니다. 그런 수행 중 하나인 백골관(白骨觀)이 있는데, 시체 앞에서 그 시체가 부패하여 살이 흩어지면서 온갖 감정들을 표현했던 형상들이 사라지고 뼈만 남을 때까지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무상함을 실감하는 수행입니다." 아! 그렇다. 이 굴들은, 나를 벗어던지고 우주와 혹은 영원과 교감하는 백골관의 명상터 아닌가.

다섯 번째 굴에서는 알을 깨고 나오는 조옥(鳥玉)을 거쳐 반가부좌를 한 사유상에 다다른다. 작가는 이 불상을 바라보면서 의식의 흐름을 따라 자신을 성찰하고자 하는 의도로 구성했다고 한다. 고통을 형상화한 얼굴상을 지나 여섯 번째 굴에 이르면 육바라밀의 세계가 펼쳐진다. 보살 열반의 실천단계인 보시, 인욕, 지계, 정진, 선정, 지혜들이 각양의 형상으로 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일곱 번째 굴에 이르면 여덟 개의 수레바퀴와 태아가 잉태되는 듯한 깨달음의 씨앗이 형상화되어 있다. 현재는 여기까지 조성되어 있지만, 작가의 뉘앙스대로라면 아마 계속 진행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동굴입구의 홀에 마련된 예수와 석가 조각. 이윤선

남도인문학팁

동굴의 노래, 동굴의 아우라

나는 수년 전 우리나라 기독교계의 가장 오래된 잡지이자 대표적 저널인 '월간 기독교사상'에 1년간 연재를 한 적이 있다. <기독교와 한국 전통문화의 화해를 위하여>라는 제목이었는데, 무속, 불교, 우리의 전통문화를 기독교에 버무린 글이었다. 불상을 태워 땔감으로 사용했다는 불교계의 오랜 전설처럼 예수를 죽여야 예수가 산다는 나의 철학을 피력하였다고나 할까. 마땅한 출판사를 찾지 못해 아직 단행본으로 나오지는 못했다. 어쨌든 그중 여섯 번째 연재에서 '동굴의 노래, 여울굴에서 부유하는 돌배까지'라는 타이틀로 동굴의 아우라를 다루었다. 동굴 관련 설화의 역사는 깊고도 넓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아무래도 단군신화다. 추가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잘 알려져 있다. 단군의 동굴 신화소는 자연스럽게 석탈해(昔脫解)의 석총(石塚)이야기와 연결되고 수많은 설화들로 연결된다. 이들 설화소는 남근바위와 대칭을 이루며 음양론으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동굴 자체 즉 음기(陰氣) 만으로 출산 혹은 생산의 의미를 완성하기도 한다. 내가 단군신화의 동굴을 여음굴로 해석하는 것은 겟세마네 동산의 동굴 은유를 위한, 아마도 논쟁적일 지난한 여정이기도 하다. 낙산사 홍련암과 전국에 분포하는 석굴의 사례들을 열거할 수 있다. 부안의 죽막동 여울굴에서 태어난 개양할미는 그중의 한 사례일 뿐이다. 설화적으로 보면 마치 심청이 연꽃으로 재생하기 위해 구성해둔 장치들 같다. 지면상 중국 보타도의 관음신앙이나 일본의 시조신에 대한 설명은 차후를 기약하지만, 전국에 산재한 여음굴, 여음곡, 여음순 풍수와 신화, 전설, 민담들과 관련하여 주목을 요한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남도땅 끝자리 장흥 사자산 자락에 마련된 동굴이 주는 아우라를 깊이 생각하는 중이다. 강작가는 마음자리를 찾기 위한 여정으로 이를 풀이하지만, 나의 눈에는 산재한 동굴신화의 정점이요 김영균의 <탯줄코드>와도 같은 근원 찾기의 순례로 보인다. 다만 생각한다. 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남도땅 한 자락에 세계 유일의 이런 동굴이 마련되었다는 것이.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