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정연권> 화엄사 효대와 어머니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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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정연권> 화엄사 효대와 어머니 사랑
정연권 구례군도시재생센터장
  • 입력 : 2022. 06.22(수) 13:07
  • 편집에디터
정연권 센터장
유월의 첫날, 새벽이 열리는 화엄사로 향했다. 고요함이 가득한 몽환적 느낌의 나무숲에서 상쾌하고 감미로운 공기가 흐른다. 일주문에 들어서니 법고 소리가 들려온다. 순간 마음이 가벼워지고 평안해진다. 법고, 목어, 운판에 이어 장엄한 범종 소리가 지리산으로 퍼져 나간다. 만물을 깨우는 신호인가. 새들이 자리를 털고 자기들의 언어로 인사를 한다.

청아한 새소리가 범종 사이에 끼어든다. 아니다. 자연의 선율과 음률에 따라 만물이 서로 다른 소리로 어우러졌다. 사람 말소리는 없다. 목탁 소리만이 스님이 예불을 드리고 있음을 대변해준다. 사람들의 말은 없지만 아름다운 자연의 소리가 새벽을 찬란히 빛내고 있다.

지리산 능선이 보이기 시작한다. 낮과 밤의 경계에서 어둠이 걷히고 천천히 날이 밝아온다. 어두움 속으로 잔잔한 빛이 들어오고 빛 속으로 어두움이 사라지고 있다. 사사자삼층석탑을 보러 108계단으로 올랐다. 어딘가 허전하고 이상하다. 계단 오른편 나무숲이 없다. 보수공사를 하면서 벌채한 모양이다. 허전하고 아쉽다. 그나마 동백숲과 아름드리소나무가 위안을 준다. 멀리 섬진강 하회가 어렴풋이 보이고 노고단이 한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풍광을 새벽에 보는 것은 처음이다. 감격스럽고 마음이 차분하면서 엄숙해진다. 들숨에 스미는 개운한 공기는 마음을 맑게 해줬다

탑이 밝은 조명을 받으며 우뚝 서 있다. 국보 제35호로 정식명칭은 '구례화엄사사사자삼층석탑'이다. 8세기경에 세워졌으며 불국사 다보탑과 함께 대표적인 이형(異形)석탑으로 2단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린 행태가 특이하다. 3층 기단 네 마리 사자는 부처의 위엄과 지혜를 상징하며 각기 다른 입 모양은 희로애락을 나타낸다. 가운데 합장한 스님 상(像)은 화엄사를 창건한 연기조사의 어머니라고 전한다. 석탑과 마주한 석등에 꿇어앉은 스님 상은 어머니께 차를 공양하는 연기조사의 지극한 효성을 표현해 놓은 것이라 한다. 효대(孝臺)라고도 한다. 그러나 스승과 제자라는 설과 연기조사가 아들이지만 큰스님이기에 어머니가 차를 공양한다는 설도 전해지고 있다.

천천히 탑을 돌면서 생각했다. 기단 중앙에 계신 저분이 어머니인가. 스승인가. 연기조사인가. 정확한 기록은 없다고 한다. 다만 대각국사 의천이 지은 시 한 수가 어머니를 적시하고 있다. 여러 자료와 정황을 살펴보면서 다음의 일화 때문에 어머니라는 심증이 왔다.

한 소년이 스님에게 물었다. "살아있는 부처를 만날 수 있습니까?"

"그럼 만날 수 있지. 부처는 너를 보면 맨발에 헌 옷을 뒤집어 입고 울면서 너를 맞이할 것이다" 소년은 살아있는 부처를 만나러 길을 떠났다. 사면팔방 방방곡곡을 찾아다녔지만 살아있는 부처를 만날 수 없었다. 지친 소년은 집 앞에서 "어머니 저 왔어요" 힘없이 말했다. 아들 목소리에 어머니는 바로 뛰어나와 울면서 아들을 안았다. 그때 어머니는 헌 옷을 뒤집어 입고 맨발이었다. 소년이 그토록 만나고자 했던 "살아있는 부처는 바로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살아있는 숭고한 부처다.

우리는 날마다 부처를 보고 만나면서 부처를 만나려고 안달이다. 어머니의 몸을 빌려 세상에 나왔고 양육돼 사람이 되었건만 그 사랑을 모르고 외면하려 한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변한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 그것은 어머니의 사랑이고 희생이며 정성이다. 헌신적인 삶으로 사랑과 모성애 없이는 할 수가 없다. 어머니의 바람은 단 하나 자식들 잘되는 것뿐이다. 대한민국 모든 어머니의 바람이며 소원이다.

탑 가운데 저분은 어머니라고 확신한다. 살아있는 부처인 어머니께 차를 드리면서 공경하고 효도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요 근본이기 때문이다. 효대는 아름다운 효(孝)사상과 어머니를 모시는 진수를 보여준다. 그래서 효대로 완성돼 천 년에 세월을 견디어 왔을터다. 아울러, 사람의 도리와 예(禮)를 구(求)하는 구례의 이미지와 부합되고, 계승되어야 하는 자랑스러운 자산이다.

지리산 자락에 맑은 구름이 드리워졌다. 아침의 밝은 빛줄기를 따라 은은하고 달콤한 꽃향기가 다가온다. 보리수나무라고 부르는 찰피나무에서 발산되는 향기다. 향기를 조심히 안아보고 쓰담쓰담 해본다. 몽실몽실 꽃송이에 자애로운 어머니의 이미지가 보인다. 보이지 않지만 느끼는 어머니의 정겨운 냄새가 연상된다. 마음을 일깨우는 잔향과 함께 불견(不見), 불문(不聞), 불언(不言)의 불상이 가슴속으로 들어온다. 법구경의 3불이 제시하는 의미가 어머니 삶과 같아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어머니처럼 인내하고 헌신하며 살아보자 다짐했더니 어느새 마음이 평안해진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