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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안경찰에 아들 죽었는데, 수사도 책임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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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공안경찰에 아들 죽었는데, 수사도 책임자도 없었다"

과거 군사정권에 희생 신호수 열사 父
여수 출신… 경찰 간첩 조작 연루설
“경찰 독립 없으면 국민만 피해”
“경찰국 신설은 권력 충성 유도”

게재 2022-07-04 17:56:42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경찰제도개선 자문위원회 권고안에 대한 행안부 입장 브리핑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경찰제도개선 자문위원회 권고안에 대한 행안부 입장 브리핑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2022년 6월, 공안 경찰에 의해 가족을 잃었던 유가족들은 40여 년 만에 다시 끔찍한 기억을 되살려야 했다. 행정안전부가 이른바 '내부무 치안본부'라 불리는 경찰국 신설을 강행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유가족들이 느끼는 경찰국은 1980년 수많은 민주 투사와 죄 없는 시민들을 감옥으로 보낸 신군부 치하의 '공안 경찰'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부당 공권력에 사망… '신호수 열사'

신호수 열사.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제공
신호수 열사.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제공

"경찰에 억울하게 누명 쓰고 끌려가고… 아들은 그들에게 죽임을 당한 거지요. 그런데 아무도 잘못했다고 인정을 안 합디다."

36년 전, 공안 경찰에 끌려간 뒤 동굴에서 발견된 여수 출신 신호수 열사의 아버지 신정학 씨는 들끓어 오르는 억울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1986년 차가워진 아들의 시신을 마주한 뒤, "한을 풀어주고 싶다"는 이유로 오랜 시간 아들의 진상 규명을 위해 싸웠다.

신 열사의 죽음은 '장흥공작'이라는 명칭의 간첩 조작 사건 때문에 발생했다. 그는 1986년 6월11일, 예전에 살던 집의 장판 밑에 '불온삐라(북한 불온선전물)'가 있었다는 이유로 서울 서부경찰서 공안 형사들의 표적이 됐다. 그러나 이 삐라는 신 열사가 방위로 근무할 당시, 포상휴가를 받기 위해 모았던 것으로 범죄와는 아무런 연관도 없었다.

경찰은 인천에서 가스배달업체 종업원으로 일하던 신 열사를 영장 없이 연행했고, 이후 8일 만에 고향인 여수 대미산의 한 동굴에서 목매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경찰은 이 사건을 '자살'로 종결했다.

아버지 신씨는 그날 이후 아들의 죽음을 파헤치기 위해 끈질기게 노력했다.

그 결과 지난 2009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는 '정부(경찰)가 무리하게 신호수를 간첩으로 조작하는 과정에서 가혹행위를 해 그가 숨지자 자살로 위장한 것'으로 진실 규명을 결정했다.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도 '신호수의 사망에 공권력이 개입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규명했다. 의문사위 보고서에는 '해당 장소(대미산 동굴)는 변사자가 자살할 끈을 묶을 곳으로 선택했다고 보기에는 부자연스러운 점이 없지 않다'고 기록돼있다.

신호수 열사 사고 현장에서 발견된 소지품.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제공
신호수 열사 사고 현장에서 발견된 소지품.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제공

●"피해자 트라우마 재생산 우려된다"

아버지 신씨에게 '행안부 경찰국 신설'이 주는 의미는 남달랐다. 그에게는 경찰이 정부 권력에 충성하던 시절의 악몽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인터뷰 내내 '억울한 사람이 생기면 안 되는데…'라고 되뇌이던 신씨는 "시대가 많이 흐른 만큼, 이전처럼 너 나 없이 잡아가는 일은 없을 거다. 그러나 제일 걱정되는 것은 아직까지 진상 규명되지 않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신씨는 이어 "아픔을 꺼내기 싫어 가슴에 묻고 살아가는 피해자들이 여전히 많다. 앞으로 이들의 억울함을 푸는 데 어려움이 생기지는 않을지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진화위에 따르면, 지난달 23일 기준 '인권침해·조작의혹 사건 규명' 신청인 수는 2457명에 달한다. 아직도 신씨와 같은 아픔을 겪는 이들이 많다는 의미다. 여기에 자신의 피해 사실을 호소하지 않은 이들까지 합하면 그 수는 더욱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대부분은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기조차 두려워한다.

실제로 취재 과정 중 신군부 피해자 측 여러명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번번이 거절당했다. 이들이 인터뷰에 응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트라우마'였다. 보수 정권 시대에, 아울러 정부와 경찰의 연결이 확실시되는 가운데 지난날의 아픔을 꺼내고 싶지 않다는 얘기였다.

진화위 관계자는 "많은 피해자들이 트라우마로 인해 피해 사실을 이야기하거나 밝히는 데 어려움을 느껴한다. (인터뷰를 꺼리는 게) 그 이유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고 설명했다.

심리 전문가는 이번 경찰국 신설 추진이 '유가족들의 트라우마를 재생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군사정권 시기, 국가가 '데모할 것 같이 생긴' 젊은이들을 영장도 없이 매일 체포하던 시절 아닌가"라며 "'지금은 군사정권이 아니니 다르다'고 할 수 있겠지만, 피해자들의 트라우마는 개인마다 그 지점이 다 다르기 때문에 쉽게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현재 속칭 '치안본부로 돌아간다'는 말 자체도 이미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들춰낸 '방아쇠'가 됐을지도 모른다"며 "(경찰국) 설립 이후 실생활이나 언론에서 (트라우마가) 체감된다면, 과거 정부·경찰에 인권 탄압을 당했던 피해자들이 더욱 숨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피해자 지원 단체는 '경찰에 정권의 입김이 작용해선 안된다'고 제언다. 단체는 "경찰의 중립·독립성이 훼손된다면 누가 믿고 자신의 피해를 말하겠나"면서 "과거 경찰 개입 사건에 대한 진실을 찾는 과정에서도 어려움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 경찰국 설립이 우리 국민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민감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