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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사특집·김일중> '광주 공동체 정신' 바탕에는 광주 향약이 있다

김일중 전 광주여대 교수

게재 2022-07-18 18:19:10
조선시대 최초 향약 시행 장소 부용정
조선시대 최초 향약 시행 장소 부용정

 지난 5월 18일, 5·18 민주화운동 제42주년을 기념하는 자리. 윤석열 대통령은 '오월 정신은 보편적 가치이고, 헌법 정신 그 자체'라면서, 국민통합의 주춧돌이며 자유와 정의, 그리고 진실을 사랑하는 우리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광주 시민이라고 했다. 광주의 오월 정신이 바로 우리 국민 모두를 대표하는 정신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음을 밝힌 것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그보다 앞선 기념행사에서 오월 정신을 내세워 오월 영령들을 추모한 바 있다.

 그렇다면, 오월 정신의 핵심 가치는 무엇일까? 바로 공동체 정신이 아닐까 싶다. 공동체 정신이란 공동선共同善의 사회적 가치를 우위에 두는 정신세계를 뜻한다. 공동선이란 모든 공동체 구성원을 위하여 이익이 되는 것으로 집합적 행동으로 성취되는 것을 말한다. 자유주의가 개인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우선시하는 데 반하여, 공동체주의는 개인의 자유에 대한 권리만큼이나 사회 구성원의 공동선에 대한 의무를 소중히 여긴다.

 우리 삶은 사회와 수많은 관계망 속에

 우리 삶은 한 개인만으로는 온전할 수 없다. 우리 각자의 삶은 사회와의 수많은 관계망 속에 있다. 그 또한 시대時間와 장소空間를 뛰어넘어 무한히 확장하고 연결된다. 우리 자신은 어머니의 어머니, 또 그 어머니의 어머니로 끝없이 거슬러 올라가며, 한편으로는 세상의 온갖 것들과도 교감한다. 이처럼 주변의 모든 것들을 씨줄로, 연속체로서 시간을 날줄로 엮어 낸 것이 우리 사는 모습이다.

 이것이 어디 우리 인간사회 일만이랴! 몹시도 축축지근하게 찌던 어느 여름날이었다. 물기 촉촉한 시멘트 블록 턱진 곳에 한 무리의 구더기, 서로 뒤엉켜 한낮의 무더위와 사투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탁구공이다. 체적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온전한 공동체가 그곳에 있었다. 또한 코끼리는 어미 잃은 새끼를 공동으로 기른다. 죽은 동료 유골을 발과 코로 쓰다듬으며 추모한다. 어린 새끼도 어미 사체에 슬픔을 표하고. 우리 주변 여러 생명체들의 세계를 조심스럽게 살펴보면, 인간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에 콧등이 찡하다. 그 자체로 쓸모없는 생명체는 없다. 저마다의 존재 이유가 있다. 물론 우리도 이와 같다.

 광주 공동체 정신도 콕 찍어 5·18 민주화 운동에서만 찾아지는 것은 아닐 터. 이곳 광주에 일찍이 삶의 터전을 잡아 글 읽고 농사일하며 고기 잡고 노래하고 좋은 꿈 꾸던 중에, 어느 날 뜻하지 않게 맞닥뜨린 모진 역경에도 꿋꿋하게 이를 극복한 선현들의 얼 속에 녹아 있는 유산이렷다.

 이중환의 택리지 대략에 "우리나라는 산山정기가 북쪽으로 천 리를 달려가며 두 강을 끼었고, 뒤쪽으로 뻗은 한 가닥이 조선 산맥의 우두머리가 되었다."라고 하였다. 두 강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조선 산맥은 백두대간을 이른다. 우리 산하는 예로부터 백두대간을 따라 산과 강의 경계가 정해지고 여러 형태의 지역적인 구별이 있었다. 그런 까닭으로 오랫동안 지역 간의 단절도 있었다.

 전통문화로 대표되는 광주와 안동

 여기서는 호남과 영남을 대표하는 지역으로 광주와 안동 두 곳을 간단하게나마 비교해 보려 한다. 그 이유는 첫 번째로 안동은 퇴계 이황, 서애 류성룡 등 걸출한 성리학자, 경세가를 많이 배출한 지역이다. 안동시는 시정 구호를 「한국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으로 특허등록을 마친 지 오래다(2006). 추로지향鄒魯之鄕의 도시라는 게 주된 이유. 추로지향은 공자와 맹자의 고향이라는 뜻으로, 예절을 알고 학문이 왕성한 곳을 이른다. 그에 비해 광주는 조선시대에 향약이 전국 최초로 시행된 이래 현재까지도 그 맥이 끊이지 않고 전해온다. 또한 담양군 일부와 광주 북구 일대는 누정과 함께 가사 문학 중심지로서 안동에서 말하는 것과는 또 다른 정신 문화의 한 축을 맡고 있다. 바로 공동체 정신 문화의 산실이요 인문학의 본고장이다.

 두번째는 안동은 향교보다는 사학 기관인 서원이 유교문화의 중심 활동 공간으로, 광주는 서원보다는 지역의 관학 기관인 향교를 중심으로 학문이 발전하였다.

 세 번째는 안동은 선비정신으로 대표되는 선비문화라 한다면, 광주는 오월 정신으로 대표되는 공동체 문화로 두 지역을 비교할 수 있겠다. 지금은 안동은 기초, 광주는 광역 자치정부의 지위에 있다.

 택리지에 경상도는 지리가 아름답고, 예안, 안동, 순흥, 영천, 예천 등은 이백(태백산과 소백산) 남쪽에 있는 곳으로, 신이 일러준 복된 땅이라 했다. 예안과 순흥은 각각 안동과 영주에 속한다. 이 지방은 조선시대에 다른 지역보다 훨씬 많은 문과 급제자를 배출했다.

 그에 견주어 전라도는 땅이 기름지고 물산이 풍부한 데에 비해서, 사람이 경박하고 간사하여 문학을 대단치 않게 여긴다고 하였다. 이는 물론 수백 년 전, 그러니까 도학적 질서 속에서 문文을 숭상하고 사士를 가장 높은 자리에 두었던 데서 나온 말이다. 오랑캐와 왜적의 노략질과 전쟁에 앞장서서 국민과 국가를 지키는 일에 목숨 바친 변경의 백성들, 농사와 물산 장려에 온 힘을 다해 왕실과 나라 살림을 떠받쳤던 민초들의 삶은 외면받았다. 국경 수호를 안동이 대신할 수 없다면, 안동 사람들은 이들에게 혜택을 입은 것이다.

양과동정
양과동정

 광주 공동체 정신 길러 낸 광주 향약

 또 그렇다면, 광주 공동체 정신은 어디서부터 그 싹을 틔웠을까? 조선조에 일찍이 전국 최초로 시작된 향약에 그 원형이 있지 않을까. 향약은 중국 송나라에서 기원하고 고려 말 성리학과 함께 들어왔다지만, 시행은 조선조에서부터다. 향약은 시행 시기와 그 주체에 따라 성격과 내용도 다양하지만, 어려운 일을 당하면 서로 돕고 예와 덕으로써 상부상조하는 공동체 정신을 근간으로 하는 데에 차이는 없다.

 광주의 공동체 정신은 5·18 민주화운동 외에도 임진왜란 때 의병 활동, 동학농민운동, 광주학생독립운동, 한말의 항일 의병 활동 등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우리의 만고 사표인 이충무공도 "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했다. 언론인이자 교수로서 우리의 한 시대사상을 이끌었던 리영희는, 광주 민주항쟁을 겪고 난 뒤 전국 대학의 이념적 지형이 거의 한 세기를 뛰어넘는 것 같았다고 회고하였다. 「리영희 평전」에서다.

 나아가서, 최근 한국학호남진흥원이 호남한국학 향약자료집 광주향약[1, 2]을 발간하였다. 반갑고 환영할 일이다. 김덕진 광주교육대 교수가 쓴 [1] 해제에 따르면, 광주의 향약은 김문발이 처음으로 실시하였고, 그 후 이선제가 1451년에 광주현감 안철석과 함께 시행하였다. 그런데 대체로 16세기 초중반 중종~명종 때에 사림파의 성장과 함께 향약 보급 운동이 본격적으로 일어났다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이고,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가 예안과 해주에서 시행하였다는 향약이 거론되고 있을 뿐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광주 향약은 이황, 이이보다 앞선 15세기 중반에 김문발, 이선제, 안철석에 의해 처음 조직되었던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 대강이다.

 향토 사학자 이종일도, 그 후 16세기 말에 기대승과 박순에 의해 수정된 사실을 바탕으로 광주 향약이 전국에서 선구적으로 실시되었음을 뒷받침한다고 한다. 김문발의 생졸년(1359-1418)을 따르면 15세기 초로 봄이 옳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사학자 한종수에 의하면, 이선제의 광주향약조목과 퇴계의 예안향립약조의 내용이 거의 유사한데, 이 둘 사이에는 105년의 차이가 있으며 퇴계가 이선제의 광주향약조목을 참고하여 예안향립약조를 만들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그렇다면 향규의 전형을 퇴계로부터 찾는 것은 더더욱 문제다. 광주향약조목은 이선제를 배향한 수암서원의 원지院誌 수암지에 실려있다.

수암지
수암지

 

수암지에 실려있는 광주향약조목
수암지에 실려있는 광주향약조목

향약은 마을 공동체의 자치법규로서 질서유지는 물론 상부상조의 미풍양속 정신을 바탕으로 전국의 고을 또는 마을 단위에서 자생적으로 시행되었던 소중한 역사 문화 자산이다. 물론 시대와 지역에 따라 양반계급이나 고을 수령이 주도하여 그들의 통제 수단으로 전락하기도 했었고 일제는 가혹한 식민지 압제의 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김문발, 이선제에 의한 향약은 양과동 향약으로 이어졌을 것으로 보이며(각각 직선거리 3킬로 이내임), 양과동향약은 많은 자료가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까지도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간원대로도 불린 양과동정에서 시행된 양과동향약에 참여한 인사들 가운데는 임진왜란 때에 의병으로 활약한 선비들이 유독 많다. 문과 8명, 무과 14명, 사마시 5명, 유생이 38명이다. 이 가운데 고경명은 문과 장원하고 장남 종후, 차남 인후도 문과 급제자로 삼부자가 순절하였다. 공동체 정신을 말할 때 이보다 더함이 있겠는가. 살신성인의 표상이다. 옛 남원도호부 읍지인 용성지를 보면, "오직 광주 고을의 향풍 만이 올바르게 되어 문젯거리가 없고 인근 순천 장성 창평 등 고을도 모두 광주 향약의 도움을 받아 전라도의 향풍 진작에 선도적 역할을 하였다." 고 했다.

 한국국학진흥원이, 안동지방 일대 3백여 문중의 유교책판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하는 작업을 추진한 것으로 기억한다. 문중을 중심으로 학맥이 형성되고, 학맥은 다시 서원을 중심으로 하여 사회공동체 문화를 형성했다는 것이 그 골자다. 고단한 농사일 하면서 이웃과의 협동작업의 소중함을 광주 향약에 담았을 법한 광주 공동체 정신과 대비된다.

 향약은 비록 중국에서 기원하였지만, 우리의 풍토에 맞게 토착화했고, 공동체 정신을 구현하는 점에서 우리의 고유 습속인 두레와 크게 다르지 않다. 향약, 그저 낡은 풍속만은 아니다. 언제나 우리 삶 속에 마르지 않아야 할 샘물 같은 것.

 값진 공동체 정신 문화유산, 오래오래 기억되게 기념하는 데에 힘을 모았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