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창규> 다시 생각해보는 명량대첩과 '명량대첩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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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박창규> 다시 생각해보는 명량대첩과 '명량대첩 축제'
박창규 전 명량대첩축제 집행위원장·전남도립대 교수
  • 입력 : 2022. 09.29(목) 13:00
  • 편집에디터
박창규·위원장
코로나19가 감소세로 돌아서자 전국 각지에서 그동안 미뤄왔던 이벤트와 축제가 열리고 있다. 전남은 이번 주부터 다음 달까지 명량대첩축제를 비롯해 여수 거북선 축제, 목포 항구축제, 완도 가을 섬 여행, 순천 푸드앤아트 페스티벌, 여수 남도음식문화큰잔치 등이 열린다.

1597년 9월16일 물살이 거세고 좁은 울돌목 해협. 조선 수군이 일본 함대를 맞아 힘겹게 싸우고 있었다. 조선 전함 13척이 133세의 일본 전함에 둘러싸이자 바닷가에서 목놓아 응원하던 백성들은 발을 동동거렸다. 얼마 뒤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 13척으로 어떻게 133척을 이겼을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이번 주말 열리는 명량대첩축제장인 울돌목으로 달려가 본다. 해남 우수영과 진도 녹진 관광지가 보이는 이곳은 물이 운다고 해서 울돌목이라 불렀다. 이곳에 오면 생사와 존망의 흐름을 거꾸로 뒤집을 만한 한 줄기 역류가 다가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삶과 죽음이 뒤엉켜 부딪히는 사지에서 순류와 역류의 혼재 속에서 펼쳐진 이순신의 고뇌와 전라도 백성들의 삶을 짐작해 본다. '2022 명량대첩 해전재현'은 최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미디어 상영 방식으로 선보인다. 어선을 동원해 어민들이 재현하는 방식과 달리 가로 20m, 세로 5m 스크린을 설치해 울돌목을 그대로 담아내고 해상전투를 컴퓨터그래픽스로 그려내 특별한 감동을 선사한다. 가히 4차혁명 기술과 역사콘텐츠의 결합이다.

명량이 일궈낸 승리에는 이순신과 남도 백성들이 자리하고 있다. 남의 땅을 넘어 살육의 칼날을 들이대던 침략 앞에 남도의 백성들이 내민 무기는 서로에 대한 믿음이요 일상을 일구고 지키고자 한 소박한 꿈이었다. 그 믿음과 꿈은 이순신을 만나 성난 울음의 물길이 돼 '승리의 바다'를 이뤘다. 425년 전 이 땅의 사람들이 지키고자 한 소박한 일상과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살아가고 싶은 꿈은 오늘 우리에게도 가장 소중한 가치다. 이것이 바로 저 명량의 물길 앞에서 우리가 다시 서야 하는 까닭이다. 역경을 딛고 조선수군을 재건하기 위해 이순신은 남도 곳곳을 찾아 다녔다. 이순신의 노력에 남도 백성들은 제 것을 기꺼이 내 놨다. 그렇게 조선 수군은 다시 만들어 질 수 있었다. 2014년부터 전남도는 백의종군하던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수임 돼 군사·무기·병선을 모아 구례에서 곡성, 순천, 보성, 장흥, 강진, 해남, 진도 등 명량대첩지로 이동한 구국의 길 500㎞를 '조선수군 재건로'로 조성해 이순신리더십캠프 등 역사교육 체험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올해 명량대첩 현장에서는 새로운 역사 발굴현장인 진도 왜덕산 관련 한일 국제학술회의와 위령제가 열렸다. 명량대첩에서 전사한 일본 수군은 대략 2만4000명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진도대교와 가까운 군내면 둔전리, 고군면 오류리, 연동리, 내산리, 원포리, 벌포리 해변에는 물이 빠진 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왜군들의 시신이 개펄에서 드러났다. 진도군 고군면 내동마을에 있는 왜덕산은 명량해전 당시 진도 해변으로 밀려온 일본 수군 시신들이 죽어서나마 고향 땅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동남향 해변 양지에 묻어줬다. "왜군에게 덕을 베풀었다"는 의미에서 '왜덕산'으로 불리게 됐다. 이번 한일 국제학술대회는 '하나의 전쟁, 두 개의 무덤'이라는 주제로 발표와 토론회가 열렸다. 위령제 행사에 한일 외교 관계에 힘써온 하토야마 유키오(전 일본 총리) 등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때마침 명량축제장에서 진도 다시래기, 평화의 만가행진 등 당시 희생된 조선수군과 일본수군의 넋을 달래고 평화와 안정을 기리는 공연이 펼쳐진다. 상여를 메고 가며 전쟁으로 희생된 영혼을 달래는 평화의 만가행진은 관광객과 함께 전쟁의 아픈 역사를 새롭게 치유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 평화의 빛으로 선보이는 명량페스타에서 평화의 마음을 담아 우크라이나전쟁 종식 등 세계평화의 기운이 넘쳐나길 기원한다.

작금의 동북아 정세가 심상치 않다. 지난 3년간 코로나로 힘든 시기를 보내면서도 '아직 저에게는 12척의 배가 있습니다'는 이순신의 '상유십이(尙有十二)' 정신을 되새겨야 한다. 어려운 상황에서 긍정적인 부분을 먼저 보고 위기 속에서 희망을 떠올렸던 명량대첩의 역사적 현장, 울돌목에 서 본다면 삶의 에너지를 얻어 가는 감동의 역사적 시간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